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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을이 가기 전에, 화담숲

사람의 인생은 사과나무 하나 심어놓고 키워가는 것



이기주의자는 자신만을 위해 살아요.  그래서 인격을 못 갖춰요.  인격은 인간관계에서 나오는 선한 가치입니다.  이기주의자는 그걸 갖추기가 어려워요.  그런데 인격의 크기가 결국 자기 그릇의 크기예요.  그 그릇에 행복을 담는 거예요.  이기주의자는 그릇이 작기에 담을 수 있는 행복도 작을 수밖에 없습니다.


- 김형석의 인생문답




어제 이른 아침, 남편이 가을 명소로 유명한 '화담(和談) 숲'을 가자고 말했습니다.  온라인 예약 취소건 중 2장을 운 좋게 잡았다며 화색이 만연한 얼굴이었습니다.  30여 년간 서로 직장생활을 하고 은퇴한 우리에게 가장 만족할만한 사치라면 직장이 아닌 자연을 향한 자유로운 행보가 아닐까 싶습니다.  



9시 입장티켓 시간을 계산하면 아무리 빨리 가도 1시간 반이 걸리고, 더군다나 출근시간 차량행렬에 합류한다는 것이 부담되었지만 가을 단풍산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어 부랴부랴 준비를 서둘렀답니다.  그렇게 서둘렀음에도 입장시간보다 1시간가량 늦게 도착하였는데, 다행히 입장이 허락되었습니다.  입장 후 조용하고 이른 평일 가을산책을 예상했던 우리는 많은 인파에 깜짝 놀라 웃음이 터졌답니다.  역시 우리나라 사람들 여행에 진심이네요.



화담숲은 자연을 사랑하고 보전하기 위한 목적으로 일절 음식반입은 금지하고 있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노고봉의 계곡과 능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수목을 배치하여 자연 지형과 식생을 최대한 보존하며 조성(약 5만 평) 한 것을 느낄 수 있어서 참 좋았던 것 같아요.  친환경 숲의 생태 공간을 위해 보존하고 관리하는 정성이 보였습니다.  무엇보다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전망대까지 데크길로 완벽하게 조성한 것은 장애인, 노약자, 어린이등을 모두 포용하는 배려라 느껴졌습니다.



화담(和談) 숲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초록의 이끼원이 우리를 반기고 연이어 하트다리가 있습니다.  특히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소리와 함께 가을이 깊어지는 풍경이 화려하고 멋져서 '하트 약속의 다리'는 인파로 오래 정체되었고 그만한 이유로 충분했습니다.  우리는 곳곳에 설치된 포토존의 대기열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자연을 눈과 사진에 담아 오는 걸로 만족했답니다.



화담숲의 화담(和談)은 LG그룹의 구본무 회장님의 아호(雅號)이며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는 숲'이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제한된 인원만 수용하는 온라인 예약제를 통해 편안하게 자연과 호흡하도록 만들고 상업적인 수익에 물들지 않도록 스스로를 관리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세상은 나 혼자 잘나서 성공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한 인간으로서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무언가를 실행하고 가야겠다는 신념이 생긴다고 합니다.  전망대를 끝으로 이어진 소나무군락에 접어들었을 때 구본무 회장님의 화담숲 건립의미를 설명하는 공간은 그래서 의미가 크게 와닿았습니다.



김형석 교수님은 사람의 인생의 비유를 이렇게 하셨습니다.  '내가 사과나무면 이제 사과나무 하나를 심어놓고서 그 나무를 키워가는 것이 인생'이라고요.  



배가 바다에 오래 떠 있었다고 제대로 항해를 해온 것은 아니다


숲에 들어서서 우리가 오랜 시간 머무는 공간은 굴곡지지만 웅장한 나무들을 마주할 때인 것 같습니다.  나무는 한 자리에 서서 오랜 시간에 걸쳐 계절을 여행합니다.  비바람을 견디고 영하의 추위를 견디고 태풍과 벼락마저도 감내하며 이겨낸 흔적을 고스란히 우리에게 증표처럼 보여줍니다.  



그들은 어느 한 계절도 무탈하게 아무 일 없이 지낸 적이 없습니다.  서리와 진눈깨비와 눈보라와 혹한을 견디고 나서 봄의 징후를 포착하면 물을 세포 안으로 끌어들여 그제야 새잎을 틔우고 광합성을 재개하는 것입니다.  허비한 시간이 없다는 것을 거북이 등처럼 갈라진 붉은 나무껍질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전망대를 끝으로 한국인이 제일 사랑하는 나무인 소나무군락에 이르러서 우리는 화담숲에 온 감상의 정점을 찍었습니다.  안내표지판에 소나무를 제대로 감상하는 방법이 적혀 있더군요.  사람에게 미남미녀가 있듯이 소나무도 명품 소나무를 알아보는 방법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첫째, 전체적인 모양이 우산처럼 둥글게 쳐지거나 삼각형을 이루고 있어야 합니다.

둘째, 곧은 줄기보다는 멋스럽게 굽어 있어야 합니다.

셋째, 수피가 거북이 등처럼 갈라져 있고 줄기 윗부분이 붉은색을 띠어야 합니다.

넷째, 가지의 마디가 좁고 짧은 잎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수명이 짧은 것이 아니라 인생의 시간을 너무 많이 허비하고 있다고 세네카는 말했습니다.  인생은 충분히 길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잘 활용한다면 충분히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어놓고 정성을 다한다는 것은 자신의 재능을 찾는 일이며 삶의 진정한 주인이 됨과 동시에 공동체의 선익을 위한 최종적인 인격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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