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는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 반응한다
기술의 발전은 '위험 유전자 클럽' 전체의 변화된 유전자 활동을 측정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한 사람의 삶 속에서 유전자의 활동이 어떻게 조절되는지에 대한 다각적인 문제를 흥미롭게 다룬 책이다. 그동안 우리는 인간의 건강과 결정적인 질병들은 부모의 좋거나 나쁜 유전자를 물려받은 문제로 취급되어 왔다. 진화생물학적 개념으로 해석하는 이른바 '유전자 결정론'이다.
유전자 결정론(인종주의)이 우리의 머릿속에 주입된 근거에는 게놈에 따라 각기 다른 가치를 지닌다는 가설에 손을 든 '찰스다윈'과 인간은 유전자에 의해 창조된 생존기계(몸) 일뿐이라는 '이기적 유전자(리처드 도킨스)'의 주장이 문명의 편리한 해석과 맞물려 불을 지핀 것도 사실이다.
저자 '요아힘 바우어'는 신경생물학을 전공하고 신경과학자로서 유전자 결정론에 대한 반론을 찾아냈다. 이 책은 유전자는 단지 매개체 일뿐이며 저마다의 행동과 실천으로 삶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즉 공감하고 소통하려는 '좋은 삶(사회적 경험)'은 유전자활동을 조절할 수 있다는 뜻이다.
유전자에는 각각의 고유한 진화생물학적 정보가 있는 것은 맞지만 사회적 경험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유전자 활동이 생물학적 변화로 반응한다고 한다. 예컨대 고독, 사회적 고립, 인간 갈등, 그 외 정신적 스트레스는 유전자 활성화로 이어져 만성적인 아급성 염증으로 차곡차곡 쌓이다 어느 날 폭발(심근경색, 뇌졸중, 암이나 치매 등)하게 된다. 무시무시한 결과물인 셈이다. 우리의 자아가 유전자 활동 패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흥미로운 대목을 발견했다. '인지신경과학저널'에 발표된 논문인데, '자아'라 부르는 정신 체계부위를 찾은 것이다. 역시 과학은 진보적이며 그 진보를 토대로 심리학의 난제들을 해석해 준다.
현대 신경과학에서 '자아'라 부르는 것은 당연히 정신 전체가 아니라 한 인격의 정신 가운데 자기 성찰 및 반성을 할 수 있는 부분을 뜻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신경적 자아 체계가 또 다른 두 가지 구조에도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하나는 전두엽의 '위층' 그러니까 배외측 전전두엽 피질에 위치한 비판적 자기 관찰을 기능을 담당하는 신경망이다.
예컨대 인도 여성들의 눈썹 사이에 찍는 붉은 반디점 뒤쪽 영역에 우리의 '자아'가 본거지를 틀고 있었다. 연구진들은 주요 우울장애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자기 평가가 이루어지는 자아신경망이 과잉활성화되는 것을 발견한다.
저자는 우리의 '자아'가 유전자와 상관없는데도 불구하고 유전자의 활동을 조정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나는 이 대목을 읽을 때 소름이 돋았다. 우리 인간의 유전자는 공감하고 소통하고 좋은 영향을 주도할 수 있는 자아의 결정(사회적 태도)에 따라 건강하게 바뀔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제야 나는 저자가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 인간의 삶과 건강에 결정적 방향성을 얻는 것은 어떤 유전자를 물려받았는가 하는 점이 아니라는 주장을 이해했다. 우리는 우리의 유전자 활동을 바꿀 수 있다. 예컨대 나쁜 유전자(질병)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인격 즉 인간의 자아가 건강하게 형성되도록 조성되어 있다면 위험성이 완화될 수 있다. 우리가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사람이 예상외로 오랜 삶을 유지하는 사례들은 모두 보호받고 사랑받는 긴밀한 인간관계의 결과물들이다.
개인적으로 저자가 전문적으로 다룬 '염증전달물질' 연구는 의미 있게 읽었다. 그는 사망한 알츠하이머 환자들의 뇌에서 염증전달물질(인터루킨-6)을 발견한다. 이 염증전달물질은 만성적인 염증의 하나로 전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형태의 손상된 신경세포-신경섬유 변성)라고 한다. 알츠하이머가 발병하기 전 동일한 패턴도 의미심장하게 읽힌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이상 그냥 넘기기 힘든 패턴이니 참고했으면 좋겠다.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 알츠하이머 발병 전 수년 내지 수십여 년동안 가족 구성원들에게 지나칠 정도로 다정하게 행동하며 다툼을 피하려는 모습을 종종 보인다.
- 자율성이 떨어지고 유능한 배우자에게 크게 의존하는 경향을 보인다.
- 알츠하이머 증상이 나타나기 직전에 심한 '스트레스 사건'을 겪는다.
