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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서 마음을 떼어 버릴 수 있다면

그리움도 추억도 고통이 되는 친구에게



누가 말했었다.
가슴에서 마음을 떼어 강에 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그러면 고통도 그리움도 추억도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꽃들은 왜 빨리 피었다 지는가
흰 구름은 왜 빨리 모였다가 빨리 흩어져 가는가

미소 지으며 다가왔다가 너무도 빨리
내 곁에서 멀어져 가는 것들

들꽃들은 왜 한적한 곳에서
그리도 빨리 피었다 지는 것인가

강물은 왜 작은 돌들 위로 물살 져 흘러내리고
마음은 왜 나 자신도 알 수 없는 방향으로만
흘러가는가




- 가슴에서 마음을 떼어 버릴 수 있다면 / 류시화





넌 한여름 운동장 흙먼지를 몰고 온 아이처럼 느닷없이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전화가 올 때가 많았지.
흔한 안부의 수식들 다 떨쳐내고 '지금 근처야. 나와.  밥 먹자'


엉겁결에 대답을 하고선 내가 밥을 먹었던가, 잠시 정신없게 만들었지.
무슨 사연이든 에둘러 말하겠지 기다려도 정말 밥만 먹고 일어나 손을 흔들며 떠나는 넌
걱정한 나 자신을 허탈하게 만들었지.


비 때문에 구멍 난 보도블록에 신발이 잠수함이 된 어이없던 일상이나
갑작스러운 눈으로 빙판길에 넘어진 싱거운 얘기들까지 푸념처럼 내게 말하던 너였지.
너의 가벼움이 싫증나 바쁜 일상을 핑계 대며 거리를 두려 해도 너는 장난처럼 받아들였지.


언젠가부터 나도 너처럼 닮아가는 것을 느끼게 되었지.
나이답게 말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필요 없는 사이가 되었고, 어쩌면 그 허물없음으로
뜨문뜨문 그렇게 연락이 끊어져도, 아니 연락을 하지 않아도 미안하지 않게 되었지.


양손 가득 시장을 보고 퇴근하던 노을이 멋졌던 어느 날 밤에 너의 소식을
네가 아닌 너의 가족으로부터 듣게 되었지.

 

네가 있는 하늘나라는 어떤 곳일까.

왜 너는 도저히 연락할 수 없는 곳으로 가서 나를 미안하게 하는가.

실없이 싱거운 사람들을 볼 때마다 네가 생각나 침을 삼키는 것을 너는 알까. 


숨 가쁘게 달리는 세월은 모든 감각을 무디게 하겠지.

그리고 이 그리움을 끝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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