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알 것 같다. 인생에서 정말 좋은 일들은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값지고 귀한 것을 얻으려면 그만큼의 담금질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나는 사는 게 너무 힘들다고, 이제는 포기하고 싶다는 사람들에게 말해 주고 싶다.
우리가 원하는 행복이나 성공 같은 좋은 일들이 우연히 갑작스럽게 찾아온다면 노력이나 인내 따위는 필요하지 않을 거라고. 그러니 힘이 들어도 어떻게든 버티고 있는 스스로를 응원하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라고.
-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中
시월 볕이 좋다. 일하기도 좋고 놀기에도 좋다.
남한산성 입성은 난이도가 보통이 아니다. 위험하다고 느낄 만큼 급경사에 급커브가 연속이고 일 차선이기 때문이다. 작년 가을에 도전했다가 경사로에서 꼼짝하지 않는 차량의 꽁무니에 손을 들고 가까운 율동공원으로 후퇴했던 기억이 있다.
사실, 남한산성의 험한 지형을 유지한 채 도로를 내주었으니 감내해야 할 우리의 몫이기도 하다. 나들이도 부지런해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우리는 주말아침 가볍게 아침의식을 치르고 서둘러 차량을 몰았다.
폭염 뒤에 갑자기 찾아온 올 가을은 뜻밖의 선물을 받은 사람처럼 생태계 모두를 허둥대게 만든다. 도로를 지키는 은행나무 잎사귀들도 노란색과 초록색을 반반 섞어놓고 정체성을 잃은 채 당황하고 있었다. 그래도 어찌 되었든 가을이다. 하늘이 우물처럼 깊었고 코 끝에 닿는 바람은 살얼음처럼 짜릿했다.
남한산성은 우리나라의 대표 산성이다. 일 차선 급경사를 따라 오르다 보니 험준한 자연지형을 따라 성벽을 구축하여 많은 병력으로도 쉽게 함락시킬 수 없는 지리적 요건을 구비하고 있다는 역사적 사실이 눈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 남한산성은 1,000년 넘게 고유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우리의 재산이다.
남한산성은 우리에게 병자호란 당시 삼전도의 굴욕을 맞이하기까지 47일간 항전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을 원작으로 하고 치욕의 역사를 재현했던 영화가 문득 떠오르기도 했다. 우리가 찾아갔을 때는 남한산성문화제축제기간과 맞물려 있어서 행궁 입장이 무료였다. 조선시대의 복장을 한 궁녀와 포도대장 그리고 선비들이 사극분위기를 내며 안내를 관람객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었다.
남한산성행궁은 우리나라 행궁 중 종묘(좌전)와 사직(우실)을 두고 있는 유일한 행궁으로 유사시 임시수도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곳이기도 하다. 전쟁이나 내란 등 유사시에 후방의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한양 도성의 궁궐을 대신할 피난처로 사용하기 위해 인조 4년에 건립된 곳이다.
서울의 궁궐을 떠나 도성 밖으로 도망치듯 떠난 인조와 내신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생각하면 답답함이 밀려온다. 하지만 역사는 흐르고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는 조선을 말아먹은 대표적인 3대 임금 중 하나인 인조가 건립한 행궁을 돌아보고 있다. 역사책을 읽으면 당대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이 전달된다. 역사서는 단순히 사실의 기록이지만 그 문화의 것을 넘어 후세의 우리들이 기억해야 할 인문학적 감정을 주입시키기 때문이다.
우리는 외행전을 둘러보고 의청문을 건너 담장 너머 보이는 거대한 소나무 군락지를 보다가 문득 깨달은 사람들처럼 서둘러 남한산성 둘레길로 발길을 향했다. 남한산성 둘레길은 총 5코스로 나뉘어 체력안배를 결정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었는데, 우리는 산책이 목적이었으므로 가장 짧은 2코스(2.9km)를 선택했다.
남한산성 둘레길은 관람객을 배려한 적당한 가파름과 완만한 경사로가 적당히 조화를 이루고 있었는데 편안한 수풀림의 공기는 장대한 소나무 군락이 위력을 가시 했다.짐작건대 100년은 넘게 지탱해 온 소나무들의 위상은 하늘을 덮을 정도였다. 쫓기듯 지은 행성의 위축 앞에서도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던 감정은 바로 위로하듯 안아주는 그들의 힘이었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살면서 자주 길을 잃고 방향을 못 찾아 헤맨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행복이나 성공 같은 좋은 일들이 우연히 갑작스럽게 찾아온다면 노력이나 인내 따위는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인생에서 정말 좋은 일들은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쉽게 생각하고 살다 보면 역사 속 실패의 인물로 사라질 뿐이다.
가을은 어쩌면 가장 화려하고 웅장한 계절 같다. 생각의 계절이다.
역사의 시간이 묻어있는 곳을 다녀오면 알게 되는 것이 있다. 인간의 자유에 대한 갈망은 늘 이기는 방향으로 가고 있지만 그것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란 점이다. 자아정체성을 확립하고 단단한 중심을 가지고 살아온 사람들의 흔들림 없는 삶의 궤적만이 어렵게 얻을 수 있는 힘의 결과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