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위대한 사람들의 생애도 몇 번의 위대한 순간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감격적이지 않다. 소크라테스는 때때로 연회를 즐겼을 테고 독약이 효과를 내는 동안에 나눈 대화에서 상당한 만족을 느꼈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생애의 대부분을 크산티페와 조용히 지냈으며, 오후에는 산보를 나갔고 아마도 몇몇 친구를 만나기도 했을 것이다. 칸트는 전 생애를 통해 쾨니히스베르크로부터 10마일 이상을 나간 적이 없다고 전해진다. 다윈은 세계일주를 한 후에는 생애는 자기 집에서 보냈다. 마르크스는 두세 번 혁명을 선동한 다음에는 나머지 세월을 영국 박물관에서 지내기로 결심했다.
어느 경우에나 조용한 생활이 위인들의 특색이었다는 것, 게다가 그들의 쾌락은 외부에서 볼 때 결코 자극적이지 않은 쾌락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행복의 정복' 中
지난 주말, 무창포해수욕장으로 여름휴가를 다녀왔습니다. 붐비는 휴가철이 되면 차량과 인파에 시달리는 것이 싫어 항상 휴가철을 지나 다녀왔었는데, 올해는 때 이른 더위에 일찌감치 승복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제때에 제대로 쉬어 보자는 생각이 들더군요. 지구의 기후가 정상 범위를 넘어서 해마다 갱신하듯 맹렬해지는 것 같습니다. 에어컨 없는 실내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지경이네요.
사실 여행은 일상을 떠나 다른 공간에서 휴식을 취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정신적으로든 신체적으로든 보상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정착된 일정한 일상의 틀과는 달리 오로지 행복한 소비를 위한 목적만이 존재하니까요.
남편은 여행계획이 잡히면 여행기간의 동선부터 여행맛집 탐구가 시작됩니다. 저는 여행지에서만 느끼는 돌발상황을 즐기고 싶은 편이라면 남편은 계획 없이 진행되는 일정이란 용납하지 못하는 성격이랍니다. 큰 미션을 받은 일꾼처럼 열심히 검색하고 가족들에게 스케줄을 공유합니다. 하지만 여행은 늘 복병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저는 저대로 즐겁고, 남편은 그나마 계획의 몇 퍼센트를 챙겼다고 만족하며 타협점을 찾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번 휴가의 복병은 다름 아닌 어이없게도 "더위"였습니다.
무창포 해변가 그늘에서 쉬고 있는 갈매기를 향해 뛰어가는 용희
더위를 피해 바닷가를 선택했기에 당연히 더위가 반가울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지글지글 끓는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해변가는 물론 바닷 속도 온탕 그 자체였어요.
뜨거운 바닷물을 놀라 수면 깊은 쪽으로 이동하려는 사람들은 안전요원이 보트 위에서 저지를 했습니다. 눈부신 바다햇살과 합세한 태양은 정통으로 정수리를 강타해 바닷속에서도 우산이 필요했습니다. 검은 우산 네 개가 원을 그리며 떠있는 모습을 상상하니 기가 막히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해서 우리는 서로 자지러지게 웃었지요.
아무튼 행동에 제약이 있으니 오래 놀지 못하고 금세 지쳤습니다. 무엇보다 폭염이 우리의 기(氣)를 모조리 흡수하는 기분이랄까요..
에어컨이 나오는 시원한 객실로 이동해 더위의 심각성을 깨닫고 여행계획은 황급히 수정모드로 들어갔습니다. 그늘이 있는 여행지, 짧은 보행이 있는 안전한 곳으로 말이죠. 2박 3일 동안 우리는 보령 죽도 상화원, 개화공원 정도로 만족하고 바다는 풍경으로만 만족하기로 했습니다. 바닷가에 놀러 가서 말이죠. 흑..
상화원은 그늘막으로 해풍을 느끼며 걷도록 조성되어 있습니다.
보령 죽도 상하원에서 내려다본 뜨거운 바닷가
정말이지 폭염에 온열질환자가 속출한다는 보도가 피부에 와닿더군요. 변경된 여행지에서 그늘막을 찾아 보행했음에도 땀범벅이 되었답니다. 성인도 이렇게 힘든데 기저질환자나 노인분들은 정말이지 주의하셔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더군요. 올여름엔 지인들의 부고소식을 우리 집만 해도 총 일곱 분이나 있었답니다.
우리 가족은 첫날 무척 고생을 한 뒤로, 남은 기간 여행지를 대부분 취소하고 말 그대로 콘도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며 보내다 왔습니다. 오후에 태양의 기세가 꺾이면 염탐하는 도둑고양이처럼 해변을 조심조심 걸으며 만족해야 했습니다.
오후가 되니 더위에 숨어있던 갈매기들도 힘차게 하늘을 비행하더군요.
이튿날 들린 개화예술공원. 가물어서 연못물이 말랐네요
야외 조각작품들이 많았는데 용기를 내야 했다는..
개화예술공원 내 이쁘게 꾸며놓은 카페, 실내만 사람들이 많아요.
휴가는 돌아갈 집이 있기에 행복하다는 말이 생각나더군요. 집이야말로 가장 오랜 시간 자신의 정서를 조용히 채워주고 지탱해 준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거지요.
집에 돌아와 모두들 정신 차린 사람들이 되어 움직였습니다. 휴가지에서 별로 논 것도 없는데 빨랫감은 엄청납니다. 빨래를 두 번 돌렸고 연신 뜨거운 베란다를 오가는 엄마가 미안한지 아이들이 제 주변을 서성입니다. "바닷가도 아닌데 뭘~" 그 말에 아이들이 키득거립니다. 이번 휴가를 계기로 우리 가족은 다시금 휴가기간을 피해서 계획을 잡기로 했습니다.
어젯밤부터 태풍 카눈이 한반도를 정통으로 강타한다는 보도가 연일 걱정스럽게 합니다. 날씨가 극단적이란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중간이 없네요. 태풍이 한반도의 뜨거운 열기만 몰고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