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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 기제사

내게 주어진 그대로 살다 보면 알게 된다



인간은 자식에 대해서조차 보답을 기대하지 않는 호의를 가질 수는 없는 것인가?  그것은 양육자이지 부모는 아니다.  자식으로부터 해준 것을 돌려받으려는 부모가 있다면, 부모 스스로가 생각해보아야 할 일이다.  '잘 되어야 고작 빌려준 것 밖에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 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계로록)




시어머님 살아생전 생신날은 중복(中伏)과 말복(末伏) 사이에 있어서 며느리 입장인 나로서는 출가한 자식내외 및 손주들까지 모두 올라오는 인원의 음식은 물론 더위와도 매번 한판 승부를 걸어야 했다.  에어컨을 종일 최대치로 가동해도 많은 사람들의 체온과 합세한 집안은 어디를 가나 후끈했다.  인원이 인원인지라 외식은 말도 못 꺼냈고 1박 2일을 꼬박 부엌이라는 전장에서 열일했고 고단한 몸을 이끌고 다음 날 출근했다.



시어머님은 생신이 지나고 이틀째 되던 날 돌아가셨다.  벌써 6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공교롭게도 기제사 역시 뜨거운 한여름에 준비를 한다.  그래서 나는 기제사 준비가 아니라 생신상을 준비하는 기분이 든다.  다만 다른 것이라면 우리 가족만 제사를 지내거나 큰 형님(시누이)만 잊지 않고 전화를 주시거나 오시는 정도다.  



둘째 며느리가 제사상을 준비하는 억울함 보다도 생신상에 비하면 많이 단출해졌고 그나마도 우리 가족이 두고두고 푸짐하게 먹을 음식이란 생각이 먼저 든다.  무엇보다 해가 갈수록 떨어지는 체력에 이 정도로 갈음되어 다행이다.  그리고 다음날 출근도 하지 않는다.



다른 자식들이 수고에 대한 전화를 주지 않거나 오지 않아도 전혀 서운하지 않다.  솔직히 오지 않아 편하다. 그리고 출가한 후 구심점인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조용히 각자의 삶에 충실히 지내는 것이 당연하다고 본다.  



나는 시어머님과 오랜 세월 함께 살면서 깨달은 점이 있다.  그것은 반면교사(反面敎師)로 부모로서의 태도와 자립적인 마음가짐이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노인이라는 것은 지위도 자격도 아니다. 어른다움을 잃지 않고 아이들이 자립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믿고 지지하는 것이 더 가치 있고 중요하다고 믿고 있다.  자식에게 기대는 것은 이기적이고 바람직하지 못한 부모라 생각한다.



나이가 들면 대부분 두 번째 아동기에 들어선다고 한다.  이 시기에는 자아의 절박한 요구와 육체적 본능의 요구가 그동안 형성되었던 좋은 습관들을 방해하고 세상의 가치와 멀어지는 행동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물학적 본능에 지배되지 않도록 평소에 품위를 갖추려는 노력을 부단히 해야만 한다.







올해는 잦은 장맛비로 과일과 채소값이 터무니없이 비싸서 매대 앞에서 호구가 된 기분으로 지갑을 열었다. 아무튼 기제사가 지나니 비싼 과일이 냉장고에 가득 채워져 있어 과일부자가 되었다.  평소 같으면 비싼 가격에 먹지도 않을 과일을 쉽게 꺼낸다.  비싸서 그런지 더 달고 맛있는 과즙으로 만족감이 차오른다.  



시어머님과 함께 살면서 내 삶을 아등바등 살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어느 순간 자리 잡게 되었다.  세상에 태어나 많은 것을 보고 얻고 즐기고 나누다 아쉬움 없이 헤어지려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느낀다.  행복의 법칙은 주관적이고 단순한 계산법에서 나온다.  





시어머님이 좋아하시던 치킨도 한 자리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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