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 버금가는 지능을 지닌 고래들의 사회는 다르다. 거동이 불편한 동료를 결코 나 몰라라 하지 않는다. 다친 동료를 여러 고래들이 둘러싸고 거의 들어 나르듯 하는 모습이 고래학자들의 눈에 여러 번 관찰되었다. 그물에 걸린 동료를 구출하기 위해 그물을 물어뜯는가 하면 다친 동료와 고래잡이배 사이에 과감히 뛰어들어 사냥을 방해하기도 한다.
2001년 초판이 발행되었고 개정판이 나온 지금까지 여전히 사랑받는 자연과학도서다. 짧은 에세이형식으로많은 동물들의 생태계를 이야기하고 있는 이 책은 인간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나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동물들을 통해 배워야 할 생명에 대한 의식을 깨우쳐 주고 있다. 동물 사회가 얼마나 질서 정연하고 진보적이며 과학적인지, 인간보다 얼마나 신의 있고 따뜻한지 이 책을 통해 보여준다.
그의 시선은 언제나 정겨운 동물을 먼저 향하고 이후 인간 사회로 전환한다. 동물들이 인간에게 전달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저자가 대신해주는 것만 같다. 우리는 귀담아 그들이 전하는 생명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귀감이 되는 동물은 역시 고래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인기리에 종영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고래덕후 우영우변호사 덕에 고래에 대해 많은 관심들이 있었던 시기가 있었다. 고래는 모성애도 강하고 동료애도 뛰어난 동물이라고 한다. 고래는 여느 물고기와 달리 폐로 호흡하기 때문에 탯줄이 끊어지자마자어미고래가 새끼고래를 등에 업고서 물 위로 밀어 올려 숨을 쉬게 해준다고 한다. 또한 동료애도 강해서 위기에 닥친 동료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다고 한다.
또 오해하는 동물도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다. 우리들은 흔히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는 사람을 일컬어 '박쥐 같은 인간'이라고 흉을 본다. 하지만 실제로 박쥐가 빠는 피의 양은 몇 번 핥을 수 있는 정도이고, 그마저도 구하기 힘들어 굶기가 일쑤라고 한다. 그들은 피를 배불리 먹고 돌아온 날엔 배고픈 동료들에게 피를 나눠주는 헌혈 풍습이 있다고 한다. 우리가 코로나바이러스 원흉이 박쥐라고 해서 욕할 자격이 되는가 싶다. 인간이 환경을 파괴하고 기후변화를 일으키고 동물을 매개로 한 실험이 원인이 아닌가 말이다.
반면 외모와 달리 모성애와 형제애를 도통 찾아볼 수 없는 동물이 있는데 바로 백로다. 하얀 깃털과 긴 다리로 유유히 서 있는 자태와는 달리 둥지 안에서 형제들 간에 피비린내 나는 경쟁을 한다. 서로 둥지 밖으로 밀어 떨어뜨리거나 어미에게 먹이를 받아먹지 못하게 서로 싸움을 서슴치 않는다. 어미는 끔찍한 싸움을 그냥 바라 볼뿐이다. 생존경쟁이 심한 생태계에서 살아남지 못한 자식은 일찌감치 사라져 주는 것이 경제적이라고 어미는 판단하는 모양이다.
저자는 꿀벌들과 개미에 대한 관찰에 진심이었다. 여왕개미에 대한 관찰은 참 재미있게 읽었다. 여왕개미의 화학적 분미물에 의해 점령한 포로개미들을 자기 부대의 수하로 만든다는 얘기는 눈을 크게 뜨게 한다. 꿀벌들이 동료 벌들에게 꿀단지가 많은 꽃들의 위치를 알려주는 행동들도 재미있다. 우리가 근면성실한 사람들을 개미에 비유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개미들은 군락 전체로 볼 때 부지런한 것이지 한 마리 한 마리를 놓고 볼 때는 결코 부지런한 동물이 아니다. 물론 종에 따라 다르고 군락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어느 군락이건 일하는 개미들이 전체의 3분의 1을 넘지 않는다. 열심히 일하는 개미들에 비해 두 배는 족히 되는 개미들이 꼼짝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기만 한다.
그러니 실제로 개미들의 평균치를 보면 주 4일도 일을 안 한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인간들이 동물들 중에 제일 일을 열심히 한다는 것이다.
오해하는 동물 중에 최고로 뒤통수를 치게 만든 것은 '원앙'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동물행동학자들 연구에 의하면 수컷원앙은 아내가 버젓이 있는데도 호시탐탐 다른 여자원앙을 넘보는 뻔뻔스러운 남편이라고 한다. 심지어 반강제적으로 남의 여자원앙을 겁탈하기도 일쑤라고 한다. 세상에나, 맙소사.
저자는 그저 동물들의 생태를 재미있게 알게 하려고 책을 낸 것이 아닐 것이다. 동물들의 다양성을 보며 인간들의 사회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깨우쳐야 한다는 의미일 테다.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그 어느 것도 하찮고 부족하지 않다.
인간은 공감하는 동물이다. 인간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등하다 여겨졌던 동물사회는 우리보다 훨씬 진보적이기도 하고 더 따뜻한 신의가 넘쳤다. '동물의 왕국'이 여전히 인기리에 방영되는 것은 결국 인간도 동물의 하나이며 그 속에서 공생해야만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