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사방이 며칠 동안 내린 장맛비로 습기를 머금고 있었다. 살갗에 닿는 공기는 뜨거운 입김처럼 따가웠다. 행인들은 물 한 방울 마시지 않은 사람처럼 목마른표정이었다.
어제, 인사동 문화의 거리 아트센터에서 지인의 개인전에 참석하러 가던 길이었다. 각오를 하고 느지막한 오후의 외출로 결정을 했음에도 이길 수가 없는 승부란 사실을 깨닫고 절망했다.
지하철에서 최강으로 가동된 에어컨 바람으로 충전을 했지만 탑승구 밖은 습기지옥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공들여 화장한 얼굴은 이미 활짝 열린 모공의 압승으로 떡이 져 있다. 퇴근길에 엄마와 함께 관람하며 에스코트를 해주겠다는 작은아들이 없었다면 아마 되돌아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개인전 관람 후 우리는 피습하듯 에어컨이 나오는 한식집으로 이동해 식사를 했고 전통찻집에서 해가 완전히 숨을 거두기만을 기다렸다.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우리는 해 질 녘 무렵에 자발적으로 풀려났다.
그러다 기가 막힌 풍경에 압도되어 마치 홀린 사람처럼 '송현 녹지광장'을 향해 건널목을 건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개방형으로 꾸며진 광장에서는 유명 조각가의 대형 조각작품들이 '감성 한 조각'이라는 전시명으로 꾸며져 있었는데, 한낮에는 분명 외면을 받던 곳이 사람들로 하나 둘 모여들고 있었다.
하늘 때문이었다.
조각작품들이 시시각각 변하는 먹구름과 석양의 조명을 받으며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둘러보니 나도 그렇고 다들 하늘이 미쳤다며 입을 벌리고 웃고 있었다.
우리는 대기 중 태양광선이 대기층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미립자들의 의한 빛의 산란이 구름에 흡수되어 다채로운 구름이 형성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맑은 하늘과 먹구름이 다투는 듯한 모습은 장맛비가 정리되고 있다는 증거일 뿐이다. 이제 다시 습하고도 뜨거운 무더위가 저 구름들을 말끔히 밀어낼 것이다. 하지만 그건 그때 일이다.
미쳤다는 표현밖에 나오지 않을 정도로아름다웠다. 문득 온종일 달궜던 뜨거운 열기는 해 질 녘 이 모습을 남기기 위한 종착점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였다. 우리는 하루종일 오해하며 투덜대고 있었다. 늘 그렇지만 최악의 끝에는 최선이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그림전시회를 보고 나온 이유였을까. 한 폭의 그림처럼 마지막으로 붓을 날리는 화가의 손끝을 느끼며 우리는 하늘 속으로 빠져 들었다. 최고조로 향하는 화가의 그림은 붉은 구름 안에서 비밀스럽지만 빠르게 움직였다. 나는 마치 가마솥의 열기들을 품은 구름들이 뒤엉켜 토하기 직전 같아 놀라움을 숨기며 감탄했다. 그 어떤 그림도 이길 수 없었다. 최고였다.
우리가 하늘을 볼 때는 시끄러운 헬리콥터 소리가 날때와 쭈쭈바를 먹을 때라는 우수개소리가 있다. 우리에게 하늘이 없다면 얼마나 삭막할까. 얼마나 외로울까.. 우리는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바쁘게만 살아간다.
너무나 당연한 조건과 당연한 이유들이 감사함을 놓치며 사는 이유로 자리한다. 아들과 나는 미치게 아름다운 하늘을 오랫동안 보고 싶어서 한옥마을로 오르며 걷다가 돌아 돌아 지하철을 이내 포기하고 버스정거장 쪽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