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그렇게 고통과 공포, 불안을 느끼도록 만들어진 존재를 계속 비활성화하는 작업이 간단할 리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역시 그들의 고통에 공감을 하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 우리는 우리 마음이 덜 괴로운 해법을 하나 찾아냈습니다. 여기로 실려오는 폐휴머노이드들에게 선택권을 준 것입니다. 의식을 백업해 클라우드에 올리던지, 아니면 그냥 비활성화되든지, 그러자 많은 휴머노이드가 이제는 잘 작동하지도 않는 거추장스러운 몸을 버리고 의식만 업로드해서 살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본문 中
김영하 씨의 신작 장편소설이다. '살인자의 기억법' 이후니 정말 오랜만이다. 너무 재미있어서 무엇을 하든 내 손에서 책은 떠나지 않았고 짬나는 대로 활자에 눈에 갔다. 김영하 씨의 소설은 항상 느끼는 거지만 읽고 나면 그 여운이 상당히 오래간다. 색다른 소재를 꺼내옴에도 거부감보다 그만의 방식으로 풀어가는 스토리에 감탄이 먼저 나온다. 그는 소설계의 블루오션 시장을 잘 아는 작가 같다.
이번 소설은 인공지능(AI)의 완벽한 진화가 진행된 상태의 인간의 삶에서부터 시작된다. 미래의 인간의 삶 속에는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가 당연히 갖춰져 있는데, 우리가 쉽게 상상하는 딱딱한 느낌이 아니다. 완벽한 실물과 같은 것이다. 심지어 감정도 있다.
진짜 고양이, 개와 같고 심지어 애완용 어린아이(사람 같은)도 있다. 털도 있고 피도 흘리고, 대소변도 하는 살아있는 애완동물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힘들게 아이를 낳지 않는다. 우수한 인간 배아를 복제해 클론인간이 법제화되었기 때문이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AI)를 IT기업이 운영하는 맵에서 구매하면 된다. 만약 애완용 동물이나 인간이 싫증이 난다면 무료로 수거하는 휴머노이드 재활용업체에 넘기면 그만이다. 하지만 예상했듯이 무료 이면에는 인공지능(AI)의 반격이 준비되어 있음을 인간들은 미처 깨닫지 못한다. 감정이 있는 기계들의 반격이 준비되는 것이다.(인용문 참조)
인공지능(AI)이 활성화된 시대에 산다는 의미는 불법적인 것도 성행한다는 뜻이다. 또한 성능 좋은 인공지능을 원하는 인간들의 욕구에 발맞춰 기업들의 연구도 치밀해져 간다. 소설은 무서운 미래현실을 우리 코앞에서 시작하지만 결코 불가능한 일도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일련의 SF영화들이 기계가 인간을 앞서서 그들로 인해 인간이 정복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잠재되듯 학습화되어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유명한 IT기업 연구원인 아빠와 평화롭게 살던 그의 아들 '철이'가 연구소에서 벗어나 갑자기 수용소(등록되지 않은 휴머노이드들이 모여 있는 곳)로 끌려가면서 시작된다. 그곳에서 철이는 자기처럼 인간인 줄 알았지만 기계인 것을 알게 된 버려진 '민이'라는 아이와 불법으로 인간복제된 '선이'를 만나게 된다. 현대로 치면 깡패, 살인을 저지른 흉악한 교도소와 같은 곳이다. 철이는 자신은 절대 휴머노이드가 아닐 거라고 믿지만 그 믿음은 얼마가지 않는다.
굉장히 흥미롭고 재미있는 책이다. 어떻게 진행이 될지 궁금해 도저히 덮을 수 없는 책이다. 지금도 세계 각국의 연구소에서는 인간배아의 비밀을 찾기 위해 복제실험을 거듭하고 있다. 똥, 오줌을 싸지 않는 귀엽고 말 잘 듣는 애완용 로봇들이 요양소 노인들의 귀여움을 받고 있다. 그러니 이 소설의 전개가 허무맹랑하게만 읽히지 않는 이유다. 우리는 알고 있다. 인간의 유한된 삶에서 정상적인 종족번식이 끊기고 환락과 환각상태의 삶만을 위해 기계의 도움으로 즐겁게만 산다면 인간은 신선이 될 수 있을지언정 멸종하고 말 것이란 것을..
소설 말미에서는 인간이 인공지능에게나 외계 생명체가 숙주로 삼아서 멸종했다고 하지 않는다. 인간은 기계에게 점점 의존하게 되고 종국엔 기계 없이는 아예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자연스럽게 인간 스스로 사멸되어 간 것이다.
휴머노이드는 인류에 또 다른 종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소설은 말한다. 정말 놀라운 발상이 아닐 수 없었는데, 폐휴머노이드의 의식을 백업해 클라우드로 올라간 그들의 의식들은 전 세계의 네트워크를 돌아다니며 현존하는 최고의 인공지능들과 연결되어 말 그대로 '집단지성'의 일부가 되고, 그들은 인간의 도움 없이 자체적으로 더 높은 수준의 인공지능을 설계하고 최신형 로봇들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인간은 '죽음'에 대해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지만, 동물들은 그런 의식이 없기 때문에 잠을 자듯 죽음을 받아들인다고 한다. 하지만 업그레이드된 인공지능(AI)과 클론들도 인간처럼 두려움을 느낀다. 이 소설의 주인공 '철이'는 IT기업 최고의 연구자의 손에서 비밀리에 진행되던 프로젝트였고, 그는 슬픔, 기쁨은 물론이고 철학적인 사고, 사유, 비판의식을 겸비한 하이퍼 리얼 휴머노이드였다.
우리는 미래에 대한 환상도 있지만 두려움도 있다. 이 소설은 머지않은 미래에 대해 꿈처럼 펼쳐 보여줬다고 느껴졌다. 이대로 간다면 우리 인류는 스스로 사라질 것이라고, 그러니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고 있다.
작가는 암울한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선이'라는 인물과 '철이'를 우리에게 남겨 놓았다. 미리 만나는 우리 미래의 '작별인사'란 이 책은 작가의 예고편이 될지 그렇지 않을지를 책임감 있게 읽히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