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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없는 아이

어른아이 소풍길_ 현충사에 들리다



가고 있는 목적지를 알기 전에는 한 걸음도 간 것이 아니다.


-괴테




지난 주중에 작은 아들이 대전으로 4박 5일 출장을 간다길래 우리는 천안에 떨어져 혼자 사는 큰 아들도 실컷 볼 겸 가볍게 짐을 꾸렸다.  늘 괜찮다는 말을 듣지만 걱정 많은 어미를 안심시키려는 허풍이란 걸 나는 알고 있다.  간단한 밑반찬과 과일을 챙기고 가을 나들이도 할 겸 남편과 출발했다.



지난 6월 말로 남편도 완전히 사회적 은퇴를 해서 집안의 사소하고 편안한 일상을 함께 하고 있다.  의식주와 밀접한 관련 있는 집안일은 표시 나지 않게 끊임없이 손길이 필요한데 이러한 사소한 일상을 함께 하면서 기꺼이 기쁘게 함께하는 모습을 볼 때 나는 적지 않은 만족감으로 행복하다.  



함께 살던 시어머님이 떠나신 지 어느새 6년이 지나고 있다.  노인과 함께 살다 보면 한 사람의 생애주기를 가장 가깝게 목도한 증인이 된 기분이 든다.  현대 의학이 아무리 발달되었어도 은퇴 후 부부가 함께 건강하게 삶을 즐길 시기는 생각보다 짧다.  80십 이후는 장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여건이 된다면 무조건 최선을 다해 서로의 삶에 자양분을 주듯이 즐기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의도적으로 규칙적인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몸은 예전의 활기와 근력을 잃은 것을 느낀다.  그럼에도 좋은 점이라면 남편과 많은 세월을 함께 하고 몸의 노화가 서서히 찾아오는 요즘에서야 결혼의 진가를 느낀다는 점이다.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통하는 고마움, 편안함, 삶의 방향이 같다는 것에서 오는 안심이랄까.



그동안 우리 부부는 조직의 일원으로서 정말 부지런히 역할을 다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마치 영원을 살 것처럼 모든 것을 이루려 버둥거렸던 것 같다.  조직을 떠나니 그저 한 조각의 퍼즐조각이었다는 사실이 허무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미련 없이 최선을 다했기에 오늘이 편안하고 지난 시간을 회고할 여유도 생기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남편에겐 흔하디 흔한 초등학교 앨범이 없다.  아니 중. 고등학교 앨범도 마찬가지다.  없을 수도 있지 않느냐고 생각하겠지만, 학창 시절엔 친구집에 놀러 가서는 앨범을 덜 치며 휴대용 카세트 틀어놓고 방 안에서 춤추며 노는 것이 당시 중. 고등학교 학생들 문화였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큰 아이가 출근하자 남편은 근처 '현충사'를 가자고 했다.  초등학생시절 소풍장소였지만 돈이 없어 가보지 못한 곳이었다고 말해서 나도 모르게 짧은 탄성이 새어 나왔다.  감회가 어떨지 궁금해 서둘렀다.



다섯 형제를 거두는 홀어머니의 고달픈 삶으로 이르게 철이 들었던 남편은 육성회비를 대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며 앨범신청은커녕, 고등학교 수학여행도 나중에 이쁜 색시와 실컷 여행 다닐 테니 걱정 마시라고 어머니를 안심시켰다고 한다.  유년시절 생활양식을 대하는 태도는 삶의 방식, 인생 목표 등 성격보다 더 포괄적인 개념으로 인생관이 형성된다고 한다.  결국 성격은 내 선택의 결과물인 셈이다.  



이 얘기는 남편과 제주도 신혼여행을 가는 비행기 안에서 들었는데, 당시 어린아이였던 남편이 기특하기도 하고 불쌍해서 콧등이 시큰했던 기억이 있다.



'아산 이충무공 유허'에는 사당인 현충사, 고택(결혼 후 살았던 집), 정려(편액)등이 잘 관리되어 있었다.  이순신 장군은 대한민국의 영웅이자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해군지휘관 중 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임진왜란 때 조선의 삼도수군통제사로써 뛰어난 지략과 지도력, 전략으로 일본 수군과의 해전에서 연전연승하며 위기의 나라를 구한 명장이다.  



이른 평일 오전임에도 어린이집 아이들이 병아리 떼를 지으며 앞서가고 있었다.  그 모습에서 남편의 어린 모습과 겹쳐져 보이며 새삼 가을하늘과 참 잘 어울린다 느꼈다.  남편의 편안한 표정이 아이들을 따라 다녔다.  문제가 없는 인생은 문제가 있다는 말이 있다.  나의 현재가 안정적이라면 문제를 무사히 해결한 것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세월은 그렇게 답을 주고 있다.



가을 현충사는 각양각색의 건장한 나무 이파리들이 잘 깎여있는 잔디와 어우러져 있었다.  바람에 나뭇잎들이 떨어져 도토리 굴러가듯 여기저기 휩쓸렸는데도 이상하게 정돈된 느낌이 들어 신기했는데, 돌다 보니 관리하는 분들이 부지런히 나뭇잎들을 쓸고 모으고 계셨다.  현충사를 지키는 파수꾼처럼 사뭇 경건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현충사 참배를 할 때 남편의 입에서 '나라를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며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의미가 아이처럼 단순하면서도 정말 정확한 표현이라 웃음이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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