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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팬지 폴리틱스(권력투쟁의 동물적 기원)

정치는 인간만의 영역이 아니다


인간은 말하는 영장류이지만 행동은 침팬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말다툼, 도발적인 언어폭력, 항의와 간섭, 화해의 인사 등 여러 형태로 언어를 활용하지만, 침팬지는 그것들을 언어가 아닌 형태로 표현하는 것뿐이다.  침팬지는 비명과 큰소리를 지르고, 문을 두드리고, 물건을 던지고, 도움을 청하고, 나중에는 우호적인 접촉이나 포옹으로 무마하려 한다.  우리 인간들도 보통 의식적인 결정 없이 그러한 형태의 행동을 모두 연출한다.  이러한 행동들의 동기를 볼 때 인간과 침팬지는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말, '윤석열 정부 미래에 대한 생물학적 고찰'이라는 주제로 유시민작가의 학술발표 동영상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그분이 흥미롭게 인용하며 말한 책 내용이 너무 궁금해 읽은 책이다.  당시 유시민 작가는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은 무지와 무능, 무도함으로 일관되었다고 비난하며 사회적 약자를 무시한 그의 정치적 말로는 비참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정치의 기원이 인류의 역사보다 더 오래됐다는 아른험 동물원의 연구를 인용했다.


침팬지는 호모사피엔스인 인간과 같은 공동조상 유전자(99%)로 진화한 영장류이고 사회생물학적 측면에서 볼 때 유사한 부분이 상당히 많다.  60년대, 인간만이 유일한 영장류라는 편견을 깬 제인구달 선생의 보고 이후 활발하게 침팬지의 능력에 대한 연구가 이어졌고, 침팬지의 사회행동에 대한 연구까지 봇물처럼 쏟아지게 된다.  그 흐름의 기폭제가 된 것이 바로 '침팬지 폴리틱스'다.  


세계에서 침팬지의 집단생활을 포괄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곳은 네덜란드 아른험에 있는 동물원이 유일하다고 한다.  이곳에서 연구진들은 침팬지의 동물의 행동을 생물학적으로 관찰하며 침팬지들의 사회구조를 면밀히 조사했고 규칙적으로 전개되는 여러 가지 동물들의 행동 패턴을 종합하여 게슈탈트 지각(Gestalt Perception) 원리를 찾아냈다.  그리고 드디어 침팬지의 의사소통인 신호와 행동에 대한 해석을 완성했다.  무엇보다 연구진의 동물행동학이 신뢰가 가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자연환경'에 가까운 자연적인 조건에서의 '자발적인 행동'을 강조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자발적이고도 본능에 가까운 침팬지 군집생활을 연구하다 보면 인간의 원초적 욕망과 권력에 대한 해석을 찾을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인간과 유사한 침팬지의 민첩한 행동 안에서 찾아낸 관찰의 결과치는 상당히 놀랍고 흥미롭다.


침팬지는 확실히 고등동물이다.  그들의 행동은 아주 유연해서 자신의 행동에 대해 다른 개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또 그 결과 자신은 무엇을 얻는지 등에 대해 모두 알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여러 가지 상황예시가 있었는데 '연기'를 한다는 것과 '융통성'을 발휘하는 행동등은 정말 놀라웠다.  연구자들은 침팬지들에게 각각의 이름을 붙였는데 너무나 자연스럽게 읽힌다.


이에룬은 앉아 있는 니키 앞을 지나 뒤편으로 갈 때까지, 즉 니키의 시야 속에 있는 동안에만 계속 불쌍한 모습으로 절뚝거리지만, 일단 니키 옆을 지나가면 갑자기 태도가 바뀌면서 정상으로 걷기 시작했다.  이에룬은 거의 일주일 동안 니키의 시야에 들 때마다 그런 행동을 했다.  이에룬은 연기를 한 것이다.  그는 자신이 중상을 입었다는 사실을 니키가 실제로 보고 믿게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이에룬은 예전의 싸움에서 중상을 입고(어쩔 수 없이) 절뚝거렸을 때, 경쟁자가 그에게 그리 가혹하게 대하지 않았던 기억을 통해 그 같은 책략을 배웠을 것이다.



