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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것들

중년의 남성이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의 정체


그때의 우리가 어떻게 알았을까? 그 모든 게 변한다는 것을, 첫 아이가 태어나면 담배가 영원히 사라지고 둘째 아이가 태어나면 와인과 심야의 여유도 사라진다는 것을.  이제 우리가 함께하는 인생은 더욱 풍부해지고, 사랑과 선의는 두 배가 되고, 집안에는 더 많은 사람과 더 많은 웃음과 더 많은 재미가 있겠지만 결국 우리는 줄어들겠지.  


-담배 中




'앤드루 포터'의 작품은 처음 읽는다.  초단편 6편을 포함해 15편의 단편이 실려 있고, 40대 남성 화자의 일인칭 서술로 이야기를 이끌고 있다는 점이 공통점이다.  여러 작품들이 담겨 있는데 섞이며 전달하는 감정은 같아서 이야기가 하나처럼 느껴지는 신기한 경험을 받는다.



나는 그동안 삶의 작고도 미세한 파편들을 놓치지 않고 기록하며 담아내는 여성작가들의 소설을 다수 읽다가 40대 중년 남성의 시각을 다루는 저자의 묘사를 만나니 꽤 신선하게 읽었던 것 같다.  누군가의 남편이자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고 사회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자리매김하려 애쓰는 역할로써 분투하듯 삶을 채워간다고만 인식하던 나를 많이 반성하며 글을 더듬게 했다.  



결혼한 중년의 남성이 부모가 된 것에 대한 불안이 어떤 것일까, 생각해 보지 않았었다.  물리적으로 멀어지게 되면 그때 내가 그렇게 편한 건 아니었다는 느낌을 깨닫는 것처럼, 저자는 결혼하지 않은 친구들을 만나 대화를 하면서 겉도는 중년의 기분을 세상과 단절된 기분이라 표현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들 대부분을 이십 년 가까이 알고 지냈는데도 그 순간엔 거의 모르는 사람들 같았다.


-오스틴 中



'카를 융'은 중년을 '인생의 정오'라고 비유했다.  외형적인 것에 치중했던 삶에서 벗어나 삶의 의미와 본질적인 자신의 욕구에 대한 강렬한 자각이 일어나는 시기라는 의미다.  자신이 꿈꿔왔던 것과는 다른 현실을 맞닥뜨리면서 비로소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게 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우리는 결혼을 하면 빠르게 부모라는 역할을 감당하라는 독촉의 사회적 열차에 탑승한다.  표를 잃어버려서도 안되고 휴게소가 있는 정차역이라면 빠르게 허기를 채우고 곧바로 열차에 올라야 한다.  그 인생의 단계는 규칙적이고 의무적이어서 운명에 이끌려 산다는 수동적인 감정이 들기 시작하면 우울해진다.  



"부모가 되면 사람이 바뀐다 어쩐다, 다들 얘기하잖아요." 린지가 말했다.  "뭐, 물론 그렇긴 해요.  하지만 그런 말을 듣고 흔히 떠올리는 변화와는 다를 뿐이죠.  뻥 뚫린 마음이 채워진다거나 하진 않아요.  무언가를 해결해주진 않죠.  그저 달라질 뿐이랄까요?  때로는 더 좋게, 때로는 더 나쁘게.  하지만 대부분은 그냥 전과 다르게."


- 실루엣 中



이러한 감정은 표현을 분출하기 쉽지 않은 남성의 환경에서 보면 억울할 수 있겠다.  남성의 감정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공허함'이 아닐까 싶다.  저자가 다루는 작품 속 남성 화자들은 일반적인 직장인들이 아닌 대부분 예술계에 종사하며 근근이 생계를 꾸려나가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었는데, 내면의 감정을 보다 적극적으로 표현할 줄 아는 직업을 영리하게 활용한 점은 소설을 이끄는 감정의 선을 보다 자연스럽게 읽히게 만들었던 것 같다.



따지고 보면 중년을 맞이하는 우리 모두는 얻는 것도 있지만 포기하고 타협하는 것들이 더 많아지기에 그 이면에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해 아쉬워하며 공허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지 싶다.  그것이 삶의 성숙이라면 위로가 될지 모르겠다.



여러 단편들이 묶여 있지만 전체적인 감정선은 비슷하다.  중년의 삶에 깃든 불안과 두려움이 배경이다.  그 출발점이 결혼(동거)이라고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지만 커다란 계기는 확실하다.  하지만 무엇이 되었든 시간이 흐르면 어떤 것은 사라지고 또 어떤 것이 몰려와 사라진 것들의 빈자리를 채울 뿐이다.



삶은 흐르는 강물처럼 머물지 않는다.  하지만 머물러 있는 과거는 삶의 주인공인 내가 강물에 흘려보내야만 떠날 수 있다.  



이룰 수 있다고 믿었던 청춘의 꿈이 미숙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영원하리라 믿었던 사람들도 시간의 흐름 속에서 퇴색되고 사라진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인정의 순간이다.  사라진 그 시간들은 불안과 두려움을 내포했던 불안정한 것이었음을 순수히 받아들이며 우리는 성숙해져 간다.  마냥 낙관적이었던 젊음의 들뜸을 떠나보내야 겸손해질 수 있다.  



그해 봄에는 나이 들어간다는 것을 한층 실감했다.  물론 거울을 보면 바로 느낄 수 있는 사실이었지만 다른 곳에서도 느꼈다.  예컨대 슈퍼마켓에서 젊은이들 사이를 걷고 있으면 아무도 나를 의식하거나 쳐다보지 않았다.  가장 큰 슬픔은 바로 그런 인정의 부재에서 왔던 것 같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된 현실, 유령이 되어 세상을 살아나가는 현실이었다.


- 히메나 中



다이내믹한 사건들이 펼쳐지는 소설은 아니지만 한 사람의 일생에 있어 전환점이 되는 고비 속 기억들을 윤슬처럼 끌어안고 있지 말고 애도하며 떠나보내야 할 감정이라는 것이 인상 깊게 다가온다.



나름대로 정리하자면 중년은 지나온 삶의 흐름을 관조하며 내면의 나를 지켜보는 시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것은 영화를 방금 관람하고 나온 관객이 잊지 못할 잔상을 끌어안고 집으로 돌아와 잠을 자려고 청하지만 쉽게 수면에 들지 못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이내 눈꺼풀은 무거워질 것이고 내일 아침이면 일어나 새롭게 일상을 맞이할 것은 분명하다.  




<사라진 것들 / 앤드루 포터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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