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감과 우월감은 동시에 작동합니다. 나보다 무능해서 우월감을 느끼게 해 주면 사람이 갑자기 실력이 늘면 불안하고, 나중에는 나보다 더 유능해질까 봐 두려워집니다. 이것이 '잠재적 열등감'입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에게 열등감을 느끼면서도 '조금만 더 노력하면 내가 더 잘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면 이는 잠재적 우월감을 느끼는 것이지요. 우리는 열등감의 대상보다 우월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우월감의 대상보다 열등해지지 않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렇듯 열등감과 우월감은 동전의 앞뒷면처럼 동시에 존재합니다.
우리는 나보다 잘난 사람을 보며 나 자신이 초라해지는 감정을 느낄 때 열등감을 느낀다. 잠시 위축되었다가 평상시 마음으로 돌아갈 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환경적 조건이 성립되었을 때는 제어가 힘들 정도로 괴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저자는 열등감이란 누구나 느끼는 감정이며, 무조건 우월하거나 무조건 열등한 사람은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라고 당부한다.
나는 무엇보다도 열등감이 발생하게 되는 근본적 이유와 이성적 분석이 마음이 들었다. 인간의 기본적이 성향, 기질, 보편적 패턴이 열등감이라는 감정의 해체로 모두 해석이 된 기분이다.
이 책은 우리가 살아오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시달렸을 법한 열등감에 대해 속 깊은 이야기를 내담자의 사례를 통해 설명하고 있지만 읽다 보면 나와 내 주변의 인물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면서 감정이입이 된다.
나보다 실력이 좋은 사람을 보면서 느끼는 열등감을 오히려 '어떻게'라는 자신만의 답을 찾아 치열하고도 엄청난 노력을 한다면 자극이 되어 긍정적 피드백을 받을 수도 있다. 유명 스포츠 선수나 성공한 리더들이 자신의 열등감 즉 '필요한 것의 결핍'을 노력으로 승화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도저히 메울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면 비참한 열등감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점은 '필요한 것의 결핍'에 시작된 열등감이 나중에는 '필요 없는 것'까지 확장된다는 점이다.
책에는 여러 사례가 있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피나는 노력 끝에 직장에서 인정받고 승진을 한 내담자가 생각난다.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생활에서 좋은 학벌을 가진 동년배가 입사하게 된다.
내심 학력 콤플렉스가 있던 내담자는 학벌을 가진 동료를 보며 부러워하다 열등감으로 이어졌다. 그러다 동료의 화려한 입담, 자신감있는 행동은 자신에게 없는 열정으로 보였고 상사들도 동년배인 자신과 모든 면에서 비교하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자신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열등감에 생활 전반에 고통을 느낀다.
여기서 우리는 열등감이라는 감정이 '필요하지만 내게 없는 것'에서 '필요하지 않지만 갖고 싶은 것'으로 이동함을 인지해야 한다. 내담자는 이미 충분히 실력을 검증받았고 학벌 콤플렉스를 이겨낸 사람임에도 동년배의 학벌은 물론 입담과 자신에게 없는 자신감 있는 행동까지 열등감을 갖게 된 것이다.
파블로프의 개 실험처럼 '종이 울리면 음식을 준다'는 것을 학습한 개가 음식 없이 종이 울리기만 해도 침을 흘리듯이 자꾸만 열등감을 느끼다 보면 필요한 것이 결핍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열등감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다.
가장 무서운 것은 필요하지도 않은 것에 대한 열등감은 어떻게 해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소셜미디어나 SNS를 통해 내가 필요하지 않지만 갖게 되면 좋을 것 같은 감정을 느끼곤 한다. 열등감을 느끼는 것이다. 따라 하기 위해 노력해 얻어낸다 한들 마음은 여전히 허전할 수밖에 없다. 애초에 내게 필요한 것도, 진정 원하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필요한 것, 내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만 하고 살아도 인생은 짧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가장 무서운 것은 존재적 열등감
비교대상이 있는 열등감은 그나마 거리를 두거나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치유되는 경향이 있지만 가장 염려되는 열등감은 '존재적 열등감'이 아닐까 생각한다. 존재적 열등감은 말 그대로 자신을 그냥 열등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그들은 스스로가 열등하다는 생각에 빠져 있기 때문에 아무리 장점을 알려줘도 소용이 없다.