생의 맥락이 무너지는 결정적인 스트레스 사건이란 결국 의지했던 사람과의 관계단절이란 점이 의미 있다. 인지적 통로가 끊기고 지탱하던 토대가 무너지면 잠재되어 있던 염증전달물질이 손상을 일으키는 순간인 것이다. 인간관계의 맥락이 끊긴다는 것이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알츠하이머가 발병하게 된 원초적인 계기로 더 깊숙이 들어가면 어린 시절 겪은 트라우마가 '자아'의 악화로 이어졌으며, 결국 성인이 되었을 때 능력 있는 배우자를 찾는 성향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결국 건강한 '자아'형성은 이 책의 저자가 강조하는 '좋은 삶'을 유지하도록 돕는다. 유전자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우리는 결국 각종 염증전달물질의 방해로 죽음을 맞이한다. 노화로 인한 자연스러운 죽음은 별개로 하고 삶의 건강한 자세가 유전자 활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그저 즐기는 삶이 아닌 좋은 삶을 꾸리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좋은 삶은 어떤 삶일까. 책 초반에 나오는 실험은 즐거운 소재로 가볍게 시작하는데 알고 보니 이 책의 결론을 끌어 시작한 의도였다. 건강한 성인 150명을 무작위 네 집단으로 구성해 실험을 했다.
- 첫 번째 집단: 동료든 이웃이든 주변 사람에게 즉흥적으로 무언가 좋은 일을 하라고 요청(친절, 즐거움 등)
- 두 번째 집단: 오로지 자기 자신을 위해서만 특별히 좋은 일
- 세 번째 집단: 인간적으로 무언가 좋은 일을 행하라는 주문(거리에 쓰레기 줍기 같은 행위 등)
- 네 번째 집단: 별다른 임무 주지 않음
결과는 어땠을까. 첫 번째 집단만이 '위험 유전자 클럽 활동패턴'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즉 인간은 다른 사람에게 선한 일을 행하는 인류 공유의 인간성 회복만이 우리 몸의 만성 염증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유전자 패턴을 활성화시킨다는 사실이다. 자유의지로 타인을 돕는 사람이 '이로운 유전자'를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 텔레스가 말한 '에우다이모니아적(의미지향적) 태도'로 여러 번 강조하고 있다.
인간은 애정과 사랑을 위해 태어난 존재다. 사랑받지 못한 유년시절의 경험을 털지 못하고 성인이 사람은 정신적 외상을 겪을 정도로 나약한 존재가 된다. 인간관계에 매번 지속적인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 겪은 좋지 않은 경험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초기 아동기라 불리는 유아기에 잦은 부정적 경험은 생물학적 흔적(체성감각 피질)을 몸에 남기게 되는 것이다.
인격의 핵심인 '자아'는 공감할 때 이로운 유전자로 발현된다는 것이 이 책의 결론이다. 우리의 자아는 다른 사람과 분리될 수 없는데 이는 심리적 차원뿐 아니라 두뇌의 신경세포 차원에서도 결합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가치 결합'에 기초하여 서로 연결되고 자신을 동일시하며 성장한다. 유전자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따뜻하게 말해준 책이다. 막연한 제시가 아닌 과학적 연구와 저자가 오랜 시간 찾아낸 결과물 그리고 실험에서 얻은 희망을 이야기해 줘서 참 좋았다.
인간의 친화력은 자기 가축화를 통해 진화되었다는 책(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 브라이언 헤어 저)이 생각이 난다. 인간의 진화는 최적자가 아니라 다정한 자이며 그것이 인간의 생존에 크게 기여했다는 주장을 한 책이다. 인간의 자기 가축화 징후는 얼굴형, 치아 크기, 신체 부위별로 각기 다른 피부색, 호르몬과 번식주기, 신경계 변화는 물론 타인과 협력하고 소통하는 능력을 향상했다. 이 책의 저자 '요아힘 바우어'가 말하는 유전자는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 반응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선한 인간성, 에우다이모니아적인 좋은 삶, 사회 친화적 공존, 공공심, 공평, 공감을 지향하는 태도는 인간의 건강에 유익한 유전자 프로그램 및 신체 체계를 활성화시키며 질병의 위험을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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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어떤 존재인지에 관한 질문에 오늘날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이처럼 뚜렷하고 명확하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런 신체 체계 및 신경생물학적 구조를 갖춘 인간은 스스로를 공감 능력이 있는 생명체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결정적으로 더해졌다. 즉 우리 인간은 타인이 느끼는 것을 느끼고, 또 타인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는 걸 가능하게 만드는 신경생물학적 도구를 스스로 갖출 수 있다. 인간은 같은 인간을 즐겁게 만들 수 있을 때 기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