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여름 나기가 겁이 납니다
수많은 연구에서 다양한 풍경을 보여 줬을 때 사람들이 전망과 피난처 이론에서 말하는 지형과 가장 일치하는 풍경을 선호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우리 인간은 넓은 시야와 피난처를 제공하는 사바나 같은 서식지를 선호한다. 베란다나 실내 발코니 등 주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러 특징은 전망과 피난처 이론의 핵심 원칙과 일치한다. 사바나 풍경이 우리 종족의 요람 역할을 했던 또 다른 요소는 수원지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 소비본능 / 개드 사드
작은 아들이 운 좋게 직장 복지찬스로 당첨된 속초 롯데리조트에 며칠 다녀왔습니다. 휴가의 적기였고 또 가고 싶던 장소였기에 가족 모두 기뻐했습니다. 속초는 참 매력적인 곳이니까요. 극강의 무더위가 매일 갱신되는 요즘 제대로 '피서(避暑)'를 즐긴다는 기대감으로 설렜습니다. 짜인 일상의 보상은 산새가 좋은 곳에서의 힐링이어야 하니까요. 생태적 반응인 진화의 본능이기도 하겠지요.
젊어서는 여러 곳을 다니고 불편한 잠자리 여행도 낭만이 되었는데 점차 편안한 숙소에서 조용히 휴가를 보내는 호캉스가 더 만족도가 있네요. 이렇게 특정 한 장소에서 스테이(Stay)하는 개념여행을 신조어로 스테이케이션(Staycation)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적응이 빠른 인간의 만족도에는 하향이 없는 것처럼 가족여행을 갈 때마다 업그레이드되는 아들의 호사를 받는 것 같습니다.
휴가철 고속도로는 말 그대로 90년대 귀성길을 방불케 할 정도로 거북이 운행이 이어졌습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내비게이션 도착시간은 운행할수록 늘어나는 기현상이 벌어졌습니다. 복잡한 도로에서 항상 돌출하듯 끼어드는 자동차들로 인해 입장이 늦어지는 손님이 된 기분으로 불쾌감까지 추가되기도 했죠.
또 식사시간에 맞춰 들린 휴게소는 분명 에어컨이 풀가동하고 있었을 텐데도 인파의 열기와 식당의 조리소음과 맞물려 정신없이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 공장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배고프지만 않다면 그냥 돌아서고 싶을 정도의 인파였습니다. 시끄러운 공간에 들어가면 이상하게 저는 부축이 필요한 사람이 되는 기분이 듭니다.
수용이 빠른 우리는 피크철에 나섰다는 것을 각성하며 이후부터는 느긋한 기분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했습니다. 조급한 생각은 즐거운 휴가를 보내려는 정신건강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요.
여행은 일터에서 처럼 빠르고 효율성을 따질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자 모두들 순식간에 수긍했고 느긋해지더군요. 우리는 행복하기로 이미 결정한 휴가였다는 것을 상기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결정한 것에 영향을 받는 것은 오로지 우리의 반응에 달린 것이니까요. 그러자 이 많은 자동차들이 휴가를 보내려 떠난다는 사실이 삶의 축복처럼 보이더군요.
우리는 체크인시간을 훌쩍 넘어 도착해서 오히려 한산하고 순조롭게 입장할 수 있었습니다. 시야를 시원하게 만드는 객실의 탁 트인 뷰와 먼저 도착해 인피니트 풀에서 즐겁게 여가를 보내는 사람들은 이미 우리들의 모습이었습니다. 남향의 뜨거운 태양을 책임지며 서있는 건물 아래 인피니트 풀장으로 서둘러 우리는 이동했습니다.
올여름은 태양이 대지의 모든 것을 태워 없앨 것처럼 강세를 띠는 것 같습니다. 태양의 기세가 꺾였다고 눈치가 보일 즈음에 밤마실을 나갔어도 더운 습기가 기다렸다는 듯이 살갗에 달라붙더군요. 정말 갈수록 더위가 심해질 텐데 큰일이란 생각이 듭니다. 국지성 폭우 아니면 고온이 지속되는 이상기후로 자연이 재앙 수준으로 치닫고 있으니까요.
우리는 속초 여러 곳을 들릴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장소가 여름열기로 뒤덮인 상황을 극복하기 힘들더군요. 영랑호 둘레길도 50미터도 채 걷지 못하고 드라이브로 선회했고, 물치해수욕장은 입구서부터 차량행렬로 차단되어 입장조차 허락받지 못했답니다.
어렵게 '양양 해수욕장'에 도착해 주차를 하고 저 멀리 바다를 향해 걷는데 도착도 하기 전에 우리 모두는 헉헉대고 있었습니다.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에 빨갛게 익은 사람들이 바다를 즐기고 있더군요. 이상한 마음에 하늘과 바다, 그리고 해수욕하는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아봤습니다. 사진 속 풍경은 너무 아름다운데 이럴 수가!
즐기지 못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곳은 극기의 장소가 됩니다. 우리는 빠른 결정으로 포기를 선택하고 리조트로 향했습니다. 에어컨 없으면 어떻게 살지? 큰일 난 사람처럼 말하면서요. 속초 곳곳을 즐길 시간은 여름이 아닌 시간으로 미루어야겠습니다.
체크아웃하는 아침 산책은 리조트에서 조성한 데코길을 걸으며 눈과 가슴에 동해바다를 가득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지나고 나면 그리워질 시간들이니까요. 오픈전 인피니트 풀장에 쪽문을 열어놨길래 들어가 이틀간 휴식을 취했던 시간들을 회상했습니다. 하늘과 바다를 동시에 즐기면서 짠물에 몸을 담그지 않고 편안하게 보냈던 여름휴가라고 기억되겠지요. 아무튼 더위 많이 타는 나 같은 사람은 갈수록 여름 나기가 보통 힘든 게 아니겠구나 싶기도 합니다.
저희는 아들 덕분에 고맙게도 편한 피서를 보내고 돌아왔습니다. 다들 이 무더위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