자신을 스스로 열등하다고 내재화해 버리는 이 무서운 감정은 어떻게 형성되는 걸까. 또 그러한 환경은 어떻게 형성되는 걸까. 가장 치료하기 어렵고 시간이 많이 필요한 '존재적 열등감'의 과정을 우리는 숙지할 필요가 있다. 간략하게 정리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1. 동조: 특정인이나 집단으로부터 실제 혹은 가상의 압력을 받아 자신의 행동이나 의견을 바꿈. 스스로 뚱뚱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주변에서 지속적으로 듣게 되면 동조하게 됨
2. 순종: 보상을 얻거나 처벌을 피하기 위해 묵묵히 순종함.
3. 동일시: 자신에게 영향을 주는 사람과 같아지려거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특정 행동을 하거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특정행동을 하게 됨. 순종과는 다르나 '보상'이나 '처벌'에 대한 욕구 때문에 그들의 가치관을 받아들임. 또는 그 개인이나 집단이 좋아서 따르는 것임. 그들은 우월한 존재고 나는 열등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며 지내는 것.
4. 내재화: 사회적 영향에 대한 가장 지속적이고 뿌리 깊은 반응으로 주장을 완전히 받아들이고 내 가치체계로 통합함. 지금의 상태가 매우 당연하게 여김. '당신의 그 가치관은 틀렸다'라고 설득해도 절대 말을 듣지 않는 상태.
즉 존재적 열등감을 느끼는 사람은 누군가의 평가에 완벽하게 세뇌당한 상태라 할 수 있다. 학폭, 군대폭력, 불안한 육아 등 우리가 쉽게 상상하는 방송매체나 주변 사례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자식의 열등감의 원천이 부모가 많다는 사실이다. 특히 자수성가로 성공한 부모들은 부모세대보다 환경이 좋은 시대에서 자람에도 실력이 좋지 않은 자녀의 능력이 마음에 안들 수 있다. 부족한 자식에게 압박을 주게 되면서 주입되는 열등감은 자식으로 하여금 발전할 수 있는 싹을 자르는 오류를 범하는 줄 모른다.
그렇게 소중한 자식은 '동조'라는 첫 단계에서 서서히 '내재화'단계로 진행되는 것이다.
나도 불우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하지만 나는 살아남기 위해 그들에게 '동조'하고 '순종'하긴 했지만 그들의 가치관을 받아들이며 나를 열등하다고 '동일시'하지 않았다. 나는 열등하지 않았고 나의 가치를 알아주는 세상이 분명히 가정밖에 있을 거라 믿었다. 나는 초기단계에서 독서로 치유받았고 일어설 수 있었다.
부모들은 훈육이라는 말로 자녀들을 야단치지만 결국 자신의 가치관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로 아이를 괴롭힌다. 아이를 위해서라고 둘러대겠지만 실상은 자신의 열등감 때문에 아이를 채근하고 닦달하는 것이다. 어려서는 힘이 없고 독립이 힘들지만 잘 견디며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 같다.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저자의 위로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날 선 말과 도을 넘는 비난으로
나를 깎아내리는 사람을 가까이하지 마세요.
타인이 나를 괴롭히게 놔두지 마세요.
내 인생을 장악하지 않도록 단호하게 막으세요.
설사 그게 부모라도 말입니다.
열등감을 느낀다면 죄책감을 이용하자
우리는 내 치부나 약점이 만천하에 공개되었을 때 수치심을 느끼고 열등감이라는 감정을 느낀다. 열등한 존재로 만드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지속적으로 상대가 부족한 한 가지를 놀리고 조롱하면 된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무능하고 쓸모없는 존재라고 느끼면 열등하다 인지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하는 점은 몰아세우고 비난당해 상처 입은 자신만은 절대 미워하고 창피해하고 싫어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열등감의 피해자인 나에게만큼은 죄책감을 느끼면 안 되는 것이다.
죄책감은 '피해자'에게 느끼는 감정이다. 우리는 피해당한 자신에게 보상을 해줘야 한다. 내 장점마저도 별 것 아닌 것으로 치부할 나에게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 그 누구의 위로가 아닌 나 자신을 다독이고 주도권을 잃지 않도록 힘을 내야 한다. 열등감으로 힘든 나 자신의 죄책감을 덜어낼 의무가 있다.
인간은 잔인한 동물이다. 본인이 느끼기에 재미있으면 상대방의 기분은 고려하지 않는다. 열등감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는 것. 시간은 지나고 그 시간을 버텨낼 힘만 있다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잃지만 않는다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것을 잊지 말자.
세상을 좀 더 넓게 보세요. 당신도 누군가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세요. 당신이 부러워하는 이도 열등감 때문에 다른 사람 앞에서 움츠러들고, 밤마다 그런 자신이 한심 하다며 '이불킥'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자존감이 너무 낮다며 한탄하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사람은 누구나 같은 감정을 느끼고 살아갑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