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혼자서도 잘 사는 걸 어떡합니까

남들이좋다는 게 당신에게도 좋을 필요 없다


나는 싫은 마음을 사랑한다.  너무나도 싫어하는 나머지, 그 싫음을 없애려 어떤 일이라도 하기 위해 머리 굴리는 그 에너지의 힘을 믿는다.  회사 다니는 게 정말 싫어 회사 밖에서 먹고살기 위해 집에서 일할 방법을 찾아냈다.  남과 함께 있는 게 싫어서 어떻게든 혼자 살 방법을 찾아냈다.  돌이켜 보면 지금 나의 취향, 라이프 스타일 등 모든 부분은 나의 '싫음'으로 창조되었다.






결혼하지 않고 미혼으로 살아도 충분히 만족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여행, 경제 유튜버 신아로미씨의 에세이집이다.  


저자는 모두가 비슷한 나이가 되면 취업을 하고 적령기가 되면 결혼을 하고 아이를 꼭 낳아야 하는지 항상 의문을 품으며 살았다고 한다.  자신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여행 영상을 만들어 먹고살 수 있고, 이 일이 너무 행복해서 자신의 자존감을 살려준다고 한다.  현재는 아버지가 태어나고 자란 집을 자신이 번 돈으로 대출 없이 리모델링해 시골에서 혼자서도 잘 지낸다며 자랑한다.


궁금해 유튜브를 검색해 보니 혼자서도 너무나 행복하고 당당한 그녀의 삶을 구독자 20만 명 이상이 증명하고 있었다.  세상이 참 많이 변했구나 싶은 마음이 들면서 '미혼 콘텐츠'에 이렇게 많은 청년들이 열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물론 이 책에 그녀의 소신이 녹아 있겠지.


내겐 아직 결혼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 장성한 두 아들이 있다.  결혼을 강요하면서까지 서두를 필요는 못 느껴서 그저 기다리는 입장이긴 한데, 작은 아들이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는 의도가 혹시 비혼도 염두에 두고 있는 눈치가 아닐까,  기분이 별로였다.


요즘은 구글 계정만 있으면 누구나 유튜버가 될 수 있다.  크리에이터 경제 규모를 추정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고 할 정도라고 한다.  1인 1 미디어 시대를 반영한 이커머스의 변화로 개인이 운영하는 SNS(인스타그램)을 통해 제품을 홍보하고 판매하는 일명 '세포마켓'도 활발하게 퍼져나가는 실정이다.  개인의 다양한 욕망과 요구사항이 존중받는 곳이라 판단되어선지 수직적 조직을 극도로 기피하는 청년들에게 새로운 시장으로 자리 잡게 된 듯싶다.  안정된 직종은 아닐지라도 자신의 노력만큼 보수가 확정되는 공정한 곳이라는 것이 매력일 것이다.


비혼을 찬양하는 책이 아니다.



책을 읽고 나니 이 책은 비혼을 찬양한다기보다 '세상이 정해 놓은 삶'을 거절하는 외침으로 들린다.  그녀는 현재 '혼자인 삶'을 선택했을 뿐이고 충분히 만족하며 살고 있다는 것이 팩트다.  단지 '미혼'이라는 콘텐츠를 내세웠다는 것이 정해놓은 길로 가는 사람들에게 주목받고 부정적인 시선을 받고 있는 것이다.  예상되다시피 그녀가 올린 게시물의 덧글에는 부정적인 글도 상당했다고 고백한다.



결혼 안 하고 혼자 잘 사는 것을 말했다는 이유로 정신적으로 결핍 있는 사람까지 됐다.  진짜 홀로 잘 사는 이들은 굳이 이런 게시물을 올리지 않는다면서.  결혼해서 행복하다는 사람에게 "너 이러다가 이혼하면 어쩌려고.  조용히 살아."  "결혼 생활 안 행복한가 봐?  자꾸 자랑하네."라고 말하면 바로 인성 파탄자로 몰릴 게 뻔하다.  반면 미혼이라서 행복하다고 하면 왜 별별 소리를 다 들어야 하는지 몹시 의아하고 갑갑하다.




