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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하는 대한민국

사멸의 길로 향하는 대한민국




통계청 자료


대한민국은 파국을 맞이하고 있다.  이 나라가 역사상 세계로부터 가장 주목받고 있는 이 시점에, 우리는 공동체의 급격한 쇠락과 해체를 목도하는 중이다.  사람들은 결혼하지 않고, 출산하지 않으며, 지방은 소멸하고, 우리 모두 기형적인 고물가와 양극화된 사회체제 속에서 엄청난 경쟁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이유로 한국인의 이기적인 품성을 꺼내 들거나, 특정한 정파가 권력을 쥐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모두 틀렸다.  문제는 '돈'이다.  한국은 유기적으로 촘촘하게 얽힌 '돈의 문제'로 인해서 사멸의 길을 향하고 있다.  우리를 이렇게 만들고 있는 경제구조를 총체적으로 들여다보지 않고선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합계출산율 0.72명의 시대'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2023년 기준 대한민국 합계출산율 0.72명이라는 충격적 수치보도가 있었다.  우리나라는 OECD 꼴찌 출산율을 기록했다.  데이비드 콜먼 영국 옥스퍼드대 명예교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가 중에서 대한민국은 2300년이 되면 인구 0명으로 계산이 나와 '인구소멸국가' 제1호로 한국을 지목했다.  세계지도에서 한국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대한민국은 2025년이 되면 70세 이상이 20대 인구를 추월하여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  콜먼 교수의 계산에 따르면 한국의 중위연령은 1980년 21세, 2020년 44세, 2040년 52세, 2060년 51세가 될 것이다.  2040년에는 중위연령 52세가 되고 25% 정도의 일하는 사람이 65세 이상 고령자와 14세 이하 유년층(75%)을 먹여 살려야 한다.  노동인구 감소에 따른 노년과 유년의 부양인구 증가로 인해 부양비의 부담이 가중되는 고통을 견디며 심각해진 대한민국은 2100년 인구는 반토막이 날 것으로 예상했다.


2021년에 대한민국은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서 우리나라 지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분류되었다.  세계적으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달성한 나라로 인정받고 K-문화의 영향력이 한류 콘텐츠 열풍으로 뜨겁게 달아오르는 이 시점에 날아든 한국소멸소식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합계출산율 0.72명이라는 수치 뒤에 숨어있은 대한민국의 어두운 단면은 사실 한 두 개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가처분소득의 격차와 상대적 빈곤율은 가장 높은 축에 속하고 노인들의 자살률 역시 최고로 높기 때문이다.  이러한 우울한 수치는 서서히 숨통을 조여오듯 사라지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보는 것만 같다.  왜 젊은이들은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일까?


우리 모두가 가난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산업사회를 수용한 대한민국이 수십 년간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은 채 '돈'을 제대로 쓰지 않는 정책을 우선시함으로써 발생한 구조적 문제라고 지적한다.  사람이 먼저인 사회가 아니라 사람부터 갈아 넣는 사회란 점을 강조한다.  덩치는 선진국이 되었을지언정 내부는 승자독식의 사회로 공고해진 기형적인 몸이란 뜻이다.  공동체의 삶 곳곳에 기형적인 위치 아래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이 많은 대한민국의 현실을 이야기하는 이 책은 상당히 불편하고 힘들게 읽히는 것이 사실이다.


망해가는 대한민국의 종합검진 결과서를 받아 들고 왜 한국사회가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지 하나하나 짚어가는 그의 날카로운 칼날을 견뎌내며 독자들은 희망을 찾고자 끝까지 일독했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문제를 진단하는 만큼 그의 해법이 너무나 궁금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공동체를 운영할 만큼의 여유로운 돈이 없다.  인구를 포함해서 의료, 교육, 사회 인프라, 경제 구조의 기초를 떠받치고 있는 노동현장에 이르기까지 많은 돈이 필요한 현실에서 시민들에게 조세증세에 대한 언급을 하면 하나같이 발끈한다.  공동체를 위한 지출인 사회적 합의가 대단히 인색한 것이다.  


대한민국은 낮은 노동 생산성과 높은 생활물가, 그리고 수도권 집중이라는 이 세 가지 키워드가 서로에게 영향력을 주고받으며 견고한 하나의 성을 구축하고 있다.  국내총생산 규모에도 불구하고 많은 수의 한국인들은 실질적으로 가난한 상태이며, 이는 공동체 전체를 위한 자원을 지출하는데 인색할 수밖에 없는 결과로 이어진다.  


