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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로 밖의 산책

산책로에는 간섭이 없지


산책로 밖의 산책



-이문재


나의 꿈은

산책로 하나 갖는 것이었다

혼자이거나

둘만의 아침일 때에도

언제나 맨 처음의 문으로 열리는

그 숲에선 혼자가 나를

둘이 서로를

간섭하지 않을 것이었다


매일 그 시간을

나는 그 길 위에 있을 테고 숲길 저마다의

구비들이 나를 기다릴 것이었다

저녁의 섬세한 무렵들이 음악과 같이

나의 산책 안에서 한 칸씩 달라질 터

그때 나는 풍경을, 그대의

온전함이라고 노래했으나


홀로이거나 둘만의 저녁이라고

믿었던 그 숨 가쁘던 날들은

휘발되어 버리고, 돌아보면

은자의 꿈 일찍이

부서지고 말았으니,

산책은

산책로 밖으로 나아가려는

불가능인 것, 기어이 산책로의

바깥에서 주저앉는 무모인 것을


산책은, 산책로 밖에 있어야 했다



30년 가까이 집과 직장만 토끼처럼 오갔고, 쉬는 휴일이면 밀린 집안일도 부족해 시어머니를 모신다는 이유로 각종 경조사를 아픈 어머니를 대신해 남편과 나는 일가친척분들에게 얼굴을 내밀어야 했다. 우리 부부는 편안하게 어디 한번 여행을 다녀 보질 못했다. 어떻게든 계획을 세워 아픈 어머니를 모시고 움직이다 보면 갑절로 내가 힘들었다. 그렇게 몇 번의 효도여행을 시도하다가 그만 지쳐서 훗날로 미루다 보니 오십 후반이 되어서야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 남편의 어깨가 너무 힘겨워 보여 나도 기어이 그 무게를 줄여주고자 악을 쓰고 직장을 다니다 같은 해에 퇴직을 했다. 그런데 문득 남편은 조금 아쉬웠는지 3년만 더 일하겠다며 나를 나두고 무기계약직으로 조직에 다시 들어갔다. 예전보다 보수는 턱없이 적은데도 얼굴표정은 환했다. 


그렇게 나만 혼자 느긋해졌다.  

그런데 습관이 사라진 나의 일상은 조금 허둥댔고 어색했다. 그 지겹고 스트레스 가득했던 직장이 사라지니 어색함이 차지한 꼴이랄까. 그 어색함은 친정집으로 채워졌다. 3년여의 친정집 발길의 습관의 종말은 친정엄마의 별세였다.  친정엄마가 없는 친정집은 내게 의미가 없다.


그렇게 또다시 혼자가 됐다.

하지만 이제는 괜찮다.  산책로는 밖에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혼자가 편하고 편하게 사색하기 좋다.

그러다 외로울 때쯤이면 남편과 함께 하면 된다. 완벽하다.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WE>

카텔렌의 작품들은 보기에 단순하고 바로 이해할 수 있는 극사실적 조각과 회화가 주를 이루며, 대부분

미술사를 슬쩍 도용하거나 익숙한 대중적 요소를 교묘히 이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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