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익숙한 행동은 성장이 아니다

결핍은 자랑이 아니다



유년기로부터 시작해 일정한 행동 양식을 보여 주면서 한 사람의 삶을 계속 이끌어온 것은 행동노선이다. 실제로 한 사람의 행동 양식은 다소 수정을 거치면서 마지막 형태에 이르는데, 그 주요한 형태나 리듬, 에너지, 의미는 유년기 때부터 단단하게 변하지 않은 채 유지된다.



- 아들러의 인간이해






아침에 일어나니 아이가 깰까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듯한 엄마비가 내리고 있다. 떠나가는 봄이 아쉬워 가지에 미련을 두던 꽃잎들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것을 나는 안다. 기분 좋은 찬기가 느껴지고 하늘마저 뿌연 김으로 가득 찬 창가를 보다 문득 수제비를 만들어 먹을까 생각에 이른다.



아.. 수제비..



익숙한 감정은 모두 좋은 기억만을 소환하지 않는다. 내게 수제비는 어린 시절부터 지겹도록 만들어 먹은 음식이기 때문이다. 정부에서 지급된 저소득층을 위한 배급 덕분이었다. 수제비란 음식은 내게 가난 그리고 외로운 분노를 상기시킨다.



포대에서 능숙하게 식구수에 맞춰 밀가루를 푸어 양푼에 담아 물을 조율하며 반죽을 한다. 멸치가 우러난 육수에 손으로 치댄 반죽을 때네 넣고 끓여내면 완성된다. 식구들은 어린아이가 만든 수제비를 당연한 듯 밥상에 둘러앉아 먹는다. 맛있다고 말하며 먹는 식구들을 보며 흐뭇해하는 나는 이미 어른이다.



엄마는 어린 나를 강하게 키우셨다. 세 번째 딸이라는 실망감이 내린 결정이었는지 몰라도 권력이 있는 엄마를 상대로 거부할 선택권이 내겐 없었다. 지금의 10대 아이들은 상상도 못 할 일인지도 모른다. 두 언니들과 공평하지 못한 엄마에게 사랑의 결핍을 느끼면서 나는 나 자신이 많이 열등하다고 느꼈고 어른답게 도울 수 있는 방법만이 유일한 내 삶의 방향성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엄마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나는 착한 아이 내지 키우기 쉬운 딸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부엌일은 물론이고 남편의 불평까지 모두 받아주는 감정의 배설구였으니까.



아이는 어느 날인가 알게 된다. 부모가 절대적 존재가 아니란 것을.



내가 부모의 불합리성을 깨닫게 되던 시기는 사춘기로 접어든 중학생시절이다. 어른스러워야 했던 내 감정은 강요된 마음이었다는 것을 또래의 친구들로부터 확인했다. 그리고 이어지던 끝도 없던 집안일은 '착하다'라는 칭찬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분노의 감정이 싹이 트기 시작했다. 일요일이면 식구들 모두가 쉬어도 나는 쉴 수가 없었다. 나는 다가오는 일요일이 싫었다.



내가 찾은 학교 도서관은 합리적 도피처였다. 물론 제한된 시간을 넘어서면 안 되었지만 일터와도 같은 집으로 향하는 시간을 늦추는 만큼은 충분했다. 엄마는 학교에 있었다고 하면 별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무라지 않으셨다. 그것은 선량함이라는 변장 밑에 감추고 베일 뒤에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나의 작은 권한이기도 했다.



내게 집은 쉼터가 아닌 노동의 공간으로 어느 순간 자리했고 똑같은 환경, 똑같은 시간을 통과한 자매들의 기억들은 다르게 채워갔다.



가정은 작은 사회집단이다. 권력이 있는 엄마가 사랑을 주지 않는 자식은 형제간에도 소외당한다. 두 언니들은 자신들의 일주일간 입고 벗어놓은 교복들을 당연하게 빨지 않았고, 키우는 개들의 먹이나 배설물 걱정을 하지 않았고, 더더욱 수제비는 만들 줄도 몰랐다. 언니들은 공주였고 나를 하녀로 만든 것은 엄마였다.



어른이 되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친정을 갈 때면 나의 마음 한편은 무거운 시계추가 흔들렸다. 그것은 외로움의 상기였다. 익숙하고 불편한 무게감이었다. 나이를 먹어도 변하지 않는 그들의 시선과 말투는 나로 끝나지 않았다.



어려서 고생한 사연팔이를 하려고 쓴 글이 아니다. 내 안에 눌려 있는 경험들이 누구에게나 적용될 만큼 의미 있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어른의 나는 순종적이었던 어린 시간들을 후회한다. 그리고 아이답지 않게 속으로 울며 참았던 불쌍한 그때의 나를 측은하게 바라본다.



인생에 있어 경험한 모든 것은 어떤 형태로든 자신을 이해하는 시간으로 돌아오는 것 같다. 그것은 굳이 타인의 인정을 바랄 필요도 없고 나의 삶의 서사로 남겨지면 그만이라 생각해야 한다.



고단함을 몰라 가벼운 사람을 보면 나는 불쑥 나의 과거를 말하고 싶은 편견이 튀어 올라 놀라며 숨을 참는다. 나의 경험은 그저 나의 감정일 뿐이기 때문이다. 결핍은 자랑이 아니다.



결혼하고 내 가족들과 따뜻하고 다정한 수제비를 만들어 먹는다. 지난시절 결핍을 나는 나의 사랑으로 치유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