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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작은 자본가들과 벌거벗은 노동자가 사는 세상


자본주의에서 상품의 역사는 사치품이 필수품이 되는 역사예요.  자동차가 예전엔 사치품이었잖아요.  자동차가 생기면 일터와 거리가 먼 곳에서 아파트나 전원주택이 생겨요.  이제 자동차 없이 양평이나 일산 쪽에서 출퇴근하기 힘들어진 거죠.  그러면 어느 사이엔가 자동차가 필수품이 된 거예요.  그만큼 삶이 복잡해지고 쓸데없는 것에 시간을 낭비하게 되죠.  삶의 로컬리티도 훼손되고, 버리는 시간도 많고 환경도 오염돼요.  스마트폰도 마찬가지예요. 처음에는 사치품으로 출발했어요.  당시 전화도 있었고, 인터넷도 있었죠.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은 지금 스마트폰이 필수품이 되어버렸어요.




거리의 철학자 강신주박사와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 씨의 대담집이다.  대담집이 출간하던 2022년 당시에  두 사람의 건강은 원인만 다를 뿐 서로 악화된 상태에서 이루어졌다.  나는 그들의 건강악화가 마치 억압적 자본주의체제에 대치하다 결국 쓰러진 전사들처럼 보여 조금 당황스럽게 시작했는데, 다행히 에필로그를 읽을 즈음엔 조금씩 차도가 느껴져 안도를 했던 것 같다.  


이 대담집은 작은 자본가가 되어버린 당대의 시대적 문제를 철학적 담론으로 비판한 내용을 담고 있다.  더 이상 대적할 상대가 없어진 자본주의 체제의 앞에서 그의 비평은 과연 효과가 있을까마는 그럼에도 일관된 그의 날카로운 철학이 살아남기를 나는 소망한다.  누구나 자본주의 세상을 비평하지만 거대한 바위가 된 체제를 비켜갈 뿐 옮기거나 부서트릴 용기는 없다.  하지만 강신주박사는 "함께 옮겨요!"라고 끝까지 외치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다 결국 희망이 없어진다면 그 바위 위에 옮겨야 할 이유를 새겨놓고 죽겠다고까지 말한다.  


고물가, 고금리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나라 소자본가인 자영업자 비중은 전체 취업자 수의 20%가 된다는 보도를 들었다.  그들의 수입은 최저시급도 안 되고 빚은 갈수록 늘고 있다.  그들의 미래는 바람 앞에 촛불과도 같다.  왜 그럴까.


자본주의 체제의 오류는 이미 19세기 칼 마르크스가 정확히 지적을 했다.  그는 자유경쟁 자본주의는 결국 거대한 독점자본을 출현하게 만들 것이고 그로 인한 부익부, 빈익빈 사회는 심화될 것이라고 예언했고 그대로 현실이 됐다.  이 대담집을 읽노라면 자본주의에 대한 강한 어조와 비판에 불편한 기분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 테지만, 불편하다는 것은 진실이란 사실도 인정하고 읽었으면 좋겠다.  


자본주의는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한다.  내가 가난한 것은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결론 지을 뿐 견고한 자본주의 바위가 근본적 문제라는 사실은 간과한다.  마르크스가 밝혔던 것처럼 자본주의는 물적 생산수단을 없애서 자기 노동력 밖에 없는 '벌거벗은 노동자'로 만들 뿐이다.  그들은 자본재를 가진 자본가들에게 노동력을 팔 수밖에 없는 몸이다.  


고대 이집트 시대와 지금의 자본주의 시대는 인류가 진보한 것처럼 보일 뿐 노예제에서 노동자제로 바뀌었을 뿐이다.  자본주의체제와 개인의 욕망은 추구하는 바가 같아서 이제 통제하기 힘든 기차가 된 시대에 살고 있다고 저자는 우려한다.  


