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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의 배신

열심히만 하면 누구나 성공할까?


노력 신드롬은 허구이자 환상이다.  노력을 많이 한다고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노력을 적게 한다고 실패하는 것도 아니다.  노력은 수많은 조건 중 하나일 뿐이다.  세상에는 노력보다 훨씬 더 중요한 조건이 많다.  우리가 애써 못 본 척할 뿐이다.  노력보다 더 중요한 조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 우리 삶이 더 비참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노력 신드롬이라는 허상에 빠져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채 말이다.




우리나라는 미국의 자유시장 경제체제를 따르고 있다.  이는 능력을 중시하는 사회란 의미다.  능력주의는 언뜻 공정하고 공평한 기회를 갖게 해주는 가치로 보인다.  하지만 기회의 평등으로 보이는 능력주의는 이동성에 있지 평등에 있지 않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또한 능력주의는 불평등을 결코 수정하려 하지 않고 정당화하려 한다는 점이다.



'공정하다는 착각(마이클 샌댈 저)'를 통해 우리는 공정하다고 상식처럼 알고 있었던 '능력주의'가 처음부터 불공평한 라인에서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태어난 환경서부터 아니 그 이전(인지능력)부터 이미 불공평하다는 사실 말이다.  


능력주의 신봉이 왜 위험한가


자유시장 경제체제는 종국엔 중산층 몰락으로 이어지고 사회는 빈부격차로 인하여 양극화는 갈수록 심화될 수밖에 없다.  빈부 격차가 큰 나라는 필연적으로 수많은 구조적 문제를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치안과 안보뿐 아니라 취약한 사회 구조적 환경으로 인해 모두가 살아남기 어렵게 된다.  



한국의 중산층은 지속적인 몰락의 트랩에 빠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산층 몰락은 사회의 허리가 사라진다는 의미기도 하다.  탄탄한 중산층이 사라진다는 것은 경제. 정치적 안정성을 높이는 사회의 필수동력이 끊긴다는 뜻이다.  중산층이 사라진 불안구조는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문제로 치달을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이러한 한국의 소득 불평등의 이유를 '노력'의 힘이 너무 과장되어 있기 때문이라며 질타하고 있다.  '노력 신봉 공화국'이라는 말로써 노력이라는 유일신을 추앙하기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성공의 정당성을 너무나 당연시하고 노력에 대한 믿음이 거둬드리지 않는 한 한국인의 노력은 신앙처럼 숭배될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국가는 참 운영하기 좋은 사회다.  모든 문제를 노력하지 않는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면 되기 때문이다.  읽는 내내 착잡한 비난이었다.



노력 신봉 공화국에서는 노력의 힘이 너무 과장되어 있다.  인생에서 성공하고 실패하는 것은 노력으로 결정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다.  노력으로 성공할 수 있으면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성공했을 것이다.  노력보다 훨씬 더 강한 타고난 능력과 자질, 그리고 환경과 기회라는 주요인이 있으며, 그것들은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지는 것들이라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또한 노력조차도 타고난 능력임을 주시해야 한다.  비관적인 태도가 아니다. 


역설적으로 훨씬 더 진보적이고 희망찬 태도다.  승자는 그 종목에 훌륭한 재능을 가졌고, 훌륭한 재능이 실현될 수 있는 가정적. 사회적. 환경적 조건을 가지고 있으며, 재능이 빛을 발할 수 있는 노력이라는 무기조차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세상의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잘못된 방법을 고수하는 사람을 보았을 때 느끼는 좌절감이라고 해야 할까. 저자의 글에서 호통이 들리는 듯했다.  한 사람의 성공 뒤에는 재능, 환경, 노력이라는 세 가지 조건이 조화롭게 일치되어 있다.  또 그 모든 것이 갖추어졌다 하더라도 ''이 작용하지 않으면 소용없다.  그래서 성공한 사람들이 한결같이 '운 좋게 이 자리에 섰다'라는 말을 많이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출생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기 때문이리라.  너무 열심히 살았지만 결과적으로 결과물이 좋지 않은 것이 뻔히 보이는 세상에서 당연한 선택 같다.  하지만 아직도 사회 구축망의 부족으로 개인의 선택이 개인의 책임으로만 전가되는 세상이라는 것이 우울하게 느껴진다.  



우리나라 대학 진학률은 70%가 넘는다.  그런데 사회 구조상 대학 졸업장이 필요한 일자리는 전체의 40%에 불과하다고 한다.  어느 집은 대학교까지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어 출생을 망설이고 어느 집은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사람구실 못한다고 무조건 대학을 보낸다.  대학을 간다는 결심만 하면 모두 대학을 가는 것도 아니다. 전국 8퍼센트 안에 들어야 서울에 있는 15개 대학에 합격할 수 있고, 13퍼센트 안에 들어야 수도권 대학 입학이 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대학을 나와도 취직도 잘 안 되는 것이 당연한 구조 안에서 노력만 주야장천 하는 셈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노력은 필요한 것이다.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절대 아니다.  노력의 힘이 너무 과장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노력의 배신 / 김영훈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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