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면 많아진다
커피가 향과 함께 짧고 진하게 목을 타고 내려간다. 한없이 상승하는 기대를 줌과 동시에 깊이 추락하는 하나의 숨결 같다. 내 몸 안으로 추락하는 포근한 온기를 품에 가두면 승리감에 나는 안도한다.
현재 내게 다른 욕심은 없다. 늙어 죽을 때까지 좋아하는 커피를 마실 수 있을 만큼만 건강했으면 좋겠다.
조카집들이에 초대받고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드롱기 커피머신이었다.
젊은 부부의 요리솜씨는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고 핸드드립 커피 원두는 무엇을 쓸까만 궁금했다.
주인의 살림살이 구경에서 유독 눈길이 오래 머물자 눈치 빠른 조카는 서둘러 커피를 내려 내게 바친다.
몇 년 전 아들의 복지찬스로 이용했던 신라호텔 조식에서 마시고 반했던 바로 그 맛이었다.
짙은 안개 같은 향기로운 향이 달콤한 맛에 감춰져 황홀함에 기막힌 조화라 느꼈던 맛.
굳이 찾아 마셔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해 잊히고 있었던 것이 기어이 문을 열고 들어와 버렸다.
정지된 듯 감탄하는 아내를 보던 남편이 드롱기를 바로 주문하고 조카에게 원두명을 묻는다.
시어머니를 하늘나라로 편안히 보내드린 후, 남편은 그 모든 공이 내게 있음을 선포했고 보상이라도 하듯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줄 량으로 내게 잘한다.
내가 가장 감탄하며 마시는 커피를 남편이 매일 타준다. 타줄 때마다 나는 진심을 담아 고맙다고 말하고 남편은 더 열심히 타준다. 이왕지사 이렇게 정착된 습관의 포상으로 나는 '바리스타'라며 흥을 돋워준다.
반자동 에스프레소 머신 앞에서 아내를 위해 커피를 탬핑하고 에스프레소 흐름을 시작하고 중지하는 손놀림을 물끄러미 식탁에 앉아 나는 손님처럼 바라본다.
타줄 때마다 고맙다고 진심을 담아 말한다. 나는 남편이 내게 해주는 작은 행동 하나에도 힘을 실어주는 감사의 말을 습관적 하는 편이다.
우리 인간은 의미와 보람이 있을 때 가장 의욕이 생긴다고 한다. 뭔가 큰 업적을 쌓았을 때가 아니라 누군가로부터 '고마워'라는 말을 들을 때 의미와 보람을 느끼는 것이다. 어쩌면 한국의 남편들은 아내가 원하는 것을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어떻게 해줘야 하는지 몰라서 못하는지도 모른다. '고마워'라는 말을 원하는 행동에 요구하고 진심을 담아 전달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