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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은 나와 상대를 빛나게 한다

아들회사의 부모초청행사


누군가에게 인정받는다는 건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날 만큼 감정이 동요되고 감동할 만한 일이다. 생각해 보라. 당신은 최근 며칠 사이에 누군가에게 칭찬받은 일이 있는가? 나름 잘하고 있는데, 매일 열심히 하고 있는데 좀처럼 인정받을 기회가 없지는 않았는가? 그래서 단 한마디 말이 심금을 울리는 것이다.



-'듣고 싶은 말을 했더니 잘 풀리기 시작했다' 본문 中




작은애 회사에서 5월 가정의 달을 기념해 부모초청 행사를 한다고 연락이 왔다.  매년 하는 행사는 아니고 사장(임기는 3년제)의 즉흥적 결정이었다고 했다.  신입사원 부모 위주로 신청을 받았나 본데, 인원이 다 채워지지 않자 인재개발팀 동기가 용희에게 급조하듯 부탁을 한 모양이었다. 나는 아들 직장 분위기가 어떤지 늘 궁금했던 차에 선뜻 승낙을 했다.


친정엄마의 소천 이후 나는 의도적으로 참여가능한 기회를 거부하지 않을뿐더러 스스로 찾기도 하면서 몸을 움직이고 있다.  생각이라는 세계에 함몰되어서는 그 어떤 결정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움직임이 가져다주는 활력, 에너지, 긍정은 예상외로 컸다.


나는 행사 1시간 전에 안전하게 도착해 청계천을 한 바퀴 돌았다.  행사는 돈을 묵직하게 쓴 느낌이 받을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A급 성악가분들을 초청해 귀호강을 2시간가량 했고, 성대한 만찬에 선물까지 초청한 부모들이 자식에 대한 자부심으로 회사문을 나서게 만들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자식이 근무하는 사무실까지 탐방을 허락해서 조금 놀랐다. 용희는 '조사국'에서 일하고 있는데 국장이 현직검찰(대내외 비리 조사업무)이라고 했다.  어찌나 칭찬을 해주시던지 용희도 나도 몸들 바를 몰랐다.  립서비스가 아닌 진심이 느껴지는 동료들의 인사와 웃음까지.. 딱딱한 사무실 분위기를 예상하고 갔다가 즐겁게 놀란 독특한 경험이랄까. 평소 듣지 못했던 칭찬을 공개적으로 받은 아들은 조금 놀라고 의심스러운 눈초리였지만 싫지 않은 표정이었다.


내로라하는 성악가들의 공연을 이렇게 근거리에서 편안히 듣는다는 사실이 나는 마냥 좋았다
행사 후 식당에 내려가니 떡하니 만찬이..


회사밖을 나온 나는 힘 있게 손목을 잡고 이끄는 아들을 따라 빌딩숲 여기저기를 구경했다. 아들이 마치 내 보호자가 된 기분이랄까.  묘한 위축감이 들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아들은 작정한 사람처럼 근처 '조계사'구경도 시켜주고, 언젠가 신기한 커피라며 엄마에게 꼭 맛보게 해 주겠다던 '스노우비엔나'커피를 상기시키며 커피숍으로 이끌었다. 이 모든 게 행사의 일환일까, 나는 대접받아 마땅한 부모일까 별스런 생각이 들었다.


조계사 입구에 화려한 연등
신기하고 다른 곳에선 맛보지 못했던 색다른 커피


사실 조금 웃긴 해프닝이 있었다. 오랜만에 격식 있는 장소에 가는 터라 신발장에서 안 신던 구두를 처음 꺼내 신었는데 청계천을 한 시간가량 걷고 용희의 에스코트를 받고 들어가려던 입구에서 밑창이 슬리퍼처럼 쩍 갈라지는 게 아닌가. 얼마나 웃기고 당황했던지! 근처 영풍문고 안 무인양품점에 부랴부랴 달려가 운동화를 신고 들어갔다.  속상해하는 내게 긍정적인 용희는 확실한 추억이라며 얘기해 줘 금세 기분이 풀렸다.


돌아오는 길, 용희는 내게 의미 있는 생각을 꺼냈다. 직장동료들과 상사들에 대하여 그동안 고착화되어 있었던 자신의 반성이었다.  매일매일 독촉받는 업무를 처내기 바빴던 일상 속에서 철저히 조직원으로만 지낸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문득 깨달았다고 했다.  비록 시작은 내 부모 앞에서 꺼낸 약간의 포장된 '칭찬'이었을지라도 그 맥락 안을 다시 생각하니 의례적인 칭찬이 아닌 자신을 존중하고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어 하는 호감이었다는 점이었다. 상대의 마음을 안다는 것은 이래서 충족감이 크다.


사람이 평소 하지 않는 말은 낯설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진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딱딱한 사무실 안에 '나'의 등장은 부모를 초청하지 않았던 동료들의 마음에도 엄마를 부른 것과 다를 게 없었다.  나를 바라보던 많은 사람들의 푸근하고 애정 어린 얼굴근육들이 증명한다. 잇몸이 보였고 한 번이라도 내 눈과 마주치고 싶어 했다. 그리고 모두들 용희를 응원했고 칭찬했다. 그것은 자신들을 칭찬한 것과 같았고 행복한 발견이었다.


우리가 관심이 있든 없든 꽃은 항상 그 곳에 피어 있다. 그런데 꽃을 보는 사람만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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