그들의 의사소통은 지능적인 사회적 조작과 매우 흡사했다.  이 대목을 읽을 때 어이가 없어 혼자 많이 웃었던 것 같다.  침팬지들 간의 엄격한 서열, 권위적인 지위의 위엄은 흡사 대부와도 같은 존경심마저 느끼게 한다. 주변의 침팬지들은 자신의 행동이 아닌 대부(암놈 '마마')의 위엄을 이용할 줄도 알았다.  그것을 저자는 '목적성을 가지고 생각하는(think purposefully)'능력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책에서 흥미롭게 읽히는 부분은  '권력 쟁취'에 대한 대목이 아닐까 싶다.  장성한 수놈 침팬지의 송곳니는 표범의 그것만큼이나 위험하지만 그러기에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절대 혼자 힘으로 권좌에 올라서지 못하기 때문이다.   


침팬지 두 마리가 서로 때리거나 위협을 하기 시작하면 제3의 침팬지가 개입해서 한쪽 편을 들어준다.  그 결과 두 마리가 제휴해 한 마리와 싸우게 된다.  많은 경우, 싸움이 더욱 확대되고 더 큰 연합이 형성된다.  모든 것이 매우 빠르게 이뤄지는 바람에 침팬지들은 다른 놈들의 공격에 의해 그저 맹목적으로 싸움에 가담하는 것처럼 보이기 쉽다.  그러나 이는 진실과는 한참 동떨어진 상상일 뿐이다.  침팬지들은 절대로 계산 없이 행동하지 않는다.



그렇게 권력의 정점에 올라 권좌에 오른 우두머리 침팬지의 행동분석이 흥미로웠다.  힘의 권력이 아닌 '패자의 지원자'를 자청한다는 점이다.  약자 쪽과의 결속을 보여줌으로써 암놈들의 지지를 얻었고 사회적 관계를 싸움의 결과로 결정했다는 점이었다.  경쟁자들을 주눅 들게 함으로써 연대의 힘을 자신의 권력 지지선으로 이용했다는 점이다.


라윗은 일인자 자리에 오른 뒤에는 약자 쪽과의 결속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집단의 두목이 되기 전에는 35퍼센트만 패자를 지원했지만 왕좌를 차지한 뒤로는 이 수치가 69퍼센트로 증가했던 것이다.  이런 대조는 윗의 태도에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게다가 1년 뒤에는 패자에 대한 라윗의 지원이 86퍼센트에 달할 정도로 늘어났다.



약육강식세계로만 해석되는 동물의 세계에서 침팬지의 집단 지도체제의 질서는 새롭게 읽힌다.  침팬지 집단의 리더는 질서를 유지해 주는 대가로 구성원들로부터 지원과 존경을 받았다.  그렇다면 약자의 지원자의 입장에 서지 않은 리더는 어떻게 되었을까.   차기 리더였던 '니키' 침팬지는 날쌔고 강한 리더였지만 약자의 입장은 아니었다.  '니키'는 지도력을 공유했던 노련한 동지 침팬지의 변심으로 무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공격을 당하고 결국 도망치다 수로에 빠져 죽는다.


'약자의 지지자' 역할을 하는 리더가 집단의 지지를 받는 것은 결국 호의의 결과라기보다 의무에 가깝다는 결론이란 점과 약자를 지켜주지 않는 리더는 도전자의 권력투쟁 시 무리의 지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권력은 사회적인 게임이지만 사회관계를 어떻게 조성하느냐에 따라 승패는 이미 판가름 난다는 것이 권선징악의 결말처럼 느껴진다.  


올해 4월 총선이 참으로 중요하단 생각이다.



<침팬지 폴리틱스 / 프란스 드 빌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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