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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 초대된 기분

소로의 '월든 Walden'이 떠오르더군요.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숲 속에서의 별멍


차라리 내게 희석하지 않은 아침 공기 한 모금을 달라.  그것이 내게는 만병통치약이다.  아, 아침 공기! 인간이 하루의 샘솟는 원천인 새벽 공기를 마시지 않으려 한다면, 그것을 병에 담아 가게에서 팔기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 세상에서 아침 시간을 구독할 예매권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그리해야 할 터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아침 공기는 아무리 서늘한 지하실에 보관하더라도 결코 정오까지 머물지 못하고, 그전에 병마개를 밀어젖힌 채 여신이 남겨 놓은 발자취를 따라가 버린다는 사실이다.


-'월든 Walden' 본문 中




작은애 직장찬스로 일 년에 두세 번은 편안하게 가족여행을 다니고 있습니다.  모두 건강할 때 여행을 보내는 시간들이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분명 소중한 추억이 될 거라는 가족 모두의 공통된 합의를 본 뒤로는 열심히 함께 다니고 있습니다.  여행은 여행 그 자체인 과정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니까요.


이번 여행지는 제천에 있는 '포레스트 리솜'으로 자연지형과 식생을 그대로 보존한 리조트로 결정되었다고 말하더군요.  작은애는 경쟁이 좀 있었는데 운이 좋게 당첨이 된 것 같다고 우쭐댔습니다.  가기 전에 검색해 보니 규모가 상당했습니다.  주론산을 통째로 리조트화 한 자본의 힘입이 벌어졌죠.  


우리 가족은 '포레스트 리솜'에서 1박을 했는데 별장처럼 속에 조성되어 운치가 상당한 곳이었습니다.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고급스러운 건물모형은 자연과 흡수되듯 안정감이 있었고 산책로는 전용카트와 사람들만 이용할 있도록 안전하게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재미있게도 우리 가족이 머문 곳은 '부부의 세계' 촬영지 부근이더군요.  여행 가기 전까지 무척 추워 걱정했었는데 다행히도 여행당일은 겨울산책하기에 참 좋았어요.


객실 내에 취사는 불가능하다며 식사와 편의시설은 전동카트로 별관건물을 이용하라고 안내받았습니다.  숲 속에서 왁자지껄 고기 굽는 냄새와 소음이 안 난다는 의미기도 해서 오히려 만족했답니다.  숲까지 와서 도심의 소음까지 향유하는 건 숲에 대한 예의가 아니니까요.


큰애와 작은애는 도착하고 바로 스파를 하겠다며 수영복을 챙겨 내려갔고, 우리는 숲 속에 자리 잡은 별장에 짐을 푼 뒤 숲 속 산책길에 나섰습니다.  젊은이들은 문명이 편하고 깔끔하고 익숙할 테지만 우리 부부는 나이가 들수록 자연에서의 쉼이 더 크게 만족감이 옵니다.  


숲 속을 거닐다 보니 19세기 소로의 '월든 Walden'이 문득 떠오르더군요.  당시 인간은 자연을 그저 무한한 자원을 가진 대상으로 바라보고 생태계 파괴에 혈안이 될 시기였는데, 소로는 인간의 삶을 편안하게 해주는 터전으로 보라고 외쳤습니다.  자연은 소유가 아닌 인간의 삶을 치유해 주는 곳이라고요.  


이제야 숲 속을 그대로 놔두고 인간은 그저 자연의 손님처럼 쉬다 갈 수 있도록 조성된 리조트에 와서 이렇게 만족합니다.  문명의 막다른 골목까지 가본 인간들이 상업적으로나마 조금씩 그의 외침이 들린 것일까요.  


사람들은 늘 상대와 비교하며 남보다 부족한 자신의 처지를 혐오합니다.  그것이 재산일 수도 있고 권력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왜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 애쓰기만 하고 적은 것에 만족하는 법은 배우려 들지 않을까요.  '월든 Walden'에서 소로는 무엇이든 소유하려면 비용이 들고, 그 비용은 바로 당신의 삶을 옥죌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현대인들은 남들만큼 소유해야 행복하다고 신앙처럼 믿으며 살며 문명인이라 생각합니다.  소로는 자신에게 맞는 모자를 벗어던지고 왕관을 사지 못한다며 신세한탄하는 사람들을 조롱합니다.  



밤마실을 나오니 별장에 조명들이 조용히 빛나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가족들과 밤마실 산책이 이번 여행에서 가장 인상 깊은 추억이 될 것 같습니다.  도심 속 공해와 조명으로 감추어진 별들이 모조리 이곳에 모여 있기라도 한 듯이 밤하늘을 빛내고 있었거든요.  보름달은 또 어찌나 밝던지!  이렇게 아름다운 것들을 문명에게 모조리 빼앗기고 살고 있었습니다.  여름과 달리 울창한 숲은 보지 못했지만 보상처럼 밤하늘을 빛내주었던 별들의 외침은 장관이었습니다.  카메라로 담지 못한 것이 아쉬울 정도였어요.  


우리뿐만 아니라 산책길에서 만난 여행객들의 얼굴에는 조용한 만족이 얼굴 가득 피어나고 있더군요.  자연이 주는 쉼의 가치를 알게 된 거지요.  






우리가 살면서 밤하늘 별이야기를 얼마나 할까요.  더 이상 휴대폰 영상들도 재미없습니다.  우리는 '참 좋다'를 수없이 반복하다 잠들었던 것 같아요.


다음날 우리는 조식을 든든히 먹고 숙소로 올라와 당연한 듯이 주론산 둘레길 코스를 돌았습니다  겨울아침 짜릿한 찬 공기가 느슨해진 정신줄에 찬물을 끼얹는 느낌이더군요.  시끄러운 알람소리에 간신히 일어나 출근준비로 바빴던 일상을 하루아침에 잊은 시간이었습니다.  이미 우리는 자연에 적응하도록 세팅된 채 태어난 이유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언덕 위에서 볼 빨간 얼굴들을 한 모습들을 서로 마주 보며 우리는 많이 웃었습니다.  밤하늘에 가득했던 별들과 아침공기가 선물한 청결한 경험들..


자연에서 그 어느 때보다 조용히 보내다 온 1박 2일을 오래 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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