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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돈키호테

내가 한 최선의 잣대에 냉정할 필요가 있다


"솔아, 사람은 평생 자기를 알기 위해 애써야 해.  그래.  나는 스스로를 돈키호테라 이름 짓고 살아왔지.  하지만 돈키호테를 받아쓰면 쓸수록, 세상에 맞설 내 이야기를 쓰면 쓸수록, 나는 돈키호테가 아니란 사실을 깨닫게 되었어.  돈키호테라면 벌써 그 모든 불의와 부패를 향해 몸을 던지지 않았겠니?  그런데 나는 한순간도 온전히 몸을 던지지 못했어.  그저 시늉만 한 거야.  나는 범접할 수 없는 돈키호테를 따라다니면 그를 흉내 낸 산초일 뿐이더라고."





공전의 히트를 친 '불편한 편의점'의 김호연 작가의 신작소설이다.  '불편한 편의점' 히트작 전에도 그는 시나리오, 만화 스토리를 거쳐 소설을 쓰기까지 20년 동안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는 끈질긴 생존을 무기로 살아온 작가로 알려져 있다.  


작가가 그리고 있는 캐릭터의 특징은 사회가 원하는 전형적인 인물들이 아닌 주목받지 못하고 때론 궁상맞은 사람들의 민낯이다.  그는 소외된 주변부의 목소리를 몰입감 있고 재미있게 그려내도록 특화된 문체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분명 능력이다.  결코 재미있을 것 같지 않는 소외되고 퇴보된 사람들의 삶의 고단함, 그리고 슬픔의 목소리를 찾아내고 그 속에서 꿈과 희망을 변호하는 문학의 본질적 사명을 다하는 작가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소설에서 위로받고 힘을 얻는 이유를 나는 '삶이 고통스럽고 힘들더라도' 꿈과 정의를 실천하려는 용기를 주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소설 속 주인공의 좌절하는 대목에서 독자들은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마치 나의 마음속 정의가 쓰러진 듯한 아릿한 통증으로 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자본주의사회에서 꿈의 지향은 가치의 척도를 돈으로 환산하는 전문성에 위배되기에 번번이 무너지고 퇴화된다.  꿈을 향한 삶은 환경에 구애받을 수밖에 없다.  가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세상은 불공평하고 불공정하기에 가난하고 정직한 사람은 정의롭지만 쉽게 성공할 수 없게 만든다.   하지만 소설의 최종 판사 격인 작가는 좌절과 고통을 선불로 치른 우리의 주인공들을 결코 저버리지 않는다.  자유의 정의와 꿈을 향해 돌진하는 현대의 돈키호테와 라만차클럽의 아미고들을 승리로 이끌고 뿌듯한 마음으로 승리의 책장을 덮게 해 준다.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에서 모티브를 잡은 작가는 돈키호테로 불리던 비디오 가게 주인 장영수 씨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돈키호테가 로시난테(Rocinante)라는 말과 배불뚝이 산초 판사(Panza)가 있어야 하듯이 숨어버린 돈키호테와 그를 찾는 주변의 매개체인 사람들의 이야기가 합쳐져 소설은 알차게 시작된다.  


화자인 산초(여주인공 진솔)는 중2시절 동네 '돈키호테 비디오 가게'를 수시로 들락거리며 비디오 가게 사장님과 친하게 지낸 여자아이다.  모두가 바빴던 가족들과 달리 소통을 잘해주던 가게주인의 별명은 '돈키호테'였고 '진솔'은 돈키호테를 잘 따랐기 때문에 '산초'라는 별명을 얻었고 산초와 더불어 다섯 명의 친구들은 '라만차 클럽'과 '아미고'라는 명칭을 얻고 신나는 사춘기시절을 보낸다.


