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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 지 벌써 5년이나 되었네요

삶과 죽음을 되새기는 제삿날


"바다에 일어나는 파도를 보게. 파도는 아무리 높게 일어나도 항상 수평으로 돌아가지. 아무리 거세도 바다에는 수평이라는 게 있어. 항상 움직이기에 바다는 한 번도 그 수평이라는 걸 가져본 적이 없다네. 하지만 파도는 돌아가야 할 수면이 분명 존재해. 나의 죽음도 같은 거야. 끝없이 움직이는 파도였으나, 모두가 평등한 수평으로 돌아간다네. 본 적은 없으나 내 안에 분명히 있어. 내가 돌아갈 곳이니까."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中



어제는 시어머님 기제사일이었습니다.  돌아가신 지 벌써 5년이나 되었네요. 해가 거듭날수록 제사용품을 준비하면서도 어머니가 언제 영면하셨지? 하며 횟수를 세곤 합니다. 아직도 실감이 나질 않는 것은 같은 공간에서 늘 부딪끼며 일거수일투족을 신경 쓰던 입장이어서가 아닐까 싶어요.


저는 아직도 인간의 삶과 죽음이 완벽히 단절되어 생이별을 하는 그 경계를 참지 못하겠습니다. 말 그대로 어느 순간 홀연히 사라진 분의 부재를 적응하기가 힘들거든요. 시어머니에 대한 고찰이 내 삶 속에서 너무나 많은 부분을 차지하였기에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가끔 꿈속에서 평상시처럼 등장하실 때도 있는데, 다음 날이면 현실감 떨어지는 사람처럼 멍하니 시어머니 사진을 바라보곤 하네요.  죽음은 남은 이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삶 속에서 있는 힘껏 노력하고 지혜를 끌어 모아도 안 되는 게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라고.


이어령교수의 마지막 인터뷰가 생각이 납니다. 죽음은 말 그대로 "돌아가셨다"라는 의미라고요.  탄생의 원래 그 자리로 가는 것. 모태로의 귀환이라고요. 그 말씀이 떠오르면 조금씩 안정이 되곤 니다.


올해는 태풍 영향이 있어서 모처럼 더위와 씨름하지 않고 제사상을 준비했습니다. 시어머니는 당신의 88세 생신 다음 날 영면하셔서 결론적으로 매년 생일상을 받으시고 계신 셈입니다.  시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치킨도 제사상에 한 자리 차지하고 절을 올렸습니다. 영혼이 정말 있다면 반색하셨으리라 생각하면 미소가 피어난답니다. 둘째 며느리로 시집와 위아래 동서가 있었지만 시어머니는 저희 집으로 최종 거처를 결정하셨고, 돌아가시기 얼마 전엔 슬며시 당신 제사상도 내가 책임져 주길 원하셨습니다. 욕심이 상당한 분인 셈이지요.


인간은 마지막까지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존재란 사실을 그때 깨달았습니다. 제가 그 약속을 지키는 것은 그분에 대한 예의기도 하지만 어머니를 너무나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서 기도 합니다. 남편이 끝까지 책임져주는 제게 고마워하고 그 고마움은 서로 편안한 사이로 가는 길이기도 하니까요.


올 기제사에도 형제들 누구도 오질 않았고 전화도 없습니다.  처음 몇 년동안의 코로나라는 핑계도 사라졌는데 말이죠. 별로 기대도 하지 않아 섭섭하지도 않지만 누군가 짊어진 책임감은 참 편리한 해석이 되겠구나 싶습니다. 우리 가족끼리 조용히 지내는 제사도 저희는 나쁘지 않습니다. 


어른과 같이 살고 그의 죽음을 목도하고 또 이렇게 제사를 지내면서 좋은 점은 이렇게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이 경건해지면서 깊어간다는 점입니다. 죽으면 끝이라는 생각에 더 치열하게 소비하며 살 수도 있지만, 반면 죽음을 인정하기에 내 삶을 아끼고 함부로 소비하지 않을 수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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