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한다고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조심할 필요가 없다.
해결할 수 없는 일 또한 조심할 필요가 없다
걱정한다고 해서 상황이 바뀌지는 않으므로..
- 어른을 위한 고전의 숲 / 강경희
2년 전 관상동맥 중재시술(스탠트 삽입)을 무사히 끝낸 남편은 일 년에 두 번 정기 검사를 받으러 병원에 간다. 며칠 전 정밀 사전검사가 있는 날이라 우리는 하루 종일 시간을 비워야 했다. 나는 오랜만에 남편의 보호자가 된다. 스탠트 시술이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들었을 때 당시 남편은 이제 100살은 끄떡없다고 호언장담했다. 나는 그렇고 말고, 장단을 맞춰주었다.
나이가 들면서 우리는 흔한 병과 작은 사고에 시달리나 늘 그것들은 가볍게 넘어간다. 빠른 적응과 무감각해진 반복된 일상은 예측할 수 없이 질병을 키우게 된다. 남편은 운 좋게 건강검진에서 발견되었고 날짜를 조율해 무사히 시술을 마쳤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살아갈 뿐이다.
병원에 도착하면 나는 시어머님과 친정엄마의 보호자 시절 전투모드로 변해 가방을 사선으로 메고 미아가 될지 모를 남편 손을 꼭 잡는다. 오늘은 내가 보호자기 때문이다. 복합상가 같은 지하 1층은 환자들과 보호자들이 대부분이지만 쇼핑객이기도 하다. 옷을 고르고 모자를 써보고 일식, 중식, 한식은 물론 분식까지 병원의 수익에 크게 한 몫하고 있다. 우리는 본분을 잊지 않고 빠르게 관문을 통과해 1층으로 올라가는 원내출입증 바코드를 찍고 에스컬레이터에 오른다. 나도 모르게 긴 한숨이 나온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제일 먼저 채혈을 하고 심폐 기능 확인을 위해 심전도, 혈압 측정, 호흡기를 달고 러닝머신 위를 남편이 달린다.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건너뛴 식사를 하러 북적이는 지하 1층으로 다시 내려간다. 대기시간에 맞춰 진료실로 향하고 우리는 담당 의사를 10여분 상담하기 위해 오늘 하루 노력한 결과물을 듣는다.
병원에서 보호자의 역할은 관찰자로서 소임을 정확히 해내야 함을 나는 알고 있다. 환자를 대신해서 수속을 도와주고 의사의 진찰결과를 정확히 숙지해야 한다. 시술된 부위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고 사전 검진 결과도 좋다고 전달받는다. 우리는 안도의 표정을 교환하며 일 년을 무사히 보낸 기분으로 진료실문을 닫고 나온다.
시어머님은 혈액암(일차성 골수 섬유증)으로 돌아가셨다. 결혼하고 처음 뵈었던 시어머님은 40십에 청상과부(靑孀寡婦)가 되어 막막한 세상을 마주하고 다섯 아이를 키우면서 생긴 화덩어리를 품고 살았다고 고백하셨다. 다섯 아이 중 가장 똑똑하고 효자인 남편을 최종 안식처로 선택하신 것은 안전한 노후의 결정처럼 들렸다. 그 말은 똑같이 며느리인 나에게도 부여하는 의무였다.
함께 살면서 시어머님은 내게 고찰의 대상이었다. 시대적 가치관은 물론 양성 불평등을 회사는 물론 집에서까지 체험해야 했다. 억울했지만 표출하기 어려웠고 거친 삶을 이어온 분에 대한 노여움이라 이해했기에 견디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시어머님은 식성까지 까다로운 분이셨다. 까다로운 식성은 아마도 가슴속 어딘가에 숨어있는 화덩어리가 심술을 부리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어머님은 적은 양을 드시고도 포효하듯 트림을 하셨다. 집안의 모든 분위기는 어머니가 끌고 가셨다. 노인과 함께 사는 집의 환기는 늘 한밤중에 발생한다. 토사곽란(吐瀉癨亂)으로 몇 번이고 응급실을 실려가고 어머니의 화병의 진짜 병명의 실체를 우리는 드디어 알게 되었다.
골수를 채취하고 확진명을 받고 치료제를 받고 복용하면서 어머니가 화병으로 지목했던 비장이 급속이 줄기 시작했다. 약효의 빠른 진행은 퇴원 후 2주간 갈비를 매끼 드시는 것으로 증명하셨다. 삶에 대한 집착이 다시 시작되면서 집안은 활기가 돌았다. 하지만 약의 효과는 영원하지 않았다. 진행되는 노화와 함께 떨어진 면역력은 혈소판 수치를 급격히 떨어뜨렸고 수혈과 영양주사, 혈소판 투여 모두 소용없게 만들었다. 약효는 딱 3년 정도였다.
병원은 회복을 희망하며 치료를 받는 곳이지만 중력과 더불어 진행되는 노화의 강력한 힘에 대항해 현대 의술은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시간이었다. 연이어 친정엄마까지 세상을 떠나시면서 나는 포기에 가까운 승복의 백기를 들고야 말았다.
나는 세상의 누구도 자신의 질병에 책임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단 병에 걸렸다면 맞서 싸울 뿐, 노력하겠지만 누구나 나이 들면 병들고 죽는다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당장은 두렵겠지만 사실이다.
그러니 어떤 결론을 내며 살아야 하는가. 젊고 조금이라도 건강할 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질병에 걸렸다면 낙담하지 말고 맞서 적절히 대응해 나아가야 한다. 진지한 것과 심각한 것은 다르다. 의학기술 발달은 '지금, 여기'라는 현실을 발견하도록 돕는다. 잠시 유예라는 시간을 줄 뿐이다. 삶 자체가 소중하다는 것을 나는 매번 병원을 갈 때마다 확인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