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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생활 관념이다

육아시간이 소중한 이유


문제는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어른들이 모범을 보여주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 청소년들만 나무랄 필요가 없다. 우리 젊은이들은 보고 배운 것이 없었던 것이다.



- 행복예습 中




한 연구소의 인식조사를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요즘 30대 결혼적령기에 있는 젊은이들의 결혼관은 회의적이다.  자기중심적 태도와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클 테지만 인생에 있어 행복의 척도를 따지자면 그리 현명한 결정은 아니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남녀가 서로 사랑해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어찌 보면 인간적 의무기도 하다.  삶의 섭리랄까.  자식을 낳고 키우다 보면 크고 작은 일에 모범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가정과 사회에 대한 자신의 역할을 알게 되고 지혜로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 노력하며 자신도 모르게 성장하는 것이다. 그 고리의 첫 번째가 결혼이다.



나는 아들만 둘을 낳았다.  첫 아이 때 정말 너무너무 힘들었다.  어떻게 표현해야 적당할까.  큰 애는 힘이 센 갓 잡은 물고기였다.  순순히 내 손아귀에 잡히지 않았다.  오히려 초보 엄마인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큰애는 나를 실험용 쥐처럼 가지고 놀았다.  


당시 나의 가장 큰 소망은 편하게 눕혀 기저귀를 갈아보는 것일 정도였다.  기저귀를 벗기면 그 시원한 해방감에 아이는 얼마나 재빠르게 도망치는지 그 난감함이란!  똥을 엉덩이에 붙이고 달린다고 상상해 보시라.  그렇게 4년을 풋내기 심리학자에게 시달리고 나니 어깨와 팔근육이 역도선수 저리 가라처럼 단단해져 있었다.


그렇게 떼쓰며 울기, 물건 던지기, 얼굴 때리기, 지나친 소유욕(내 거, 니 거 구분 짓는), 엄마 반응실험까지 지치는 나날을 견디고 야단치고, 안아주며 아이를 키우다 보니 어느새 인간본성의 모든 면을 터득하게 되었다.


완벽한 육아대처훈련을 받고 또다시 남자아이를 낳았을 때 나는 각오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둘째 입장으로 본다면 범접하기 힘든 트레이너인 엄마와 근육으로 뭉친 형이 있는 헬스장에서 자란 셈이다.  그 때문인지 몰라도 작은애는 험난한 환경에 순응하며 순하게 자라줬던 것 같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힘든 기억보다 행복한 추억이 지배하는 이유를 나는 오히려 아이에게 사랑받았던 몸의 기억이라고 말하고 싶다.  몸의 언어는 지금도 불쑥불쑥 찾아와 다 큰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기도 하는데, 이런 기억은 오롯이 내 것이라 아들과 공유가 어렵다.


아이들은 대략 6살 전후해서 신경세포의 활성화로 인해 대부분 기억상실증에 걸린다고 한다.  하지만 부모들은 절대 잊을 수 없다.  조그마한 양팔을 벌려 구원을 요청하던 눈동자, 포옹, 볼과 엉덩이에서 전달되었던 따스함.  그리고 어쭙잖은 논리로 나를 혼내던 자식의 자아까지,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는가.  


사랑이라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했던 이 작은 천사와 함께했던 행복감은 인생을 통틀어 가장 강렬하다.  엄마는 이 시기를 거치면서 모성애가 강화된다.  


나는 출산과 육아를 통해 얻은 소중한 체험을 아기가 내게 준 '인생 최고의 선물'이라고 말하고 싶다.  인간이라는 고유한 삶의 주체를 위해 희생했던 나의 헌신이 오히려 선물로 돌아오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내가 어떻게 키웠는데, 소리치는 부모를 그래서 나는 이해 못 한다.  



흔히들 결혼과 출산을 꺼리는 이유를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라고 말한다.  그 포기의 선택은 인생 최고의 소중한 체험인 선물을 버리는 결정이다.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삼시 세끼 굶지만 않으면 된다'는 주의다.  결혼당시 남편은 소박한 나의 요구에 어이없어하며 웃었던 모습을 기억한다. 그런데 내 말은 우리, 과욕 부리지 말고 적당히 벌고 살자는 뜻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물은 너무 많아도 너무 없어도 고통에 빠지게 한다.  김형석 교수는 사람은 인격의 수준만큼 재산을 갖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하셨다.  관리할 수준만큼만 벌고 소비하면 딱 좋다는 의미다.  돈이 목적이어서 일하는 사람은 소유가 목적이 되기 십상이다.  


남편은 '작은 것에 쉽게 만족'하는 나를 좋아한다.  쉽게 충족하니 자주 채워주고 나는 또 열심히 고맙다고 말한다.  나는 화분에 꽃이 피면 질 때까지 행복하다.  남편은 날 위해 화분관리에 열심이다.  아내가 좋아하기 때문이다.  나는 가족이 맛있게 먹는 요리 하나에 고마워한다.  가족들은 맛있다고 칭찬한다.  나는 책을 읽다가 우연히 발견한 소중한 교훈, 신념, 가치관에 감사하다.  책을 읽고 내 생각을 정리하고 내 삶에 반영되는 시간들이 일상에서 소중하게 차지한다.


제각기 다른 삶을 선택하며 살지만 궁극적으로는 즐겁고 행복한 삶을 원해서가 아닐까 싶다.  아이들이 결혼을 하고 싶어 해 줘서 고맙다.  


생활 관념도 유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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