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절기 중 가을의 마지막 절기인 상강(霜降)인 어제, 억새축제가 한창인 상암 하늘공원에 다녀왔습니다. 전날 종일 스산한 가을비가 와서인지 기온이 뚝 떨어지고 바람까지 힘차게 부는 날이었지만 오히려 휘몰아치듯 칼군무를 보일 억새밭이 상상이 돼서 흥분이 되더군요.
서울시가 홍보하고 있는 '서울억새축제'는 내일까지(10월 25일) 진행되지만 야간 불빛공연에 참여할 의사가 없는 분들은 이 가을이 가기 전에 억새와 자연바람이 조화를 이루는 풍경을 느껴보시길 권합니다.
올해 들어 계절마다 들린 하늘공원이지만 역시 주종목인 가을에 들리니 실력발휘를 하는 듯 장관 그 자체더군요. 우리는 습관대로 난지천공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유아숲체험관이 있는 개울가를 건너 하늘계단으로 향했는데, 관광을 처음 오시는 분들은 '맹꽁이 전기차' 대기열에 서서 길게 탑승을 기다리고 계셨는데 그 또한 장관이었습니다. 늘 인파가 적은 시간대에 들려 가볍게 산책하고 오던 우리는 북적이는 인파가 신기합니다.
291개의 하늘계단을 즐겁게 세어가며 오르고 하늘공원 입구에 들어서니 탄성이 저절로 나오는 억새밭이 시야에 짠하고 펼쳐져 있습니다. 6만 평 대지에 은빛으로 물들인 억새밭이 힘찬 바람에 '와와~' 소리를 내며 이리저리 커다랗게 움직이는 모습은 말 그대로 장관이 아닐 수 없습니다. 흐리고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씨와 함께 절묘히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거든요.
늘씬하게 쭉 뻗은 몸에 솜털 머리를 이고서 유혹하듯 춤을 추는 억새들은 햇볕과 바람에 따라 오묘하게 색이 바뀌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사람 키보다 큰 억새밭을 돌면서 난쟁이가 된 사람들의 웃음소리는 동화 같았습니다.
억새에게 가을이야말로 화양연화(花樣年華)란 생각이 들더군요. 문득 일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 다음이 바로 '겨울'이라는 사실이 아이러니하기도 합니다. 곧 억새꽃의 하얀 솜털이 모두 날아가 버릴 테고 뼈대만 남아 찬서리 내린 어느 추운 날에 '으악새 슬피 우는' 소리를 내며 서로를 위로할 테니까요.
하늘공원은 원래 쓰레기매립지에서 환경생태공원으로 복원한 곳이라고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전국 각지의 다양한 쓰레기들이 들어오면서 여러 가지 귀화식물의 종자가 같이 유입되었고 스스로 토착화하여 다른 식물종과 공존하면서 독특한 매립지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생태계의 위대한 힘을 느끼는 곳이기도 하죠. 그래서 하늘공원 센터를 벗어나 야생화된 식물을 찾아보는 것도 쏠쏠한 구경거리입니다.
가을 억새밭에서 눈호강을 마친 우리는 메타세쿼이아 시인의 거리 쪽으로 방향을 틀어 조금 더 산책을 하다가 귀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