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가진 것을 새롭게 음미하는 시간

여수 밤바다 그리고 남편 환갑여행

인생에서 모든 것이 맛있지는 않다.  하지만 세상이 우리에게 신비로움을 일깨워주고, 행복의 비밀이나 그것과 비슷한 무언가를 속삭여주는 듯한 최고의 순간들은 있다. 바로 그 순간들이 기억에 색채를 더한다.  그 기억의 색채가 흐릿한 잿빛이 되면 우리는 다시 색을 이끌어내야 한다. 시인, 화가, 선원, 모험가만 경험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리도 각자 모든 것을 바꾸는 순간의 소금을 수집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소금이야말로 모든 것을 구한다.


-'모든 삶은 흐른다' 본문 中



남편이 올해 환갑이다. 평균수명이 늘어난 요즘은 환갑잔치는 커녕 칠순잔치도 생략한다. 대부분 조촐한 여행으로 여느 때 생일보다는 조금 무게감 있는 축하를 받을 뿐이다. 하지만 환갑이란 나이는 본인에게는 묘한 기분에 젖게 한다. 치열하게 살아온 60년이란 시간의 증거가 몸 구석구석에 증거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요즘 남편은 오른쪽 다리가 힘이 없어 계단을 많이 오르면 힘들어한다. 연애할 때 '내 별명이 날다람쥐야'라며 산비탈을 약 올리며 올랐던 기억이 겹쳐서 나는 남편이 가엽다. 없이 살던 어렸을 적에 죽을 고비가 있을 정도로 다리가 아팠었다는데, 잠재되어 있다가 세월의 중력에 약한 부위로 떠오른 것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신체의 고통은 삶을 겸허하게 바라보게 만든다.


환갑은 십간과 십이지의 조합의 육십갑자가 한번 다 돌고 난 의미로, 새로 시작한다는 의미로 해석되어 어떻게 보면 환생이라고 설명하면 더 의미가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나는 새로 시작되는 제2의 축하는 살아온 시간들을 기억하고 지금 가진 것을 음미하며 응원받을 수 있는 가족이 최고라 생각한다.


남편과 나는 위로는 부모를 간병하고 아래로는 자식들의 독립을 도와줘야 하는 더블 케어(Double Care) 세대다. 남편과 나는 사회경제적으로 기술 및 경제적 변화를 목도했었고, 노력하면 목표달성이 성공으로 보여줬던 세대라 그런지 삶을 대하는 두려움은 오히려 적은 편이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하는 남편과 지난 60년 중 반이상을 함께한 동반자로서 돌아오는 남편의 환갑은 인생의 성적표를 받는 사람인양 살짝 흥분되기도 했다.


남편은 어머니 소천 이후 아내의 소중함을 느꼈는지 모든 일정과 감성을 내게 맞추고 있다. 자신의 생일임에도 아내가 좋아하는 바다로 결정해 줬고, 이에 아이들은 일사천리로 장소를 물색했다. 그렇게 정한 곳이 여수였다. 꼼꼼한 남편은 가족들이 편하게 2박 3일 놀 수 있도록 여행일정을 짜서 공유했다. 주인공이 그렇게 계획을 짰기 때문에 우리는 군소리 없이 따라야 했다. 하지만 이는 남편의 지나온 습관이었고 환갑여행도 예외 가 없었을 뿐이란 사실을 나는 안다. 하지만 여행은 계획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남편의 계획표엔 장맛비가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비가 오는 여행은 무게감이 컸다. 발가락에 힘을 줘 걸어선지 호텔로 돌아온 오후엔 종아리와 허벅지가 뭉쳐 있었다.


여행일정 내내 장맛비 한가운데에 있는 여수였다. 그럼에도 남편은 실시간으로 변모하는 하늘의 움직임에 민첩하게 움직이는 장수 같았다. 장맛비라는 변수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느껴져 우리는 모두 리더의 외침에 따라야만 했다.


제아무리 예상치 못할 날씨의 변덕이 있어도 여행은 즐거울 수밖에 없다. 여행은 어린아이로 돌아가는 시간이니까.. 여수에서 내리는 비는 조명을 몽환적으로 바꾸었고 우리 안에 숨어있던 최고의 탄성을 끌어내게 만들었다. 케이블카 안에서 내려다본 여수의 밤바다는 가슴에 담아 둘 만큼 이뻤다.  여수는 밤바다가 일을 다 했다고 말할 만큼 정말 너무 아름다웠다.


우리들은 오랜 우정을 나눈 친구들처럼 낯선 타지에서 함께라는 연대감으로 용감했다. 몸짓과 표정, 외침들로 무장한 군대처럼 흥분했다. 비가 그치면 그쳐서 좋아했고, 비가 오면 눅눅함에 몸서리치며 웃었다. 모든 게 여행이라는 명분으로 덮였다. 비가 와서 더 다채로웠다.


남편은 서울에서 여수까지 왕복 600km 이상의 거리를 즐겁게 운전을 해줬다. 분명히 힘들었을 텐데 한 번도 운전대를 넘기지 않았다. 넘기라고 말했지만 괜찮다고 말해줘서 더 고마웠다. 우리는 여행지보다 움직이는 차 안에서 많은 얘기들을 나눴던 것 같다. 문득 남편이 가족을 위해 피곤한 기색을 숨기며 운전대를 놓지 않았던 것은 지나온 삶 속에서 지탱해 온 책임감과 소중함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환갑이라는 생일을 맞아 어른을 앞둔 아이들에게 책임 있는 삶을 요구하고 있었다. 담담히 객관화하며 이야기하는 남편의 운전하는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숙연해졌다. 가장이라는 무게는 싫어도 견뎌야 하는 족쇄였다. 여행은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다.


우리는 가족이라는 존재에 대해 익숙하기에 더 이상 탐구하고 새롭게 감상하지 않는다. 무뎌졌기 때문이다. 채워지면 사라지는 욕망처럼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 하지만 본연의 가치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욕망하지 않는 상대로 치부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오랜 우정을 소중히 생각하는 따뜻함을 잃는다면 나 자신을 버리는 일과 같다. 삶은 양면이지 절대 단면이 아니다. 낮에 평범했던 바다가 화려한 조명으로 빛을 내듯이, 여름의 나무와 겨울의 나무가 다르듯이 강렬함과 부드러움은 공감을 바탕으로 새롭게 음미되는 법이다.


익숙함을 내 안의 소금처럼 귀하게 여겨야 한다.


여수 해상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본 밤바다
돌산공원 내 전망대
일몰 후 조명이 켜진 여수 크루즈 유람선에서
상선에 조명이 있어서 일몰 직후 너무 이쁜 사진이 나왔음
비 오는 향일암 가는 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