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건드리면 부서질까 모셔두고 있습니다

최초의 성공경험을 기억합니다


사람들은 당신의 이름을 알지만, 당신의 스토리는 모른다.

그들은 당신이 해 온 것들은 들었지만, 당신이 겪어 온 일들은 듣지 못했다.

따라서 당신에 대한 그들의 견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말라.

결국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아니라 당신에 대한 당신 자신의 생각이다.

때로는 자신과 자신의 삶에 최고의 것을 해야만 한다.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최고의 것이 아니라.


-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 보지 않는다 中




아이들 방 책장 위에는 구멍 난 '아크릴 교각(축소판)'이 있습니다. 주말에 몰아 청소할 때면 꺼내 먼지를 닦아주고 다시 올려놓고 있습니다. 남들이 보면 구멍 나고 깨진 아크릴 조각들이 간신히 붙어 있는 쓸모없는 공작품으로 보이지만 제 눈에는 여전히 대단하고 사랑스러운 추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아크릴교각은 큰애가 고등학교 1학년때 기술 수행평가 과제로 만든 거랍니다. 순수재료인 아크릴만으로 교각 축소판을 만들 것과 무게 10kg를 지탱해야 점수를 얻는 과제였어요. 자동차나 트럭 등이 다니는 다리는 엄청난 하중을 받는 것처럼, 학생들에게도 10kg이라는 무게를 견디는 다리를 만들라는 미션이었던 거죠. 다리의 종류는 어떤 모형이든 제한이 없었습니다.  조금만 힘을 줘도 부서지고 얇은 아크릴을 보니 저는 아무리 봐도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고민 끝에 용석이는 아치교를 만들겠다 하더군요.


큰 애는 하나하나 아크릴을 끌로 자르고 순간접착제로 붙이는 작업을 시작으로 해서 교각이 완성될 때까지 장장 9시간이 걸렸습니다.  동생도 사포질을 해주면서 열심히 형을 도왔습니다. 처음엔 하루도 맘 편히 쉬지도 못하게 주말과제를 내주나 했는데, 몰입하며 열심히 하는 모습을 지켜보다 보니 잠시나마 학업스트레스를 잊게 해 준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용석이가 고1 때 만들었으니까 벌써 16년이 넘었습니다. 수행평가 결과는 어땠냐고요? 대부분의 아이들은 처참히 다리 한가운데 구멍이 뚫리는 참사를 당했지만 큰애의 교각은 10kg 무게를 넘겨 A를 받았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다른 애들과 공평해야 한다면서 추가무게를 강제로 줘서 구멍을 냈다고 하네요.


이쯤에서 완성품이 궁금하시죠?  부서지기 전 사진을 찍어놔서 얼마나 다행히 던지요.



제게 이 교각은 단순한 공작품이 아닙니다. 대학이라는 한 가지 목표를 향해 요동치는 감정의 멘탈을 부여잡고 무력감, 우울감을 극복했던 최초의 증거이기도 했거든요. 누구의 조언도 아닌 스스로 고민하고 설계하며 완성했던 작품, 스스로 확인한 성공경험이었습니다.


입시 스트레스는 겪어보지 않은 집은 모릅니다. 피크였던 고 3 때는 스트레스성 위염에 대상포진까지 걸려 앉기도 힘들어했습니다. 그럼에도 노력한 만큼의 결과는 보상처럼 다가올 거라는 자신만의 확고한 믿음이 있었기에 인내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지금은 독립해 천안에 내려갔지만, 가끔 올라올 때면 자기 방에 들어가 아직도 떡하니 제일 높은 곳에 전리품처럼 올려져 있는 교각을 보며 아들의 입가가 올라가는 것을 저는 놓치지 않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기억이 상대적이라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