낡은 것은 버리고 새로운 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취향을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각인시키고 있어요.  자본주의는 계속 신제품을 만들어서 사용가치가 다하지 않은 제품을 버리고 새로 사도록 만들어야 하니까요.  산업자본주의가 작동하기 이전 시대에서는 어땠을까요?  낫이 다 닳아서 쓸모를 다했을 때 바꿨어요.  당연히 낫을 다량으로 소유할 필요가 없었죠.  집에 옷이나 신발이 쌓여 있지도 않았어요. 옷이 해지거나 신발이 닳을 때 옷이나 신발을 구하면 되니까요.



자본주의는 개인의 욕망과 공동체 해체를 끊임없이 세뇌하듯 반복하고 있다.  개인을 해체하고 분업체제를 공고히 해야 공동체가 파괴되고, 서로 불신해야 보험이 팔리고 전문가가 양상 되기 때문이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이고 개인의 욕망을 부추겨야 신제품을 팔 수 있다.  사치품이 필수품이 된 사회다.  신제품 광고가 나오면 멀쩡한 것이 헌 것이 되어 버린다.  사회는 개인의 욕망과 결부되어 끊임없이 양산되고 버려지는 악순환이다.  


대담집을 읽다 보면 독자의 입장에서 그의 자본주의사회의 비평에는 고무되지만 책으로 알리기엔 한계가 있다고 생각이 든다.  나는  자본주의 사회의 제대로 된 비평과 오류는 언론에서 힘을 실어줘야 시너지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요즘 언론들을 보면 많이 언짢다.  모 아니면 도 이런 식으로 현상과 사건을 간단하게 한 쪽으로 몰고 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와 갈등의 합리적 해결을 등한시하는 언론사는 의무를 저버리고 자본(독점기업)에 포섭된 영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제라도 언론매체는 자본주의사회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노동계급의 피해를 정확히 알리고 특정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현실을 정확하게 비판하며 소외된 측의 권익을 위해 앞장서야 훗날 책임을 조금이나마 면할 것이다.  


대중매체보다 휴대폰 영상에 길들여진 신세대 의식세계도 사실 걱정이 많다.  트렌드코리아에서도 지적한 개인 유튜버(세포마켓)까지 양성되듯 퍼져가면서 편향된 돈벌이용 영상제작자들은 사건을 면밀히 살펴보고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속전속결로 문제해결을 찾는 쇼트 서비스가 현실에 부응하듯 대처한다고나 할까.  


'소비사회'라는 논리로 자본주의가 발달해야 되기 때문에 노동계급한테 소비자의 위상을 주는 거예요.  월급을 주고 물건 만들고, 또 그 돈으로 소비하고, 이 과정이 계속 돌면서 계속 월급쟁이 생활을 하지만, 과거 농노보다는 경제 사정이 좋죠.  하지만 자기가 원하는 것을 못 하기는 마찬가지예요.



자본주의는 공동체에서 쪼개진 개개인들이 생계를 걸고 참여하는 게임이라고 말하는 강신주박사의 대담집을 읽노라면 거대한 패놉티콘(원형감시탑)에 수용되어 감시당하며 부속품으로 팔 것이라곤 노동력 밖에 없는 수용자가 되어 살아가는 기분이 들어 우울해진다.  


거대한 자본주의 바위가 우리 앞에 놓여 꿈쩍도 하지 않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있기나 한 걸까.  


"타자와 소통하고 연대할 수 있는 사람들, 소수 지배자가 되거나 그들 편을 들지 않고 지금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아픔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됐으면 좋겠어요.  체제에 편입하기보다 이 힘든 체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고통을 공감하면서 인간적 유대를 맺을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런 지혜와 용기를 가지고 살아가는 삶이 가치 있고, 그런 사회를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도록 만들어갔으면 좋겠어요."



우리의 마음속에 영원한 진리처럼 고수하고 있는 신념에 따르면 좋을 것이다.  그것은 소수가 제외되지 않는 경제적 평등과 부속품처럼 대체되어 사라지는 노동이 아닌 정당한 근로에 대한 소득을 보장받고 인간의 자유를 침해하는 불합리한 관습에는 저항하는 자세다.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질문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공동체로 인해 서로에게 의지되고 안전한 사회,  경제적 평등에 의해 뒷받침되는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말이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 강신주, 지승호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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