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삶을 종결하기 위해서 죽음을 대비하는 실질적인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법적으로는 특수 연명의료로 행해지는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인공호흡기를 멈출 수 있다. 말기 암 환자라든지 에이즈 환자라든지, 어떤 질환을 갖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무의미한 진료는 거부할 수 있다.
어쨌든 이제 우리에게는 거부권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그러한 거부권을 실제로 어떻게 행사할 수 있는가. 우선 의사를 통해 '연명의료계획서'라는 것을 작성하거나 스스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면 된다.
-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中
그제 남편과 건강보험공단에 들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제출하고 돌아왔다. 남편도 흔쾌히 동의를 했고 같은 마음으로 동행을 했다. 유사시 최선의 선택을 미리 했다는 기분에 홀가분하다.
삶이라는 여정의 종착지는 죽음이다. 현재 우리의 죽음은 가족과 함께 죽음을 맞고 싶다는 소망을 이룰 수 없다. 의사가 결정하는 연명의료 때문이다.
인간다운 죽음은 무엇일까. 최소한 나는 병원에서 행해지는 무의미한 연명은 아니라고 본다. 나는 법의학자 유성호 교수가 쓴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를 읽고 일찌감치 결심을 한 상태였고, 남편은 작년 12월에 심장스탠트 시술 이후 불의의 사고 발생 시 가족들의 의료비부담을 끼치고 싶지 않다며 결심을 했다.
어느 지역이나 상관없다는 상담원의 이야기를 듣고 이 가을에 어울리는 하늘공원(상암) 산책 이후 곧바로 근처 마포에 위치한 건강보험공단을 검색해 찾아갔다. 본인확인을 위한 신분증을 지참했고 직원의 상담을 듣고 사인을 하면 끝나는 쉬운 과정이었다.
20년간 1500여 건의 수많은 시체를 부검했던 법의학자 유성호 교수는 죽음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 모두 죽음을 비켜날 순 없습니다.
그게 바로 우리가 죽음을 마주 보아야 하는 이유죠.
웰 다잉은 죽음을 인지하고 아름답게 삶을 마무리할 줄 아는 시간을 의미한다. 생의 마지막 단계인 죽음이 자연의 섭리라는 인식을 깊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한 인식은 죽음을 통해 삶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게 하고 주변을 친절히 돌이켜 볼 수 있는 교양인으로서의 품격을 가질 수 있다.
우리가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지도 않고 삶을 그저 닥치는 대로 살게 되면 일시적인 위안과 위로에 현혹되기 쉽다. 하지만 죽음을 염두하고 삶을 바라보게 되면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마음가짐이 달라지게 된다. 또한 죽기 전까지 자신이 진정하고 싶었던 일을 하게 되고,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후회할 일을 하지 않게 된다. 죽음을 인지하고 삶을 바라보는 사람은 여행 중에 짐이 가벼운 사람과 같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가 회생의 가능성이 없고, 치료를 해도 회복되지 않으며 사망에 임박한 상태라고 의학적 판단이 섰을 때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것을 본인이 허락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의학적 시술로서 치료효과 없이 임종과정의 기간만을 무의미하게 연장하는 것을 중단하는 행위다.
임종 직전 지불되는 의료비는 전 생애를 통틀어 40% 이상의 비용을 차지한다고 한다. 사망을 앞두고 행하는 의료치료는 회생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과도한 연명의료 비용을 부과한다. 한 시간이라도 가족과 함께 눈빛을 마주해도 아쉬울 시간에 의료비 폭탄을 가족에게 남기고 떠나는 것이다. 무의미하고 고통스러운 연명의료는 인간답게 떠나려는 삶의 마지막 순간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은퇴 이후에는 바쁘고 치열하게 살아온 지난날을 뒤로하고 새로운 인생으로 태어난 사람처럼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떠나는 새는 뒤를 어지럽히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잘 마무리하는 삶을 위해 남은 인생을 조화롭게 살기 위한 인생의 재구성이 필요한 것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대해 궁금하신 분은 아래 사이트를 참조하세요.(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연명의료결정제도: 2018.02.04 시행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의사를 존중하여, 치료의 효과 없이 생명만 연장하는 의학적 시술(연명의료)을 유보(시행하지 않는 것) 하거나, 중단(시행하는 것을 멈추는 것) 할 수 있는 제도.
사전연명의료의향서: 19세 이상 성인이 향후 자신이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가 되었을 때를 대비하여, 연명의료중단등 결정 및 호스피스에 관한 의사를 문서로 작성하는 것.
하늘공원 내에 유아숲체험관으로 향하는 징검 돌다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