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가 없어도 뉴스가 나오는 세상
뉴스들이 신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신문이 뉴스들을 만드는 것입니다.
2015년 출간한 '제0호'는 췌장암으로 별세한 옴베르토 에코의 마지막 소설이다. 소설이 다루는 주된 내용은 공정성을 잃은 현대 저널리즘의 어두운 이면과 오랜 시간 음모론에 둘러싼 대중의 망상을 풍자하고 있다.
소설은 실패한 글쟁이(콜론나)가 창간을 앞둔 신문사 '도마니(내일)'의 섭외를 받으며 시작된다. 그가 신문사에서의 역할은 고문(데스크)이지만 실제 목적은 주필(主筆) '시메이'의 대필작가다. '시메이'는 신문이 창간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하기 위한 수단(책 출간)으로 그를 고용한 것이다. '콜론나'는 만족스러운 대가를 받고 기록자이자 관찰자의 역할로 '도마니' 신문사에 출근하게 된다.
창간호는 결코 발행되지 않을 신문으로 처음부터 기획되었다. 신문사는 정. 재계 거물들의 영역에 진입하기 위한 수단이자 협상카드로 쓰일 신문사 물주이자 세력가 '콤멘다토레'가 의도한 작품이었다. '콤멘다토레'는 정. 재계 거물들의 성역에 진입하려는 야망을 위해 거물급들에게 위협이 될만한 창간 예비판의 정보를 흘린 뒤 협상이 체결되면 신문 창간 계획을 접을 계획을 갖고 있었다. 소설은 이러한 불순한 의도로 시작된 배경을 안고 저널리즘의 깊숙한 곳, 편집기자 회의실로 안내한다.
독자들은 공정성을 잃은 보도의 생산기지 안에서 음모론을 다루는 편집기술들을 여실히 목격한다. 주필(主筆) '시메이'는 저널리즘을 운운하면서도 실상은 기자들에게 자극적인 기사를 쓰라 독촉하고, 진실보다 특종에 갈증을 느끼는 대중들을 위한 자극적이고 과장된 헤드라인을 뽑기 위해 시간을 쓰라 말한다. 오래된 기사를 재탕하더라도 가설을 토대로 준비된 기획 기사에 새로움을 발견하고 안심하는 인간의 속성을 이용하도록 권고하는 것이다.
뉴스 만들기, 이건 멋진 표현이라는 점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는 뉴스를 만들어야 하고, 행간에서 뉴스가 튀어나오게 하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가짜 뉴스의 온상지 속에서도 진실을 파헤치려는 기자가 있지만 번번이 묵살당하는 것은 예사다. 그렇게 특종을 강요받는 취재과정 중 '무솔리니 죽음에 관한 음모론'을 추적하던 기자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소설 내에서는 괴한의 정체는 명확하지 않지만 정황상 그가 파헤치던 비밀의 관계기관(은폐하려는 국가정보기관이나 비밀조직)이라는 것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소설은 기자의 죽음 이후 서두르듯 막을 내려야 한다는 듯 종결한다. 동료 기자가 살해당하자 '콜론나'는 극심한 공포(자신도 제거될지 모른다는)에 휩싸여 연인과 은신처로 도피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이 맺는다.
'옴베르토 에코'는 주인공 '콜론나'를 통해 독자들이 감정이입되어 공정성을 잃어버린 저널리즘의 민낯 그리고 진실을 파헤친다는 것에 대한 한계를 보여주려고 한 것 같다. 개인이 믿고 있는 진실이 집단이 믿고 있는 기록물에 우위에 서면 안 된다는 현실의 폭력이기도 하다. 우리는 현재의 기준에서 과거의 사실 가운데 현대에 의미 있는 것만을 취사 선택하며 산다. 그리고 양식화된 간단명료한 이분법적 사실에 안심한다. 그렇게 언론은 우매한 대중을 이용하는 것이다.
사회 저변(低邊)에 퍼져있는 매스 미디어의 영향력아래 우리는 일생 동안 세상을 배우고, 소통하는 창구로 함께 살아간다. 특히 저널리즘의 영향력은 개인의 어젠다 세팅에 중요한 비중을 하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저널리즘의 글 속에서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는 만큼 현명한 뉴스 소비자로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 옴베르토 에코의 요청이라고 본다.
우리는 왜곡된 언론이 아닌지 의심할 줄 알아야 한다. 사실을 보도하는 척하면서, 교묘한 문맥배치를 통해 사실을 오도하는지, 논리적인 반박이 아닌 사소한 실수를 부각하는데 중점을 두는지, 확인되지 않는 정보를 흘리는지 의심해야 한다.
결국 현명한 독자가 되려면 기본적인 문해 능력을 키워야 하며, 스스로 진위 여부를 확인하려는 능동적 읽기가 필요하다는 원론적 이야기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