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빛날 수 있다
하루 공부한다고 해서 현명함을 얻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무지에서는 멀어진다.
하루 나태하게 군다고 해서 무지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현명함에서는 멀어진다.
공부하는 사람은 봄 뜰의 풀과 같아서 그 자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나날이 자라는 바 있으나, 공부하지 않는 사람은 칼 가는 숫돌과 같아서 그 닳아가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은 나날이 닳고 있는 것이다.
내려올 때 보았네 / 이윤기
주말도 아닌데 모교 박사학위 외부심사관 자격으로 서울집에 올라온다는 문자를 받았다. 반가움과 동시에 내 머릿속에는 큰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메뉴를 고르고 있었다. 분명 부실하게 끼니를 해결하고 있을 자식에게 한 끼만큼은 따뜻한 집밥을 해주고 싶어서다.
큰아이는 자리가 자리인 만큼 말쑥한 복장으로 현관문을 열었다. 심사를 받는 사람의 긴장감에 대한 예의일 것이다. 동영상강의촬영과 교수회의를 마치고 올라와 간신히 시간을 만들었다는 표정으로 큰 한숨을 쉬는 아들은 이러니 학기 중에 연구는 불가능하다고 푸념을 늘어놓는다. 나는 분주히 일과를 잘 처리하고 있다는 소리로 해석한다. 건강하게 잘 먹고 다닌다는 대답을 듣고 싶은데 아들은 중요한 질문이 아니라는 듯 가볍게 답한다.
큰애는 전형적인 학자스타일이다. 연구와 논문이라는 결과물이 자신의 존재감을 지켜주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가끔 내 속으로 난 자식들임에도 신기하게 바라볼 때가 많다. 분명히 꼬물거리던 아가들이었는데 어느새 자라 나를 내려다볼 정도로 커있고 자기만의 삶을 살아간다. 이런 생각이 들 때면 확실히 자식이란 존재는 유년기에 정지되어 있는 게 분명하다.
자식의 성장과정을 고스란히 간직한 유일한 사람은 주양육자(엄마)다. 아이들은 유년기의 시간들을 엄마만큼 기억하지 못한다. 단편적인 기억이 있기도 하지만 연결성이 떨어진다. 영유아기 때 인간의 뇌는 신경세포가 가장 많고 가장 활발하게 발달하는 시기지만 성장하면서 환경에 자주 활용되지 않는 세포는 가지치기되듯 사라지고 가소성 좋은 신경세포만 회로에 남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아이가 체(體)화된 행동은 무의식이라는 장치 속에 습관으로 남아 있게 된다. 원초적 기억이 분명하지 않아도 난감해할 필요가 없다. 가끔 나는 그 비밀의 정원으로 들어가 보물상자를 열고 아이들에게 말하곤 하는데, 놀란 듯 쑥스러운 듯 새롭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듣는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것이다.
아이의 궤적을 뒤에서 바라보는 흐뭇한 엄마의 마음이랄까.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나서 돌아보니 인생은 나름의 질서와 계획이 들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줄거리를 구성하는 것은 우연히 발견한 아이의 장점과 유년시절 속 아이의 작은 의지들의 합이었다는 점이다.
사람이 잘하는 행동의 근저에는 몰입력이 있다. 엄마는 비밀의 정원의 물고를 열어주고 아이는 그곳에 논다. 큰 아이는 공부를 통해 자신의 길을 찾은 것 같다. 나는 어른이 된 아들과 대화 속에서 작은 눈망울을 굴리며 집중하던 모습과 실수 앞에서 원인을 찾으려 인상을 쓰던 귀여운 눈매를 기억해 낸다. 작은 어깨를 으쓱이며 기뻐하던 시간들이 겹쳐 보이는 것이다.
공부는 철저히 자기 자신과의 외롭고 지루한 싸움이지만 답이 확실히 있는 정직하고 신뢰성이 높은 학문이라고 아이는 말한다. 이해가 복잡한 인간관계를 힘들어하는 성격으로 보았을 때 학자의 길로 인생의 방향을 잡은 것은 현명해 보인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어떤 인생 길이든 편한 길은 없다.
우리는 확실한 결과물이 보장된 곳을 원한다. 대세라 생각되면 양 떼처럼 자신의 길이라 판단하고 몰려든다. 유행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불확실한 세상에서 확실함을 찾는다는 것은 희망고문일 뿐이다. 인생은 성공하려고 달리는 레이스가 아니다. 자신이 만족하고 내 자리라고 느끼는 곳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다면 성공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실력을 쌓아야 한다. 항상 원론적인 이야기로 끝나지만 실력은 쉽게 쌓이지 않는다. 지루한 평행선을 달리는 철길처럼 시행착오라는 시간을 훈련과 반복을 견디고 이겨내야 비로소 발전하는 것이다.
지난 25일 한국 방송의 산증인이었던 '이순재'씨가 별세했다. 현역에서 끝까지 배우의 삶을 사신 그분의 인생에 우리는 경건한 존경을 보낸다. 작년 KBS 연기대상을 수상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연로한 배우가 흔히 받는 공로상이 아닌 연기상이었다. 역대 최고령 연기대상이었다. 언젠가는 기회가 오겠지, 하며 늘 준비하고 있었다는 소감을 듣는데 눈물이 떨어졌었다.
내 자리라고 생각하는 곳에서 열심히 살아야 한다. 그것이 나는 성공이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