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 뮤익 개인전(국립현대미술관)
나는 내가 항상 무겁다,
나같이 무거운 무게도 내게는 없을 것이다.
나는 내가 무거워
나를 등에 지고 다닌다,
나는 나의 짐이다.
맑고 고요한 내 눈물을
밤이슬처럼 맺혀 보아도, 눈물은 나를 떼어 낸 조그만 납덩이가 되고 만다.
- 연(鉛) 中 / 김현승
태양의 에너지를 잔뜩 흡수한 지면에서 더운 공기를 힘껏 뿜어내고 있던 지난 주말, 우리는 화제의 작가 '론 뮤익'의 개인전을 다녀왔다. 개최한 지는 꽤 지나 들렸음에도 여전히 그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가족단위도 꽤 있었지만 대부분 이쁘게 데이트 코스로 잡은 연인들이 많았다.
극사실주의 작가로 알려진 그의 작품은 어렵지 않고 이해하기 쉬운 전시라는 점에서 흥미롭게 유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는 '론 뮤익'의 작품 중 최대규모라고 하지만 조각작품은 10점과 그의 작품과 관련된 사진과 영상(다큐멘터리)까지 총 24점에 불과하다. 하지만 작가의 완벽주의 성향에 걸맞게 작가 활동기간인 30여 년 동안 48점의 작품에 불과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꽤 많은 전시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작품 하나하나가 그냥 스치고 넘어갈 수 없을 만큼 완벽한 극사실주의를 보여주고 있다. 세밀하게 표현된 피부의 주름, 털, 혈관, 색조까지 실제 피부라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완벽하다. 조금 특징적인 것이라면 작품의 크기가 아주 크거나 아주 작다는 것이다. 실제 사이즈와 다르게 전복시킨 작품을 관람하다 보면 왜곡된 현존감을 주기 위한 작가의 의도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작품에 표현된 표정들이 모두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처음엔 모든 작품들이 '웃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고 이후 표정 깊숙한 내면의 자기, 외부와 단절된 무거운 침묵에 가까워진다. 김현승 시인의 '연(鉛)'처럼 나의 어두운 존재는 자기 자신이며 짐인 것이다.
관람객들이 가장 많이 몰려있고 인기 있었던 것은 <치킨 / 맨 2019>이었다. 늙은 남자와 닭의 대치가 상당히 흥미롭고 재미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팬티만 입은 노인인 것과 식탁이 놓인 장소에 닭이라니! 노인은 닭을 보고 있는 것인가, 비현실적인 망상을 보고 있는 것인가. 관람객들은 노인의 심리적 대결 앞에서 비현실적인 상상력이 덧붙여지자 이내 웃음을 멈추게 된다.
개인적으로 '쇼핑하는 여인(2013)'을 오랫동안 멈춰 보았던 것 같다. 가장 현실적인 작품으로 느껴졌고 그녀가 무엇을 응시하는지, 아니 아무것도 응시하지 않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골똘히 생각할 때 우리의 시선은 무(無)로 향한다. 응시하는 곳이 나의 내면이기 때문이다.
지나온 나의 시간들 속에서 뒷모습을 기억하는 일은 또다른 무게로 우울감을 주기도 한다. 외롭기도 하고 분노섞인 미움이기도 하다. 골똘해지는 아주 짧은 순간이다. 그녀는 아마도 신호등 대기선 앞에 서 있었을 것이고 이내 현실세계로 돌아온다.
작품을 해설하는 팸플릿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쇼핑하는 여인> 2013. 혼합재료, 113 * 46 * 30cm
'쇼핑하는 여인'은 미술사에서 중요하게 다뤄온 '어머니와 아이'라는 주제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작품일 수 있다. 론 뮤익은 평범한 거리의 한 장면에서 보편적이면서도 시대를 초월하는 깊은 감성을 포착했다. 여성은 커다란 외투 속에 거의 보이지 않는 아기를 아기띠로 안고 있다. 두 손은 묵직한 장바구니를 들고 있어 무게가 손을 파고든다. 이에 반해 아기의 작은 손가락은 간절하게 그녀의 가슴 위에 얹혀 있고, 아기는 여성의 시선을 붙잡으려는 듯 올려다본다. 그러나 여성은 생각에 잠겨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데, 우리는 그 생각이 무엇인지 모르면서도 공감할 수 있다.
전시 마지막 코스는 그의 작품 활동을 소리 없이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였로 장식했다. 한 작품을 만드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들이 필요한지를 묵묵히 보여주는 영상이었는데, 나는 뭔가 세속에서 벗어나려는 수도자의 수행처럼 느껴졌다.
ps. 아래는 담아 온 사진들과 관람 정보입니다.
기간 : 2025-04-11 ~ 2025-07-13
주최: 국립현대미술관(서울, 삼청동)
관람료: 5,000원
작가: 론 뮤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