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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이웃

주저 앉았을 때 생각한다

사랑의 반대말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누군가는 증오라고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무관심이라고도 합니다.

저는 사랑의 반대말이 소유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은 신의를 낳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로 믿는 토대 위에서 동등하게 자유롭습니다.


소유는 불신을 낳습니다.

소유하는 사람들은 서로 불신하는 토대 위에서 상대를 통제하려다 관계를 망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규칙과 속박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규칙과 속박이 없이도 신의를 저버릴 생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신의를 유지하고 지키는 일은 어렵습니다.

사랑을 시작하는 일만큼 어렵습니다.

노력 없는 신의는 맹신에 불과합니다.


본문 中




허지웅 씨가 '최소한의 이웃'이란 산문집을 냈다. 그의 글을 2년 만에 다시 만났다. 머리가 복잡할 때 적당히 생각하며 읽게 하는 그의 글은 위로와 힘을 준다.


악성림프종이라는 혈액암과 투쟁을 한 뒤에 나온 '살고 싶다는 농담'은 '그럼에도 살자'였다는 인상이 깊었다면, 이번 책은 '고통스러운 삶일수록 사유하며 평정을 갖아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최소한의 이웃'은 그런 의미에서 공동체 삶을 영위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사유의 의미를 곳곳에서 일깨워준다고 느꼈다.


자판기처럼 누르면 바로 튀어나오는 정보의 시대에 적응해서인지 요즘 미디어를 보면 쉽게 팁만 제공해 줘 정작 내용이 빠진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흑백논리만 무성하달까.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은 차단하고 대화자체를 거부한다. 힘 센 사람이 정의가 된 기분이다. 허지웅 씨의 산문집은 근간 사람들의 성향에 맞게 맞춤형 산문집을 내놨다. 짧은 글로 긴 글을 소화 못 시키는 독자들을 안내했고, 짧지만 글 안에는 사회, 정치이슈들을 굵고 의미 있게 전달하며 우리가 '타인이 아닌 이웃'으로 어떻게 관조해야 할지 얘기한다.


이 책은 코로나팬더믹 속에서 일상회복을 위해 고통스럽게 견디던 시기에 쓰였다. 읽다 보면 사회, 정치 곳곳에 일어났던 수많은 기사들이 떠오른다. 저자는 그 사건들을 하나하나 상기시키며 우리가 이웃으로써 어떤 생각을 해야 하는지 묻고 있었다.


우리가 사회적 사건에 공분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원칙과 상식이 무너졌을 때다. '최후의 마지노선'이 지켜지지 않음에 질타할 줄 아는 공감대인 것이다. 그것은 최소한의 부끄러움과 고마움을 느끼는 인간적 배려인 것이다. 그것은 '이웃의 자격'에 해당된다.


나는 그중에서도 6부 '사유: 주저앉았을 때는 생각을 합니다'란 글들이 남는다. 인간은 '욕심'으로 망한다는 말이 있다. 저자는 '소라게'얘기를 꺼낸다. 소라게는 자신에게 필요한 정확한 크기의 집을 찾아 옮긴다고 한다. 자신이 건사할 수 있는 욕심의 크기를 알고 그 이상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톨스토이의 '사람은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다'란 글도 상기시킨다. 욕심은 자신을 망치고 형제를 망치고 이웃을 망치고 결국 사회를 망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누구나 인간으로 태어나지만 사람으로 죽는 자는 많지 않다는 저자의 말이 떠오른다.


인간은 경험한 만큼 세상을 바라보고 삶을 결정한다. 인간은 삶 속에서 좌절하고 주저앉았을 때 비로소 생각을 한다. 나의 삶은 괜찮은가 보는 것이다. 우리가 고통 속에서 희망을 찾지 못하는 것은 기다림이 적어서다. 세상은 공감하는 이웃이 많을 때 바뀐다. 그리고 모든 것은 태도로 결정된다. 좋은 위안과 결정에 도움을 받은 것 같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하여 경험을 재료로 나만의 답을 찾는 것.

그리고 그 답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고 겸허한 마음으로 나의 쓸모를 찾는 것.

중요한 건 경험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이후의 태도에 달려 있다."



<최소한의 이웃_허지웅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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