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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밤

어두움 속에서도 빛이 되는 소설



고통 안에서 시간은 직선으로 흐르지 않았다.  나는 자꾸만 뒷걸음질 쳤고 익숙한 구덩이로 굴러 떨어졌다.  다시는 회복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조바심 서린 두려움이 나를 장악했다.  나는 왜 내가 원하는 만큼 강해질 수가 없을까.  이렇게까지 노력하는데도 왜 나아지지 않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오래 울던 밤에 나는 나의 약함을, 나의 작음을 직시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야 했던 기구한 여성의 인생을 개인의 기억과 기록(편지)을 통해 형상화한 소설이다.  단순히 과거를 쫓아 회상하는 방식이 아닌 현재 치유하지 못한 개인의 고통(남편의 외도로 인한 이혼)과 증조모의 삶을 대비시키면서 스토리를 정리하는 방식이 굉장히 자연스럽게 읽힌다.  


이 소설은 4대 걸친 증조할머니, 할머니, 엄마, 딸의 가족이야기다.  이혼한 딸 '지연'이 엄마와 소원해진 할머니를 우연히 지원한 '희령'이란 지역에서 만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평범한 삶을 살기를 원했던 엄마의 소원하나 이루지 못한 딸이 된 '지연'은 쿨한 할머니(영옥)에게 오히려 마음이 열리고 할머니 집을 오가며 자신의 현재 고통을 대화 속에서 치유받는다는 내용이다.  


주인공 '지연'의 성격은 말수가 적고 차분하며 인내심이 강한 여성이다.  정답을 향해 서바이벌 게임을 하듯 삶을 정확하게 살지만 서서히 한계를 느끼며 벅차한다.  계속해서 자신의 존재를 상향시켜야 인정받는 현실은 얼마나 숨 막혔을까.  그녀는 의지하던 언니를 잃고 믿었던 남편마저 외도를 해 이혼을 하게 되는데 가족들은 인내하며 조용히 살지 않은 그녀를 탓한다.  어느 가정에나 독특한 문화가 있지만 사실 알고 보면 대대로 이어져온 훈육과 분위기로 형성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렇게까지 스스로를 학대하고 힘들어하는 자식을 방관하는 부모라니, 나는 '지연'이란 여성이 딱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희령'에서 만난 외할머니에게서 증조할머니(삼천이)의 역사를 들으면서 지연의 변화가 시작된다.  자신의 얼굴이 증조할머니와 똑 닮았다면 그녀의 인생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의 존재감의 원천이 증조할머니라면 그녀는 자신을 구원할 방법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을 것이다.


외할머니의 엄마인 증조할머니(삼천이)의 인생은 과거의 억압된 여성의 표본이었다.  게다가 삼천이는 백정의 자식으로 사람취급도 받지 않던 시절의 여인이었다.  항상 머리를 숙이며 다녔고 몰매를 맞아도 항의할 곳이 없던 시절이었다.  천주교신자였던 증조부의 도움으로 도망쳐 결혼하고 소설은 증조할머니(삼천이)의 개성생활을 여과 없이 들려준다.  할머니의 기억이지만 '지연'이 써 내려간 증조모의 인생이다.  그곳에서 절친(새비)을 만나고 두 여인은 새 생명(자식)을 갖는다.  백정임을 알았어도 신분의 벽을 허문 여인은 친구 새비 였다.


삼천이의 딸(영옥)은 현재 지연의 할머니다.  세비도 딸(희자)을 낳는다.  소설이 모두 딸을 낳게 설정한 것만 봐도 억압된 시대를 살아가는 여인의 삶을 비교하듯 보여주려 했던 것을 독자는 눈치채야 한다.  


영옥과 희자는 엇갈린 삶을 살아가게 된다.  두 여자의 훈육은 훗날 아이의 미래를 완전히 바꾸게 된다.  소설이지만 독자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저항 없이 받아내는 사람과 강하게 밀어내며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차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비교를 통해 독자들에게 한 번뿐인 인생을 후회 없이 살도록 대비시켜 준다.  새비의 딸 희자가 박사가 된 후 당당히 인터뷰를 하면서 신념이 강했던 엄마를 떠올린 대목은 뭉클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희자.  내 이름은 '기쁜 아이'라는 뜻이에요.  내가 기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은 것이기도 하지만, 나라는 아이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기쁨이라는 뜻도 담겨 있다는 것을 나는 들어 알고 있었어요.  나는 그 마음을 소중히 품고서 인생을 헤쳐왔어요.  희자, 희자... 잠을 자려고 누워서 천장을 보며 내 이름을 조용히 불러보곤 했습니다.



우리는 한국사에 있어 다루기 난해하고 힘들어하는 부분이 아이러니하게도 최근의 역사인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이후 현대사가 아닐까 싶다.  소설은 아픈 역사 속임에도 악착같이 살아가려는 여성들의 절박함을 괴롭지 않게 써 내려갔다.  처절했지만 그 속에서 웃음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던 모습을 보여주려 했던 것 같다.  힘들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대부분 그렇게 닥친 삶에 억울하지만 수긍하고 참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띤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고 자위하면서.  하지만 결코 이기는 것이 아니다.  삶의 발전은 누군가의 긍정적인 저항과 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바뀌어 왔음을 알아야 한다.  


인간의 뇌는 극도의 불안을 느끼게 되면 각인하듯 기억을 저장하는 본능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신념이 되어 자신을 지키며 살아내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내가 지금 처한 고통이 낭떠러지라면 오히려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직시해야 한다.  부정적인 생각은 결코 득이 되지 않는다.  


소설은 걱정 많은 독자들을 위해 해피앤딩으로 끝맺어 준다.  



<밝은 밤 / 최은영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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