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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릴리스!

기억의 소환



"..........아마.... 아!! 아마~ 릴리스!!"


2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이었다.








"어? 이거 꽃대였네?? 이리 와봐!"


여행에서 돌아온 남편이 제일 먼저 찾은 베란다에서 반가운 손님을 맞듯 높은 톤으로 멀리 있는 나를 서둘러 불렀다.



"어머나! 드디어 피려고 하는구나. 참, 이 꽃 이름이 뭐였지??"



코 앞에서 어서 내놓으라는 듯 질문하는 내게 남편은 호언장담하며 한턱내려던 사람이 빈 주머니 앞에서 당황한 듯 흔들리는 동공으로 머뭇거렸다. 꽃 이름을 외우려고 2년 전 '연결 기억법'을 총동원하며 암기하던 자신을 책망하는 눈빛이었다.



집으로 데려온 2년 만에 처음 스스로 꽃을 피우기 위해 아이는 힘을 내고 있었다. 양파처럼 생긴 구근(球根)에서 처음 꽃을 피웠을 때 우리는 기대이상 너무 이쁘고 신기해서 꽃이름을 태엽 풀린 인형처럼 반복해서 불렀었다.



"이 아이 이름이 '아마릴리스'라고 했지? 너무 이쁘다. 이 꽃이름 잘 기억해 놔"



나는 신경 쓰지 않기로 한 부분에 대해서는 기억하지 않으려 의도적으로 행동한다. 나는 꽃과 식물을 좋아하지만 가꾸는 데는 잼뱅이다. 대신 남편은 아내가 좋아하는 꽃과 식물을 관리하는 것을 즐거워한다. 나는 이를 사랑이라고 해석한다. 사랑을 표현하는 남편의 영역을 존중해 주는 것이다. 꽃이름의 기억 까지도. 남편은 그까지 것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걱정 말라고 했다.



한동안 남편은 '아마~ 아마~' 목청을 높이며 노래하듯 반복하며 외웠다. 첫소리 '아마~'는 하늘을 향해 나는 새처럼 높고 흥겹게 발음이 나왔고 '릴리스' 끝소리는 한 템포 쉰 다음 꼬리를 아래로 내리며 안착하는 식이었다.



다음 해에 아마릴리스는 꽃을 피우지 않았다. 남편은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않았고 망각의 서랍에 넣어버렸다. 잊어버린 것이다. 2년 만에 아내가 기습적으로 질문이 들어갔고 사랑을 증명하지 못한 남편은 당황했다. 그 낭패감이 안쓰러워 재빨리 휴대폰 검색창으로 눈길을 돌리려는 순간, 벼락같이 큰 소리로 남편은 외쳤다.






매일매일 꽃봉오리가 커지고 벌어지더니 드디어 오늘 꽃을 피웠다. 빨갛고 매혹적인 자태로 화단의 모든 식물을 재치고 시선을 독차지하고 있다. 며칠간의 여행 중에 놓친 봉우리 장면을 아쉬워한 듯 남편은 하루에도 몇 번을 화단을 들락거리며 아마릴리스 앞에서 서 있다.



나는 참 행복한 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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