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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많은 사람이 기억해야 한다

시어머님 무더위 기제사


다른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그저 하면 됩니다. 인간관계에서는 주는 것만 생각하면 됩니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포함해서 돌아올 것 따위는 기대하지 않으면서요.


- 우리는 결국 부모를 떠나보낸다 / 기시미 이치로




본격적으로 더위가 시작된다는 초복인 지난 일요일은 시어머님 기제사일이었다. 늘 하던 제수용품 준비이고, 늘 하던 음식들인데 해가 갈수록 힘에 부치는 것을 느낀다. 한 시간 정도 싱크대에 서서 일을 하면 30분 정도는 의자에 앉아 쉬어야 힘이 나는 것이다.


삼일 전에는 물김치를 담그고 제수용품들을 구입해 온다. 하루 전날에는 식혜를 만들고 전을 부친다. 당일 오전에는 나물들과 육전 그리고 생선과 닭을 찐다. 그리고 기제사를 지내는 밤에는 시어머님이 생전에 좋아하시던 치킨까지 배달시키면 마무리된다.


다음 날은 종일 침대와 한 몸이 되어 누워 시간을 보낸 것 같다. 기제사가 여름만 아니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시어머님 생신은 삼복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시기였다. 하루 종일 에어컨을 풀가동해도 무더위와 많은 인원이 내뿜는 뜨거운 체온으로 집안이 후끈 달아올랐다. 아침에 잡채를 해놓은 것이 오후에 상해서 낭패를 본 적도 있다.



시어머님은 생신 이틀째 되던 날 돌아가셨으니 나는 기제사 준비를 할 때면 생신상을 준비했던 시간으로 회귀하는 기분이 든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출가한 자식내외 손주들을 모두 불러 생일상을 거하게 받으셨다. 부엌이라는 전장에서 1박 2일 고군분투하며 일하고 다음날 출근하면 손이 화끈거리고 떨렸다.



변한 것이라면 이제 이벤트 주인공이 사라졌다는 것과 출가한 자식 내외와 손주들이 기제사일도 잊은 채 살아간다는 것이다. 우리가 짊어진 책임감은 누군가에겐 편리한 해석이 되어 어제와 다름없는 일상이었을 것이다.



우리끼리 지내는 제사는 한결 편안하고 조용하고 경건하다. 한 공간에서 부딪히며 지냈던 사람들만 남아 추모하는 시간이다. 구심점이었던 시어머님의 부재는 나의 체력과 더불어 모든 이들의 시공간의 변화를 준 느낌이다.



40십에 청상과부靑孀寡婦가 된 시어머님의 앞에는 다섯 아이가 남겨져 있었다. 어머님의 고단함은 운명이었고, 삶은 전쟁터였다. 어머니의 존재감과 위대함은 자식들에게 어떤 의미로 성장했을지 나는 상상하기도 벅차다. 특히 효자였던 둘째 아들을 최종 안식처로 선택하신 것은 안전한 노후의 결정이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 판단이 내겐 다른 운명으로 다가왔을 뿐이다.



함께 살면서 내 삶 속에 시어머님은 많은 부분 고찰의 대상이었다. 시대적 가치관은 물론 양성 불평등을 집에서까지 톡톡히 체험해야 했다. 수많은 내면의 갈등과 불합리성으로 나의 내면은 반발로 아우성쳤지만 표출은 어려웠다. 남편은 효자였고 어머니는 몇십 년을 보따리장수로 생계를 끌어온 노련한 달변가였다. 이길 수가 없었다.



어머님은 돌아가시기 몇 달 전에 당신 제사상을 내가 차려주었으면 좋겠다고 조용히 말을 꺼내셨다. 이 부분은 당신이 생각해도 미안하셨던 모양이다. 당시 나는 30여 년을 함께 살았으니 제삿밥도 여기서 받고 싶다는 의미로 들렸다. 나는 무슨 용기로 약속을 했던가.



큰애가 할머니 제사를 챙기러 올라왔다. 큰애는 지금도 할머니 꿈을 꿀 정도로 시어머님과 각별했다. 직장을 다닐 때 나는 종종 시어머님에게 아들을 뺏긴 소외감이 들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시어머님에게 큰 애는 첫째 며느리에게서 얻지 못했던 첫 손자였다. 둘째 아이까지 푸짐하게 손자를 안겨드렸을 때 시어머님의 만족감은 효자아들과 더불어 최고의 노후 선택지로 낙찰된 순간이었을 것이다. 가장 희망하는 순간에 가장 완벽한 조합의 만남이 준 운명적인 결정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고부사이와 달리 할머니와 손주와의 사이는 절대적 사랑과 존중이 있다. 아이들에게 할머니는 이해관계가 제거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할머니와의 관계는 권력싸움도 지배하고자 하는 마음도 없다. 어찌 보면 가장 깨끗하고 순수한 관계라 할 수 있겠다.



"엄마는 힘드시겠지만 할머니와 오랫동안 같이 지낸 우리 가족들이 제사를 지내는 것이 맞는 것 같아요."



큰 애는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제사상 앞에서 맑은 눈망울을 띠며 말을 꺼낸다. 기억이 많은 사람이 기억해 줘야 한다는 듯이..



힘든 시간들이 지나간 상태에서 나와의 타협만 남은 상태란 걸 아이는 눈치챘던 것일까. 나는 이유를 찾은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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