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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숲

내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지도가 있어야 해



"지도를 좋아해?"내가 물었다.

"응, 대학 졸업하면 국토 지리원에 들어가서 지, 지, 지도를 만들 거야."

과연 이 세상에는 참으로 많은 종류의 희망과 인생의 목적이 있다고 나는 새삼 감탄했다.





'노르웨이의 숲'을 다시 읽게 되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2004년도에 '상실의 시대'란 이름으로 발간된 같은 책이다.  상실의 시대 독서 이후  '무라카미 하루키'란 작가에 대해 호기심이 뭉게뭉게 피어올라 무한신뢰랄까,  '해변의 카프카'서부터 시작해 산문, 많은 에세이집,  '기사단장 죽이기'까지 그의 네트워크망에 걸려 참 많은 책들을 읽었던 것 같다.  영화는 감독의 신뢰로, 책은 작가의 신뢰로 선택하게 되는 법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1인칭 화법은 스토리의 흡입력과 동시에 주인공과 함께 감각하고 사유하게 만든다.  그의 문체는 독자로 하여금 끊임없는 자아와의 대화, 투쟁, 결론에 이르기까지 고독이란 수렁에 빠지게 한다.  아무튼 다시 읽다 보니 독특하다고만 느꼈던 나의 첫인상의 이유가 서사를 끌고 가는 차분하면서도 여유로운 디테일 그리고 현대인의 고독과 공허함의 이유를 묻게 되기 때문이란 결론이 든다. 


그의 소설들은 여러 권 읽은 독자라면 공통되는 유사점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하루키의 스토리는 산만하리만치 수많은 단서(조건)들을 독자들에게 던지는데, 이를 또 기가 막히게 후반부에 소환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집중하게  만들고 추리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또한 공통적인 분위기라면 대부분 1인칭에 불우한 가정환경, 섹스와 죽음의 연결성, 상실감이 기본으로 깔려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란 말은 어떤 의미에서 인간은 모순덩어리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사회적 제도와 도리를 지키려 노력하지만 동물적 본능인 성(性)의 책임 앞에서 혼란과 공허함으로 힘들어하기 때문이다.  하루키의 여러 소설 속에서 독자들에게 던지는 혼란은 대부분 성(性)에서 비롯된다.  동물로써 인정한다면 성(性)의 책임에서 자유롭지만 이성을 갖춘 인간이기에 극심한 자괴감과 책임감으로 고통스럽다.  모순 앞에서 혼란스러운 것이다.  


"죽음은 삶의 대극이 아니라 그 일부로 존재한다."



위 문장은 소설 초반에 나오는 글귀다.  두 번째 읽는 소설의 장점은 먼저, 스토리 궁금증에 쫓기지 않는다는 점과 저자의 의지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었다.  하루키의 어느 에세이집에서도 이런 말을 한 기억이 난다.  그는 늘 죽음을 염두하고 산다고.  나는 당시 당황했던 것 같다.


죽음을 생각하며 사는 삶은 어떤 태도로 사물을 바라볼까 생각하면 경건한 마음이 든다.  태어나서 굴곡 없이 살다가 100세 즈음에 잠자듯 죽는 사람은 사실 얼마 없을 것이다.  죽음의 형태는 다양하다.  교통사고, 병마로 인한 고통스러운 죽음, 스스로 선택하는 자살, 그리고 타살 등등.  그 어떤 죽음도 마땅하고 안정적인 것은 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의 인생에서 안정적인 선택이 가능한 것은 자신만의 지도(자아 또는 목적)뿐이 아닐까.  하루키의 여러 소설에서 내내 말하고 싶어 했던 부분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노르웨이의 숲' 소설 초반에 와타나베와 나오코의 대화 속에 '우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녀는 와타나베에게 우물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우물이 초원 어디쯤에 있는지는 모른다고 말한다.  그리고 마을에서 사라진 사람들은 아마도 우물에 빠졌을 거라고 말한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가장 비극적인 죽음인 '자살'이다.


기즈키와 나오코.  또 나오코 언니.  나가사와의 애인인 하쓰미는 우물에 빠진 사람들이다.  요양원에서 영원히 나올 수 없을 거라던 '레오코'는 어찌 되었든 주인공 '와타나베'를 통해 우물에서 빠져나온  유일한 사람이다.  힘들지만 모순의 이 생에서 우리는 목적의 지도를 붙들고 산다면 우물에 빠졌더라도 나올 수 있다.  




<노르웨이 숲 / 무라카미 하루키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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