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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100세까지 살 몸이다

친정아버지를 바라보며 드는 생각



우리 모두는 좋든 싫든 노년기에 돌봄을 필요로 하게 될 때 어떤 대접을 받을 것인가에 대한 징표를 찾으려 한다는 점에서 리어와 닮은꼴이다.


-'지혜롭게 나이 든다는 것'  본문 中




지난 일요일은 친정엄마가 돌아가신 지 일 년이 되던 날이었다. 혼자가 되신 친정아버지를 모시고 간 동생네에 들려 기제사를 보내고 왔다. 친정엄마는 가톨릭을 믿으셨기 때문에 성당에서 위령미사를 먼저 지냈는데, 올케가 서운하다고 첫 번째 기제사만은 고맙게도 차려드리고 싶다고 했다.


치매의 강에 머물고 계신 아버지는 주기적으로 심통을 부리셔서 동생내외를 힘들게 하신다. 기제사날도 잔뜩 골이 나셔서 딸이 가도 인사를 받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동생내외가 잘 모셔주셔서 그런지 살이 붙고 혈색도 좋아지셨고 무엇보다 머리가 아프다는 말씀을 잘 안 하신다.  그런데 가끔 뇌에 장애가 올 때면 딱 네 살짜리로 변하셔서 막무가내가 되신다. 그럴 때면 가족들의 낯빛이 모두 어둡다. 덩치가 있는 어른이 네 살짜리처럼 행동하니 당연한 반응이다. 무엇이 아버지를 화나게 하신 걸까. 몸이 경직되듯 힘이 들어가 있고 만지지도 못하게 하신다. 당신의 아내 제삿날이었다.


사실 치매가 아니더라도 나이가 들면 우리 모두 두 번째 아동기에 들어선다고 한다. 느슨해진 자아의 절박한 요구와 육체적 본능적 요구가 강해져 완고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요즘 숨겨져 있던 막무가내 아버지의 위력을 자주 실감하고 있다.  


아버지는 뇌경색으로 쓰러지기 전까지 술을 드셨다. 술을 드신 날은 여지없이 집안이 전쟁통으로 바뀌었다.  평상시에 아버지는 도무지 말문을 열지 않으셨지만 술이 들어간 날엔 폭발하듯 엄마와 싸우셨다.  난 아버지의 진심을 알 수가 없었다. 난 아버지의 성격을 막연히 추측하며 살았던 것 같다. 삶이 고단하셔서 술을 드셨을 것이다, 아내와 성격이 안 맞아 대화가 힘들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뇌경색으로 쓰러지시고 술을 더 이상 드시지 못하게 되자 드디어 친정집에 평화가 찾아왔다.  남편의 불행이 엄마에겐 측은지심으로 자리한 것일까.  전투력을 잃은 상대에 대한 배려였을까. 이후 친정엄마는 끔찍하게 남편을 보살피셨다.  불쌍한 양반이라면서.  나는 갑자기 금실이 좋아진 두 분을 바라보면서 묘한 배신감을 느꼈다.  


친정엄마의 소천으로 장벽이 걷히고 아버지는 세상 밖으로 나오셨다.  불행하게도 한 번도 시부모와 함께 살아보지 않았던 올케에게 시아버지는 현재 네 살짜리 모습이다. 성격은 자신과 타인에게 지속적으로 드러내는 태도라 할 수 있다. 지금 아버지의 태도는 치매일지라도 올케에겐 성격으로 보여진다는 사실이 나를 너무 슬프게 한다.


동생은 아버지를 목욕시키다가 디스크 수술한 부위가 도져서 많이 힘들어하고 있었다. 아들이 아파도 왜 복대를 하고 있는지 묻지도 않고 화만 내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동생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아버지가 짜증을 내고 집안 분위기를 엉망으로 만드신 날은 우리 집도 피해 갈 수 없다.  올케의 하소연이 고단함으로 응축되어 폭발하듯 고스란히 내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삶의 끝이 치매라는 모래성과 함께 무너지는 기분이랄까. 우리는 남편의 치부를 보이지 않게 숨기며 짊어지다 불쌍히 돌아가신 친정엄마 사진만 처참하게 바라봤다.  


삶은 당사자의 것이지만 가족의 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살아야 한다.  이제는 100세 시대이고 어지간한 병은 의학의 발달로 생명연장이 가능해져 버렸다.  자신의 몸과 정신을 온전히 자신이 간수하다 품위 있고 지혜롭게 삶을 정리할 줄 알아야 한다.  100세까지 살 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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