외주 프로덕션 6년 차 PD '진솔(산초)'는 기획했던 인기 예능프로에서 잘리고 고향인 대전으로 내려와 개인 유튜브 방송을 구상하던 중 중학생시절 즐겨 찾던 비디오 가게가 카페로 바뀐 것을 발견한다.  다행히 지하실에 비디오 가게를 운영하던 돈 아저씨의 살림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돈 아저씨'의 애정이 피어나기 시작하면서, 아저씨의 영화에 대한 애정, 시나리오를 쓰던 모습, 비디오 가게를 접은 후에도 칩거하며 글을 쓰던 중 갑자기 종적을 감춰버린 것까지 알게 되면서 '나의 돈키호테를 찾아서'라는 콘텐츠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한다.


이때부터 독자들은 소설의 방향성을 감지한다.  돈키호테를 빛나게 해 주던 산초(진솔)를 비롯하여 다섯 명의 라만차 클럽의 아이들이 뭉치리란 것을.  행방불명된 어린 시절 돈키호테 비디오 가게 주인아저씨(장영수)를 찾으러 유튜브 채널을 열고 그를 찾아 나서는 과정을 통해 발견하는 장영수 씨의 과거사는 한 사람의 삶 속에 끊임없이 이어지는 좌절을 독자들은 관망하게 된다.


산초가 추적 중인 장영수 씨의 지나온 삶은 마치 돈키호테와도 같았다.  열혈 운동권 학생, 대치동 학원가의 일타강사, 출판사, 영화감독을 꿈꾸며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다.  과거의 연결점은 자유의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 대한 항거였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속박과 굴레를 오로지 순수한 신념을 지키기 위한 항거는 번번이 무너지고 부서지고 실패한다.  그럼에도 굴복없이 도전하던 돈키호테 장영수 씨가 행방불명된 것이다.  


소설은 예상대로 해피앤딩이다.  세르반테스 축제가 있는 스페인에 라만차클럽의 아미고들이 모이고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를 쓰기로 결심하게 된 감옥의 건물을 찾았을 때 그토록 원했던 긍정의 기운이 충만해짐을 느꼈다.  나는 이런 완충된 느낌의 유쾌한 소설이 좋다.  우울한 소설은 여운은 길지만 한동안 무기력감을 지탱하다 보면 슬그머니 짜증이 일기 때문이다.


돈 아저씨는 반태수(세르반테스)라는 필명으로 소설가로 변모한다.  소설 속에서 그는 부패한 권력자를 응징하고 권력의 남용을 응징하는 통쾌한 필력을 발휘한다.  현실에서는 좌절했지만 문학의 힘을 선택한 것이다.  






살면서 우리는 다양한 힘 앞에서 수많은 좌절과 고통을 겪고 그 무게가 버거워 포기를 선택하고 빠른 속도로 잊으려 노력한다.  위로를 해주는 술은 소통으로 작용하고 더 이상의 노력은 부질없다며 스스로 판단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상처와 고통은 패배에 대한 분석의 시간이 될 수 있다.  돈 아저씨가 제주에 '바라타리아, 자유 공화국'을 설립하면서 깨달은 이야기가 나는 참 좋았다.  돈 아저씨가 자신이 돈키호테임을 잊고 산초로 살기로 결심한 이야기다.  



"제주는 육지 사람을 좀 경계하거든.  그런데 내가 산초가 되기로 결심하자 진짜 산초처럼 붙임성도 좋아지고 자신감도 늘더라고.  나는 제주 사람들에게 진심을 다했어.  마치 산초가 돈키호테를 모시듯 말이야.  결국 그들이 내 마음을 알아주었지.  삼촌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여기 이 공간을 찾는 것도 매입하는 것도 불가능했을 거야."




내가 한 최선의 잣대에 냉정할 필요가 있다.  고통의 경험을 내재화하여 재산으로 만드는 과정은 가치 있는 행위다.  김호연 작가는 아마도 이 부분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었을 테다.  지금 억압받고 상처받더라도 결코 나의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굳세게 살다 보면 어떤 형태로든 꿈이라는 보상이 찾아온다.  확신은 믿음이다.



<나의 돈키호테 / 김호연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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