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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어떤 존재여야 할까..

혼자가 익숙해진 큰 애를 바라보며.



사람들이 나무 심을 때 흔히 저지르는 실수가 뭔지 아니?  자기가 좋아하는 나무를 눈에 잘 보이는데 심을 생각만 한다는 거야.  나무가 어딜 좋아할지는 전혀 생각 안 하고 말이지.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본문 中




돌아오는 수요일이 큰애 생일이지만 천안에서 혼자 지내고 있는 터라 주말에는 올라와 엄마가 해주는 미역국을 먹으라고 했다. 아들은 올라온 주말 동안에도 노트북을 열고 틈 나는 대로 일을 했다. 방학이 되면 서울집에서 지낼 거란 내 생각은 강의만 해방된 시간일 뿐 교수 본연의 연구와 논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큰 애는 동생과 달리 식구들과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본인도 외국을 이렇게 많이 다닐 줄 몰랐다고 할 만큼 혼자 있는 시간이 고독처럼 굳어만 갔다. 안부를 묻는 가족들에게 늘 환하게 웃으며 '괜찮다'는 말만 할 뿐이었다.


큰 애는 알을 품은 새처럼 스스로 그 고민의 알이 깨질 때까지 참고 인내하는 내향적인 타입이다. 그래서 큰 애가 입 밖으로 무언가를 하겠다고 하면 가족들은 반대를 하지 못한다. 충분히 자기만의 시간의 성찰을 보냈다고 믿기 때문이다. 포닥생활을 더 해야 길을 찾을 수 있을 거란 결심을 말하고, 코로나가 창궐하던 영국으로 떠나겠다고 했을 때 걱정이 한가득 눈앞을 가렸지만 말리지 못했다.


지금 큰 애가 학자의 길을 가는 있는 모습을 지긋이 바라볼 때면 나는 마치 소나무 같다는 생각이 든다. 소나무는 자신의 기질을 잘 아는 나무다.


소나무는 햇볕이 충분해야 생존을 위한 광합성을 할 수 있는데, 경쟁이 심한 비옥한 땅에는 내향성이 강한 터라 살 수 없다고 한다. 미련스럽게 보이는 소나무는 바위 땅에 힘겹지만 서서히 뿌리를 내리며 안전하게 조금씩 그렇지만 꾸준히 자라는 것으로 만족한다.


우리는 흔히 인생에서 거쳐야 할 단계가 있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그 단계들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수많은 경쟁들이란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문턱이라 가정했을 때 잠시 멈추고 선택지의 하나로 바라볼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 나는 그 문턱의 높이를 탓하기에 앞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시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찌 되었든 문턱을 선택한 사람이 짊어져야 할 몫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능력을 판단할 줄 알면 선택지는 오히려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올 수 있다. 단지 그 시야를 지금 한 곳만 바라보기에 어렵게 느낄 뿐이다.


생일을 맞이할 때마다 나는 가족이 어떤 존재여야 할까, 생각하곤 한다.  케이크를 자르고 주인공을 축하해 주며,  이 세상에 우리와 함께할 수 있었던 최초의 순간을 기억해 내고 우리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는지 과시하기도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삶 속에서 무한대로 자신의 꿈을 지지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상기하는 날이다. 그 따뜻한 응원 속에 혼자 있어도 혼자가 아니라고 믿게 해 준다.


가족은 그걸로 충분하다.  



빵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생일기념으로 만든 단호박 간식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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