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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지 말고 마음 가는 대로

네 마음이 말을 할 때, 그때 일어나라


자기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고 싶지 않을 때 세상에서 가장 손쉬운 일은 도피처를 찾는 거란다.  외부적인 죄는 언제나 존재하고 그 죄가 - 혹은 책임이 - 오로지 우리에게 속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지.  하지만 네게 말했듯이 그게 앞으로 나가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란다.  만약 인생이 길이라면 그건 항상 오르막에서 펼쳐지는 거야.



언제 낙엽처럼 유명을 달리할지 모르는 '올가'라는 할머니가 미국으로 떠난 손녀에게 다락방에서 추억의 용품을 정리하듯 자신의 인생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써 내려간 편지형식의 글이다.  부치지 않을 것이란 전제로 썼기 때문에 손녀는 아마도 그녀의 부고를 받은 뒤에 읽힐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생을 마감하기 전 진심으로 손녀에게 하고 싶었던 삶의 고백이라고 느껴져서 읽는 내내 쓸쓸함과 먹먹함이 그대로 전해온다.


죽은 사람들을 우리가 애도하는 이유는 그들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과 우리가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없는 무게 때문이 아닐까.  나는 지금도 돌아가신 시어머님과 친정엄마를 생각하면 가슴에 슬픔의 파도가 일렁인다.  


인생에 대해 '이렇게 살아야 정답이다!'라는 말이 있든가?  호주머니에서 해결책을 꺼내듯 말하는 사람의 말은 듣지 말라고 했다.  진심으로 자신의 마음을 담아서 꺼낸 말이 아닐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 환상적이고 기쁜 일에 비해 아프고 절망스럽고 피하고 싶었던 수많은 고통들이 더 크게 부피를 차지하는 것 같다.  이유를 찾는다면 이탈리아 속담처럼 혀는 아픈 이를 계속해서 건드리기 때문일 테지만 더욱 불행한 일은 자신의 고통만으로 끝나지 않고 자식에 이어 손자대에게까지 그 치유되지 않은 성격이 유전되기까지 한다는 점이다.  


그녀는 죽음을 앞두고 지난날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진실을 털어놓음과 동시에 앞으로 누구도 의지하지 못한 채 인생의 무게를 감당할 손녀딸에게 두려움을 이겨낼 편지를 쓰게 된다.


나는 편지를 읽다가 조금 당황하기도 했는데, 굳이 자신의 충격적인 과거(손녀의 엄마, 즉 그녀의 딸 '이라리아'가 애인의 자식)이라는 고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편지를 남김으로써 '올가'할머니도 평생 손녀에게까지 전해진 불행한 삶의 원인이었다는 죄의식 내지 편중된 생각에서 벗어났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늘만 아는 비밀을 손녀에게 털어놓는 중요한 이유는 뭐였을까.  그것은 불행하다는 생각에서 나온 결과물로 인해 또 다른 문제를 안고 살았기 때문이었다.  할머니는 자기 자신에게 진실하지 못했기에 자신의 딸과의 관계도 회복할 기회를 놓쳤으며, 불의의 사고로 딸을 잃고, 예측보다 감당하기 힘든 사춘기의 손녀마저 독립을 선언하고 미국으로 떠난 뒤 죽음을 앞두고 깨닫게 되었다.  그녀는 여자로서 불행했던 삶을 고백하고 죽기 전에 스스로 치유하는 용기와 여자라는 이유로 생겨날 미래의 불행이라는 유전을 끊기 바라는 마음으로 사랑의 편지를 쓴 것이다.


인생의 중요한 갈림길에서 이탈하는 경우는 가장 가까운 관계의 어긋남에서부터 시작된다.  우롱하는 가족, 상처 주는 가족이란 현실은 사랑받지 못한다는 원초적 분노로 이어지고 결국 자신의 존재마저 상실하게 한다.


이제 손녀딸은 혼자 남을 것이다.  사실 인생은 명백히 혼자다.  그 당연한 명제 앞에서 그녀는 현혹되지 않고 삶을 뚜벅뚜벅 오로지 자신의 판단을 세우고 마음을 정한 대로 가라고 조언하고 있다.  삶에서 고통은 어떤 형식으로든 다가오게 마련인데 자신만의 의지가 없는 사람은 자주 흔들리며 쉽게 좌절하기 때문이다.  


 '모죽'이라는 대나무는 씨앗을 심으면 5년 동안 싹을 틔우지 않고 땅 속에서 물줄기를 견고히 확보하고 뿌리를 내린 뒤에야 죽순이 돋는다.  오랜 시간 동안 쉽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내실을 쌓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그런 준비과정을 마치고 나면 갑자기 죽순이 돋고 하루에 80센티씩 성장하여 최대 30미터까지 거침없이 자란다.  세상을 살아가는 힘은 이처럼 스스로를 잘 돌보는 데서 시작하면 당당할 수 있다.  


할머니는 불같은 성격의 손녀에게 차분하게 자신을 돌보는 어른이 되길 바란다.  이 책은 세상 모든 딸들에게, 젊은이들에게, 세상을 만만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바치는 편지다.


넌 세상 모든 것들의 안에도 있어 보고, 바깥에도 있어 봐야 해. 그래야 그늘과 휴식처를 제공할 수 있고, 너 자신도 적당한 계절에 무성한 잎들, 풍성한 열매를 얻을 수 있을 테니까. 네 앞에 수많은 길들이 열려 있을 때, 그리고 어떤 길을 택해야 할지 모를 때, 그냥 아무 길이나 들어서진 마. 내가 세상에 나오던 날 그랬듯이, 자신 있는 깊은숨을 내쉬어 봐. 어떤 것에도 현혹당하지 말고, 조금만 더 기다리고 기다려 보렴. 네 마음이 하는 말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 봐. 그러다 네 마음이 말을 할 때, 그때 일어나서 마음 가는 대로 가거라.




<흔들리지 말고 마음 가는 대로 / 수산나 타마로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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