멘털이 상당히 강하고 회복탄력성 또한 좋은 저자는 악성 댓글로 무너지기는커녕 반박하며 남의 눈치 따위에 자신의 에너지를 조금도 허비하지 않았다.  긍정적인 의도로 시작했다가 악성댓글로 삶이 피폐해지거나 안 좋은 결정을 내리는 유튜버들이 얼마나 많던가.  


그녀의 의도는 확고하다.  자신은 정해진 삶이 싫어 혼자를 선택한 사람 중 하나일 뿐이라고.  그 정도 개성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인 당신들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느냐고 증명하라며 말한다.  내가 원하는 삶인가에 대한 정의는 정해진 삶의 전면적인 부정으로부터 시작하는 철학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음을 뜻한다.  


세 번의 뜨거운 연애를 해본 경험이 있는 그녀는 미혼이 자신의 삶에 맞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나는 만약 결혼할 상대가 나타난다면 그녀는 충분히 검토할 것 같고 아마도 먼저 당당히 프러포즈도 할 거라 예상한다.


주도적인 삶의 선택지가 단지 '혼자 살기'로 결정된 것뿐이다.  혼자 충분히 잘 살 수 있는 프로젝트는 이 책 안에 상세하게 안내되어 있다.  섣부르게 '이것 봐, 혼자 사는 게 맞나 봐' 라며 철부지 같은 도전으로 독립을 외치는 청년들은 심도 있게 읽기를 권한다.


그녀는 혼자 살기 위해 꼼꼼하게 자신의 미래를 준비한다.  안정적인 거주지, 자동차, 보험, 연금, 주식, 저축, 일에 대한 이야기를 읽을 때는 치밀해서 나는 놀랐다.  그중에 '일' 부분은 혼자 살기로 결정한 이상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는 밥벌이일 텐데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역량 내에서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시장성을 발견한 듯싶었다.  특히 '명상' 부분의 언급은 선진국에서는 이미 널리 퍼져 있지만 한국에선 아직 미개척된 가능성 높은 시장이다.  




나이 들어서도 혼자 벌어먹어야 함을 35세부터 염두에 두었던 것 같다.  노년에는 일하고 싶어도 체력적 문제로 몸을 자주 사용하는 일은 못할 테다.  나이 어린 사람들과 경쟁해야 하는 직종에서도 패배할 게 분명했다. 내가 나이 들어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만 했다.  나이 든 여자가 유리한 일, 그중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고민하다가 발견한 일이 있다.  


하나는 명상 지도사, 하나는 요가 강사다.  이 두 가지 일은 어쩌면 젊은 사람들보다 나이 든 여자가 유리한 조건에서 시작하겠다 싶었다.  앞으로 홀로 일하는 프리랜서들이 더욱 많아지고 젊지만 돈 많은 이들이 늘어날 것이며 점점 더 정신이 아픈 사람들이 많아질 거라 생각한다. 그런 흐름을 고려하면 두 직업은 전망도 괜찮아 보였다.



문득 '그냥 하지 말라(송길영 저)'에서 우리의 미래를 점쳤던 키워드가 떠올랐다.  세 가지 키워드였는데, 미래의 삶을 꼬집은 문장으로 '당신은 혼자 삽니다, 당신은 오래 삽니다, 당신 없이도 사람들은 잘 삽니다'였다.  나는 읽다가 무릎을 쳤다.  우리는 결국 '혼자' 다.


둘이 함께 하면 알게 모르게 의지하는 마음이 생기고 핑계를 댈 수도 있지만 혼자 살기로 결정하면 미뤄도 언젠가는 자신이 할 수밖에 없는 문제에 봉착한다.  의지하지 않고 부지런해야 살 수 있다.  혼자서도 잘 사는 사람들이 이기는 미래가 온다.  


아무튼 결혼 적령기가 점차 늦어지더니 이제는 결혼 자체가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된 것 같다.  나는 아이들의 선택을 존중한다.  결혼을 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선택을 한다 해도 별 수 없이 받아들일 것이다.  그 어떤 선택을 하든 '행복'하기 위한 결정이길 바랄 뿐이다.



<혼자서도 잘 사는 걸 어떡합니까 / 신아로미 저>


매거진의 이전글 나에겐 상처받을 이유가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