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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한 아버지의 어버이날

미래를 위해 희생과 노동의 가치를 알아야 한다

인생의 환희와 고통은 모두 경험이라는 소중한 보물이 되어 마음의 장부에 남는다.

그렇다.

고통과 불행마저도 소중한 '수입'이다.


사람은 두 가지의 자아를 가지고 있다.

첫 번째 자아는 세상에 나가 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때로는 승리하고 때로는 패배한다.

두 번째 자아는 피땀에 젖어 돌아온 첫 번째 자아를 조용한 미소로 맞이하고, 그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전리품을 보여주면 패배마저도 자산으로 만든다.


'인생을 바르게 보는 법.. ' 분문 中




술을 한 방울이라도 먹는다면 죽는다는 의사의 경고 한마디로 아버지는 단박에 술을 끊으셨다.  뇌경색 판정사유였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나는 그렇게 쉽게 술과 이별한 아버지를 경이롭게 생각했다. 내가 아는 아버지는 절대 술을 배신할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평상시 입을 다물고 계시다 술에 취하면 닫혀있던 말문이 폭발하듯 터지셨다. 억눌러 있던 분노의 인격체가 나타나 살림살이를 부수고 엄마에게 폭군으로 변하셨다. 악몽 같은 현실을 아버지는 일주일에 5일 이상을 보여 주셨다. 아버지가 술 취해 돌아오신 날에 두 언니들과 동생은 나를 버리고 방안으로 도망가 문을 잠갔다. 지금도 아버지의 술주정과 독사로 변한 엄마의 외침, 어떻게든 수습하려는 내 모습이 처량하게 그려진다. 이대로 살 수 없을 것 같아 나는 서둘러 결혼을 선택했던 것 같다. 그것만이 이 지긋지긋한 탈출구라고 믿었다.


아버지는 뇌경색으로 정상적인 왼쪽팔과 다리를 반납하셨다. 아버지의 불행을 엄마는 오히려 고맙게 생각하셨다. 드디어 남편이 돌아왔다고 생각하셨는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도 아버지가 술힘을 빌려 말하고 싶었던 슬픔이 궁금하다. 그것이 어떤 괴로움이었는지, 술이 습관이 된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알고 싶다.  그 슬픔이 절대 해결하지 못할 사안이었는지 궁금하다. 하지만 아버지는 끝내 입을 열지 않으셨고 이제는 열 수도 없는 처지가 되셨다. 아니 점점 더 언어를 잃어가신다. 간단한 문장도 이제는 당신의 의지대로 표현하지 못한 채 자식들이 도와줘야 한다.  


어린이날 아버지를 뵙고 왔다. 꽃을 드리고 용돈을 쥐어 드리고 주적주적 비 내리는 도로를 지나 집으로 돌아왔다.  남동생은 신어도 걸을 수 없는 아버지에게 운동화를 선물했다.  운동화를 유심히 살피시는 사진을 보는데 문득 아버지에게 그 어떤 희망이 남아 있을까, 슬픈 생각이 든다.


지금처럼 술에 찌들어 산다면 당신의 노년이 뇌경색으로 몸을 잃고 그로 인해 아내를 지켜주지 못해 통한의 여생을 보낼 수도 있다고, 의사의 경고이전에 알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사실 우리는 잘못하는 그 순간 정확히 안다.  결과적으로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은 그래서 변명이다. 우리가 희생과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아 발생할 그 모든 인생의 결과물들을 평소 인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미래를 위해서는 희생이 필요하고, 희생이 클수록 더 좋은 미래를 맞이할 확률이 높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즉각적인 만족을 쫓지 말고 지연된 보상을 미래와 거래해야 한다.  


아버지의 인생은 불쌍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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