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유리천장 때문이 아닙니다

일만 잘해서는 안 됩니다

관리자들이 자기 밑에 있는 직원들이 일을 못하고 책임감도 없다고 탓하는 것은 단순히 운이 없어서거나 팔자려니 하고 생각해야 될 문제가 아니다. 직원들 탓이라고 말하는 관리자들은 일반적으로 자신은 아무 문제 없이 잘하고 있는데 직원들이 문제라고 말들을 한다. 또 자신의 직원들은 일을 아주 잘하고 책임감도 많다고 얘기하는 관리자가 있다면 그 역시 관리자인 자신이 일을 잘해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직원이 일을 잘하던, 못하던 관리자는 계속 아무 문제 없이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단지 직원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 그런 것일까?


-'엑셀런트 멘토..'본문 中



퇴직한 지 벌써 4년이 넘어갑니다. 문득문득 오랜 시간 몸 담았던 직장생활의 습관과 기억이 잔상처럼 남아있는 저를 발견하곤 한답니다. 제가 몸 담았던 곳은 중소기업이었지만 조직의 신경전은 그 크기가 결코 작지 않았답니다. 특히 여자에다 직장맘이라는 처지는 유리천장의 두께를 가히 실감하고도 남았습니다. 저는 능력과 상관없이 아무리 노력해도 제외되는 승진의 박탈감에 매번 소리 없이 좌절하고 울었지요.


직급은 연차대로 승진이 가능해도 "차장"부터는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차장"이라는 직급을 달았을 때 난 최선을 다했다,라는 마음으로 직장을 다녔습니다. 부장부터는 임원급 인사위원회에서 만장일치가 안 나오면 곤란했으니까요. 저보다 나이 어리고 능력의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 남자직원이 부장을 달 땐 너무나 속이 상했답니다. 승진자후보 명단에 제 이름이라도 올려주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마저도 현실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어느 해인가 oo기금 지점장님이 퇴직하시고 저희 회사 임원으로 부임하셨습니다. 중소기업 특성상 회사가 어려울 때 긴급처방처럼 수혈되는 외부인사는 새삼스럽지도 않았지만 직원들의 반응은 좋지 않았지요. 저는 특별히 그분을 위해 서포트해드리지 않았는데도 그분이 제게 우호적이란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와 우연히 눈이 마주치기라고 하면 활짝 웃어주셨으니까요.


그분은 어슬렁 거리며 직원들의 책상 주변을 오가며 농담하듯 말을 건네시는 등 직원들과 친화력이 좋으셨고 일처리도 까다로운 임원답지 않게 결재해 주셨지만 틀린 부분은 정확히 집어내시는 명석함이 있으셨습니다. 차츰 직원들 간에는 웃으면서도 무서운 분이라는 이미지가 박히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제 제대로 일할 줄 아는 임원다운 임원이 오셨다는 생각에 오히려 견딜만한 직장생활이라 즐거웠습니다.  어느 날, 그분이 제 책상 주변에 오시더니 한 말씀하시더군요.


"김 차장!  고개 들고 일해!"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드니 그분은 어느새 등지고 이동하고 계셨습니다. 무슨 의미인지 몰라 쫄래쫄래 뒤따라 가니 문 밖으로 이동을 하시더군요.  무슨 뜻인지 여쭤보니,


"김 차장은 일을 참 잘해. 그런데 고개 숙이고 일만 하면 밑의 직원들이 뭘 하는지 어떻게 알지?"  


이해를 못 하는 표정을 지으니, 빙그레 웃으시면서 해석은 김 차장이 알 때까지 고민하라고 하시더군요. 수 십 년간 한 직장에서 원칙대로 일을 해왔고 특별한 지적 없이 결재를 받고 신뢰를 쌓아온 터라 무슨 의미인지 도통 이해가 안 되더군요. 그리고 고개를 들고 어떻게 일하나, 고개를 숙여야 직원들이 올린 서류가 보이는데. 서류검토는 내가 전문가인데.. 그날은 퇴근하고서도 뇌리에 맴도는 그 말씀에 고민을 많이 하다가 드디어 결론을 찾았습니다.


직장은 효율이 최고지만 교감과 관계의 장이기도 함으로, 피드백이 수시로 일어날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최종 관리자의 의무란 말이란 것을 알겠더군요.  고개를 들지 않고 일하니 직원들의 업무속도를 몰랐던 거죠. 그동안 저는 직원들이 올리는 서류가 맘에 안 들면 제가 거의 고쳐주다시피 수정해서 돌려주곤 했습니다. 그래야 밀려드는 업무를 소화할 수 있었고 수월히 결재를 받을 수 있었으니까요. 직원들은 제 지적에 두 말없이 고쳐왔고 저는 흡족해하며 제가 잘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너무 부끄럽고 직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저 직원들의 서류에 빨간 펜으로 밑줄을 쫙쫙 그으며 상처를 준 강압적인 상사였을 뿐이었습니다. 그들을 쉽게 가르쳐 주려던 제 의도는 그렇게 수십 년간 어그러져 있었던 겁니다.


제가 많이 부드러워졌다는 평은 아마도 그 뒤로부터 들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분은 절 "부장"으로 승진시켜 주셨습니다.  반대의견을 낸 임원들 앞에서 저를 승진시켜도 될 이유를 30분 동안 말씀하셨고, 드디어 만장일치를 이끌어 내셨습니다. 너무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리니 당신은 아무것도 한 게 없다고 하시더군요. 몇 년 뒤 회사가 어려워지자 그분은 건강상의 이유를 대시면서 자발적으로 퇴직을 하셨습니다. 퇴직하실 때 연락드리겠다고 서운해하는 저를 보시면서 "임원 되었다는 소식 아니면 연락도 하지 마" 그러시더군요.  


부장은 생각도 않고 다니던 제가 임원을 꿈꾸고 임원을 달게 된 것은 그분의 한마디 말씀 덕분입니다. 생각해 보면 제가 승진을 못한 것은 모든 상황을 환경 탓으로 돌리고 싶었던 제 위안이 아니었었나 싶습니다. 일에 대한 위임 없이 일의 완수에만 목표를 두고 나 혼자 너무 많은 것을 떠안고 유능한 직원을 알아보지 못하는 회사만 비난했던 거죠.


다양한 사람들이 충분히 이기적인 생각을 가지고 조직에 들어옵니다. 관리자로써의 자질은 일은 물론 그 종합적인 사람들을 취합해서 회사의 큰 목적인 사업계획 안으로 들어오게끔 문고리를 열어주는 사람이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돌아가신 지 벌써 5년이나 되었네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