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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다는 농담

자신의 불행을 객관화 해보자

불행이란 설국열차 머리칸의 악당들이 아니라 열차 밖에 늘 내리고 있는 눈과 같은 것이다. 치명적이지만 언제나 함께할 수밖에 없다. 불행을 바라보는 이와 같은 태도는 낙심이나 자조, 수동적인 비관과 다르다. 오히려 삶을 주체적으로 수용하고 주도하겠다는 의지다.


이는 불행을 겪고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상황과 자신을 분리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 준다. 당장의 감정에 파묻혀 스스로를 영원한 피해자로 낙인찍는 대신 최소한의 공간적, 시간적 거리를 바라볼 수 있게 한다.


본문 中




방송인이자 작가인 허지웅 씨가 악성 림프종(혈액암) 항암치료를 끝내고 발간한 책이다. '버티는 삶에 관하여'란 에세이집 이후 나온 책이다. 그가 혈액암으로 입원을 한다는 소식을 읽었을 땐 안타까웠던 마음에 이겨내길 기원했다. 그리고 드디어 책이 나왔다. 생각해 보면 그에게 버티는 힘은 '글쓰기'가 아니었을까.


항암치료는 생사를 오가는 고통스러운 과정이라고 알고 있다. 책에서도 언급이 되는데, 그 표현이 내가 상상하는 그것과 같아서 솔직히 놀랐다. 나는 어렸을 때 '죽음'에 대한 공포로 잠을 자는 게 두려웠다. 지금 생각하면 가위에 눌렸던 것 같은데, 천장과 바닥이 누워있는 나를 향해 옥죄어 와서 내가 압사되는 상황이었다.


그는 항암치료 이후 좌절하는 청년들을 향해 살아야 하는 이유를 적고 싶어 글을 썼다 고백한다. 읽다 보면 확실히 이전 에세이와 다른 진정성이 묻어 있다. 전작이 사람과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자신을 지탱하며 버텨며 사는 것이 답이라는 느낌이었다면 이번 책은 '결론처럼 불행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더라도' 자신의 불행을 객관화할 수 있는 힘을 길러 보자는 내용이다. 절실하면서도 꽤 심오한 내용이다.


요즘 코로나사태 이후 일터의 질이 확연히 낮아지고 힘들어진 것을 느낀다. 신호등 대기로 서있다 보면 배달오토바이를 탄 젊은이들이 최소 네 다섯 정도 정차하고 있다. 몇 년 전 금수저, 흙수저 얘기로 쓴웃음 짓던 이야기가 현실이 된 요즘, 청년들의 좌절과 우울 그리고 불행의 현실지수는 얼마나 될까 생각해 본다.


허지웅 씨는 이번에 생사를 오가는 큰 경험을 하고 돌아왔다. 물론 완벽한 퇴원은 아니다. 내가 보기엔 그는 극한으로 몰린 상황을 다녀온 사람으로서 불행을 동기로 바꿀 무언가를 깨달은 것 같아 보인다. 그리고 그는 살아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망했다고 결론을 내릴 필요가 없음을 말한다.


삶은 불행하다는 결론이 아니라 살고자 하는 '결심'만으로도 이겨낼 가치가 있다는 것. 내가 생각하기에 불행하다면 '불행을 인정하는 것'부터 출발해 보자는 것이다. 불행의 크기는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크기를 재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고 그것은 결국 절망감의 악순환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다.

영화평론가이자 다독가로 인 그가 비유한 니체의 '영혼회귀(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에일리언(제노모프) 이야기는 불행을 대하는 저자의 의지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이 책은 코로나펜더믹 시대를 버텼지만 여전히 힘겨워하는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단 생각이 많이 든다. 출발선이 달라 처음부터 어려운 삶을 살아가고 이기지 못하는 인생이라 낙담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위안과 힘을 줄 것이다. 그의 위로는 단지 위로가 아니라 결심을 하게 만들 것이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가진 가장 멋지고 빼어난 것들 덕분이 아니라 언제 했는지도 기억하지 못하는 오래된 선행들 때문에 구원받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살고 싶다는 농담_허지웅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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