대한민국은 모두가 황금티켓에 목을 매는 사회다.  '황금티켓 증후군'에 걸린 것이다.  규모의 경제가 나타나는 시장으로 점철된 대한민국에서 자연독점 현상은 더욱 자영업자의 소득 불균형으로 이어지고 이는 경제력을 독점하고 있는 대기업 등을 선호하는 젊은이들이 황금티켓을 거머쥐기 위해 자신의 모든 역량을 집중하는 구조를 낳게 되었다.  이는 지나친 경쟁압력으로 이어져 한국인의 시간적, 물질적, 사회적 비용을 소모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를 저자는 '서울행 승차권'으로 표현하며 자원배분, 경제력 배분, 사회적 발언권의 차이가 시간이 갈수록 서울에 독점하게 되면서 지방소멸로 이어졌다고 결론지었다.  이러한 사회현상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다시 한번 돈의 논조를 정확히 되짚는 분명한 예시로 다가오게 한다.  


국민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자영업의 낮은 생산성 문제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저렴한 서비스 비용은 의료서비스에도 적용되고 있다는 점은 놀라웠다.  고소득의 의료 종사자들 역시 의료원가를 보전받지 못하는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 우리 사회가 의료 수가를 둘러싼 진통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기축통화국도 아니고, 일본처럼 해외에 보유한 광범위한 자산도 없으며 식량과 에너지도 자급이 불가능하여 미래를 대비할 자원이 없다.  결국 노동력 하나로 버티고 있는 셈인데 인건비는 국내시장의 경쟁압력으로 경쟁국가들보다 상당히 저렴한 상태다.  결국 모든 서비스 업종은 택배부터 의료서비스까지 제값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소비 측면에서 이렇게 쓰는 돈이 많지만, 상당수의 한국인들은 돈을 많이 벌지도 못한다.  한국은 노동생산성이 매우 낮은 국가이기 때문이다.  여태까지 노동생산성은 일종의 농업적 근면성의 척도로 여겨졌으나 이는 명백히 틀렸다.  생산성은 그 사회에서 인정하는 부가가치의 크기이므로, 한국은 대다수의 업종에서 하는 일들이 사회에서 부가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는 뜻과 같다.


이는 고스란히 한국의 저임금 상태로 연결된다.  특히 고용의 70%를 차지하는 서비스업은 높은 자영업으로 인한 영세성 및 내수시장에만 의존하여 경쟁이 지나치게 심한 나머지 고질적인 저임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사실은 생산성이 쏠려 있는 일부 대기업을 향한 노동소득의 집중이라는 결과로 이어지며, 이처럼 집중된 노동소득은 하나의 황금 티켓이 되고, 이 티켓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은 또다시 입시로 귀결되는 순환을 만들어 낸다.



모든 문제는 단기와 장기로 나눠 천천히 풀어나가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국가채무 증가가 먼저이고 이후 증세 논의를 이루려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자는 논지다.


정부 지출 증대는 선택이 아닌 필수


국채의 발행을 통한 국가채무의 증가는 이자 상환의 부담으로 인해, 미래세대에 불필요한 경제적 짐 덩어리를 남긴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여론 또한 만만치 않다.  그러나 이미 인구의 격감이 확정된 상황에서 현재의 기조를 계속 유지하다가는 현 수준의 부채를 감당한 미래 세대가 아예 남아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중략)

'정부의 지출 증가'를 시작으로 문제를 풀어가자는 관점을 채택하기 위해선 먼저 공동체의 축소 자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 후 이를 단계적으로 보고 각 단계에 맞게끔 방법론을 세우고 지갑을 열어야 한다.  향후 20~30년 동안 공동체의 축소는 가속도가 붙어 대단히 빠르게 일어나겠지만, 현재 청년층이 밀레니얼과 Z세대가 은퇴 후 세상을 떠나고 그들의 자녀가 장년층으로 진입하는 시기가 되면 급격한 축소로 인한 인구 불균형이 다시금 안정되는 기간이 찾아온다.



미래의 생산성 확대를 위해 당장 투자해야 하는 행동과 천천히 시간을 두고 합의를 볼 사안을 구분 지어 놓은 저자의 결론까지 읽다 보니 조금이나마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다.  돈이 풀리고 시장이 생산성이 높아지고 새로운 성장이 가능하면 해결된다는 논리는 희망적이다.  


'자살하는 대한민국'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시야가 번쩍 하고 켜진 느낌이 든다.  대한민국은 병이 들었는데 약을 먹어도 나을 수 없는 자살하는 상태라는 의미로 지은 책이다.  


현재 대한민국을 논하는 많은 책들과는 차원이 다른 논평과 함께 근거 있는 데이터로 철저하게 현실을 분석했다.  그는 철학적인 시각(그간의 책들의 담론의 주를 이루는 한국인의 품성론)을 배제하였고 지극히 현실적인 경제 관점인 '돈의 문제'로만 철저히 접근했다. 


우리 대한민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어젠다를 직선적으로 완수한 자랑스러운 나라다.  선진국이라는 선에 걸쳐 있는 지금 기형적인 구조에 흔들려 우리 스스로 미래를 포기할 수는 없다고 본다.  우리 스스로 사멸의 길만은 택하지 말아야 한다.  




<자살하는 대한민국 / 김현성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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