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반기며
모든 꽃이 시들듯이
청춘이 나이에 굴하듯이
일생의 모든 시기와 지혜와 덕망도
그때그때에 꽃이 피는 것이며
영원히 계속될 수는 없다.
생의 외침을 들을 때마다 마음은
용감히 서러워하지 않고
새로이 다른 속박으로 들어가듯이
이별과 재출발의 각오를 해야 한다.
대개 무슨 일이나 처음에는 이상한 힘이 깃들어 있다.
그것을 우리는 지키며 사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 단계 / 헤르만 헤세 Hermann Hesse
이따금 선선한 바람이 뺨을 설레듯 스칠 때면 눈치 빠른 고양이처럼 눈은 창가로 향했다.
갈수록 여름 나기가 겨울보다 힘들어진다. 여름의 열기는 내 기운을 뽑아먹는 계절로 바뀐 것 같다. 무방비로 잽을 얻어맞은 수비수 같은 기분이랄까. 그래서 나에게 여름은 집안에 처박혀 독서만이 나의 사고를 온전히 지킬 공간으로 축소되었다.
내가 원래부터 이렇게 더위를 많이 타는 사람은 아니었다. 오십에 접어들면서 찾아왔던 갱년기증상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가마솥 안에서 삶아지는 옥수수 같은 열기는 반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젊어서는 가뭄에 콩 나듯 찾아오던 감기가 이제는 수시로 찾아오고 쉽사리 안방자리도 내놓지 않는 심술꾸러기가 된 체력은 덤이 되었다.
의심 많은 나는 '가을이 왔다'는 남편의 외침에도 미적지근 반응했다. 요 며칠 긴가민가 했지만 내겐 턱도 없는 온도였다. 그러나 뒤척임 없이 일어난 오늘 아침에서야 나는 의심을 거두고 무거운 여름의 장막을 걷고 큰 길가로 들어선 해방감을 느낀다.
창문 안으로 불쑥 들어온 차갑고도 건조한 아침공기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진 것이다. 대기(大氣) 중 수증기와 먼지를 내몬 구석에서 아침해가 찬란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동쪽 베란다 창문을 열고 나는 기어이 반가움에 사진을 찍는다.
우리는 늙어서 노는 것을 멈추는 게 아니다. 노는 것을 멈추기 때문에 늙는다
_ 조지 버나드 쇼
어찌 되었든 나는 내 몸 안의 열기를 끌어안고 매해 여름을 견뎌야 함을 알고 있다. 여름에는 외출을 거부하는 적극적 회피도 그 한 방편이 될 것이다. 대신 가을을 두 배로 즐기면 된다고 생각한다.
세 살 많은 남편이 어느 날 "나이 드니 안 아픈 곳이 없네"라고 하길래, 내가 "나이 들어도 안 아픈 곳도 있네"라고 답하며 한참을 서로 웃었다. 나이 들면 조금씩 그러다 조금 많이 고통이 찾아올 것이 분명하다. 어떻게 마주 할지만 남은 것이다.
나는 내 안의 변화에 거부감을 버려야 함을 안다. 노년을 향해 걸어가는 나의 몸은 앞으로 더 불편하고 더 낯설게 마주해야 할 것이다. 그때마다 내면의 불안과 싸울 것인가. 고통은 품위 있게 대처할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말했다. 모든 것은 인생의 계절의 한 부분일 뿐이다.
헤세의 '단계'라는 글을 읽는다. 그는 우리를 부르는 생의 외침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음미하면 그 단계를 미련 없이 명랑하게 뛰어넘으라 말하고 있다.
나는 오랜만에 집에 온 아들처럼 가을을 반갑게 맞이한다. 가을아! 어서 와라. 많이 기다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