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작별하지 않는다_한강

작별하면 않된다



그 겨울 삼만 명의 사람들이 이 섬에서 살해되고, 이듬해 여름 육지에서 이십만 명이 살해된 건 우연의 연속이 아니야. 이 섬에서는 삼십만 명을 다 죽여서라도 공산화를 막으라는 미군정의 명령이 있었고, 그걸 실현할 의지와 원한이 장전된 이북 출신 극우 청년단원들이 이 주간의 훈련을 마친 뒤 경찰복과 군복을 입고 섬으로 들어왔고, 해안이 봉쇄되었고, 언론이 통제되었고, 갓난아기의 머리에 총을 겨누는 광기가 허락되었고 오히려 포상되었고, 그렇게 죽은 열 살 미만 아이들이 천오백 명이었고, 그 전례에 피가 마르기 전에 전쟁이 터졌고, 이 섬에서 했던 그대로 모든 도시와 마을에서 추려낸 이십만 명이 트럭으로 운반되었고, 수용되고 총살돼 암매장되었고..






반복하지 않으면 잊히고 그러다 지워 버리는 얄팍한 인간의 습성을 아는 한강씨가 가벼우면서도 흡수력 강한 그녀만의 필체로 일깨워준 소설이다. 복잡하지 않은 스토리 안에 묵직한 팩트가 있어서 더 울림이 컸던 것 같다.  늘 아름답게만 보였던 눈이 이렇게 슬프게 느껴질 줄이야..


읽고 나니 마음이 너무 안 좋다. 저자는 편하고 아름답고 자유로운 제주도 풍경만 보지 말고 억울하게 울부짖으며 죽어간 수많은 이들의 피와 외침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달라고 통곡하는 것 같다. 그동안 그렇지 못해서, 노력하지 않아서 부끄러운 마음이 크다.  이 소설의 파급력은 얼마나 될까.  사람들은 그녀의 울부짖음을 듣고 제주 4.3 사건을 검색하며 여태까지 손 놓고 있던 것을 자책하며 가슴 아파할까? 이 소설이 제 역할을 해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그렇다.  이 소설은 제주 4.3 사건의 피해자 가족의 이야기다.


제주 4.3 사건은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를 기점으로 7년간 이어진 비극으로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군경의 진압과정이 혼합되어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현대사 최대 비극사건이다. 해안을 통제하고 언론에 재갈을 물려 제주도를 외부로부터 고립되게 만들었고, 제주도 중산간마을에 대한 초토화 작전을 벌였다. 이 사건의 총희생자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최대 제주도민 8분의 1이 죽거나 행방불명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고 현재까지도 유해발굴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5.18 민주화운동의 배경과 전개과정, 의의까지 제법 자세하게 교과과정을 통해 공부를 한다. 또한 영화, 소설 등 많은 적극적인 문화매체를 통해 인지를 하고 있다. 반면 4.3 사건은 걸음마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4.3 사건은 광주 5.18과 비슷한 점이 많다. 똑같이 우리 군에 의해 무수히 많은 국민이 희생됐고 아직도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았다.


 이 사건들의 공통점은 좌우이념이 뭔지도 모르는 주민들이 빨갱이로 몰아 한꺼번에 몰살하거나 총칼로 끔찍하게 죽었다는 점이다. 특히 제주도민들은 스스로 반세기가 넘도록 4.3 사건을 언급하는 것조차 꺼려했다.  공산폭동자로 낙인 되면 사회활동에 제약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이 전달하는 제일 큰 감정은 이념논쟁으로 광주 5.18과 제주 4.3을 폄훼하는 것도 끔찍하지만 무엇보다 진상규명과 함께 가슴 아픈 역사의 기억을 우리 모두 잊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조건이다.


소설의 주인공 '경하'는 반복되는 악몽에 시달리다 자살을 계획한다. 그녀가 탈고한 5.18 학살에 대한 내용이 그녀의 몸과 정신을 지배한 탓이다. 그만큼 5.18에 대한 시민의 고통은 간접적이라 할지라도 이겨내기 힘든 사건이다. 그런 와중에 오랜 제주도 친구 '인선'으로부터 손가락이 절단되었다는 급한 전화가 걸려온다. 자신의 간호부탁이 아닌 제주도집에 혼자 있는 앵무새를 돌봐달라는 사정이다.


'인선'은 한때 사진과 다큐멘터리 영화 작업을 했었지만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제주도로 내려간 친구다. 경하의 상태는 자살기도를 여러 번 했기 때문에 극도의 체력이었지만 간절한 친구의 부탁으로 앵무새를 구하러 제주도로 향한다. 하지만 폭설과 강풍이 동반한 변덕스러운 제주도는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경하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날씨를 뚫고 어렵게 인선의 집에 도착하지만 새는 이미 죽어있었다. 힘든 걸음이 수포로 돌아간 것이다.  


이후 소설은 묘한 기류를 탄다. 병원에 있어야 할 인선이 나타나고 죽은 새가 살아나 날아와 앉는다. 현실인가, 꿈인가. 경하는 동사한 것인가.. 독자에게 던지는 상상의 몫이다.


돌아온 '인선'은 '경하'에게 4.3사건에 연루되었던 그녀의 어머니와 행방불명된 가족들, 그리고 무서웠던 4.3 사건의 대한 수많은 기사와 인터뷰들 속 인물들을 꺼내 거미줄처럼 이어 붙인다.


5.18 항쟁은 잔혹한 역사이나 그나마 저항이 있었지만 제주 4.3 사건은 일방적인 학살이었다는 사실이 숨 막히게 읽힌다. '경하'와 '인선'은 마지막 이야기를 들으러 꺼져가는 촛불을 들고 진압군을 피해 동굴 속으로 숨어 들어간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가면서 소설은 끝난다.


우리에겐 잔혹의 역사가 등 뒤에 서 있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간다면 영원히 묻힐 과거다.  하지만 그렇게 살면 반복될 역사다. 외면한다고 될 일이 아닌 것이다. 인간의 존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우리는 몸으로 체험했다. 잘못된 지도자를 뽑으면 시민은 임기 내에 뼈아픈 고통으로 선거에 대한 책임을 진다. 그렇게 책임의 시기가 지나가면 끝나는 것인가 자문해 봐야 한다. 이 소설은 우리의 아픈 과거와 작별하면 안 된다고 소리치고 있다.


소설은 미완성인 채로 끝난다.  당연하다.  해결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작별하지 않는다_ 한 강 저>

매거진의 이전글 밝은 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