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이 남쪽으로 가는 날

쇠약함, 자존감 그리고 용기


나는 몸을 벌떡 일으켜 식탁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나는 내가 원하는 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소리치고 싶었다. 이 배의 선장은 바로 나라고.


하지만 내버려 두었다. 나는 선장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나는 폭풍우 속을 항해하는 배에 묶여 있는 짐에 불과했다.





특색 있게도 이 소설은 보호자 입장이 아닌 돌봄을 받는 노인의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를 끌고 있다. 영화 '더파더'의 '안소니 홉킨스'의 혼란스러운 심정을 글로 만난 기분이랄까. 단지 이 소설의 주인공은 치매가 아니라 임종을 앞둔 쇠약한 노인이다. 도저히 중간에 덮고 다음날을 맞이할 수 없을 정도로 흡입력 강한 소설이었다. 평범하기에 더 와닿는 이야기, 바로 나와 주변의 이야기다.



소설의 배경은 연중 기후가 대부분 추운 스웨덴의 어느 시골마을로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에게 돌봄을 받지 않으면 살 수 없는 89세 노인이 주인공이다. 사회 서비스가 훌륭한 스웨덴에서 돌봄은 자연스러운 규칙처럼 돌아간다. 그에게는 4명의 재택요양사가 돌아가며 방문하고 있다. 요양사들은 환자의 상태를 일일이 기록하여 보호자와 복지기관으로 넘기는 일을 한다.



주인공 '보'는 주변에 아는 사람이 적은 내향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가족 이외의 친구는 '투레' 한 명뿐이다. '투레'마저 자신과 똑같이 돌봄을 받고 있다. 그의 아내 '프레드레카'는 3년 전 치매로 판정되어 요양원으로 갔고 그에게는 오래된 반려견 '식스텐'만 남은 상태다. 그는 스스로 삶을 개척하며 성장했고, 아버지로부터 상처를 많이 받고 자랐지만 자신은 좋은 아버지가 되어야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살아왔다.



점점 쇠약해지는 아버지를 걱정해 아들 '한스'는 주기적으로 산책이 필요한 '식스텐'의 입양을 계획하는 상황을 보여주며 이 소설은 시작된다. 개 산책은 요양사의 선택적 도움이지 필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내를 떠나보내고 반려견 '식스텐'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보'는 청천벽력 같은 결정이다. 그가 식스텐을 지키려는 집념을 독자들은 소설의 첫 문단으로 파악할 수 있다. 아들에 대해 분노에 가까운 적개심을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상속권을 박탈해 그가 아무것도 물려받지 못하기를 바랐다.



시어머님과 친정엄마를 돌봤던 입장에서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노년기의 쇠약함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특히 임종에 다다를 때의 경과는 하루하루가 눈에 띌 정도로 악화된다. 평소 잘 관리되던 만성질환이 막판에는 악화되기가 일쑤기 때문이다. 주인공 '보'는 천식과 관절염이라는 만성질환이 있다. 소설은 '보'가 임종 6개월 전의 상황을 그리고 있다. 그렇다. 그는 죽어가고 있었다.



부모와 자식이라는 역할은 돌봄이 바뀌는 시기일 때 악화된다. 더 이상 부모의 권력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평생 무뚝뚝하고 서툰 표현을 유지하던 '보'에게는 아내라는 방패로 아들과 안전거리를 유지했지만 이젠 자신이 직접 해결해야 한다. 자식을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삶의 습관은 삶의 쇠퇴보다 강하기에 아들과의 갈등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3년을 어색하고 답답하고 속 끓이는 시간을 보낸 것이다.



자식은 늙지 않았기에 관념적이고도 시스템적으로 노년의 쇠약을 보완하려 한다. 한스의 눈에는 시골 들판을 달리는 개 산책을 노인인 아버지에게 맡길 수가 없다. 딱딱하고 비좁고 낡은 침대에 누워있는 아버지가 낙상할까 걱정될 뿐이다.



하지만 '보'의 눈에는 내 집을 헤집고 다니는 불량배로 보일 뿐이다. 평화롭고 익숙한 내 살림살이와 아내의 체취가 남아있는 공간을 함부로 손대는 아들이다. 선장은 바뀌었고 자신은 배에 묶여 있는 짐에 불과하다는 무기력한 현실에 크게 화가 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침묵과 식사거부가 고작이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건강을 핑계로 유일한 위로인 '식스텐'마저 빼앗으려 하고 있다. 그의 침묵은 무력해진 자신의 신체 기능과 그들의 언어로 소통하기 힘든 감정적 어려움이 섞여 복잡하고 슬프게 읽힌다.



노인의 장애는 돌봄의 틈새에서 항상 벌어진다. '보'의 병세가 악화되던 시점에 발생했던 인지장애는 '섬망'증세였을까 생각이 든다. 그가 우체통 옆에서 쓰러져 있던 것을 야간순찰대가 발견했던 사건은 너무 슬퍼서 가슴이 아팠다. 자신과 아내만이 알 수 있는 기억을 써 내려간 편지를 부치다 벌어진 일이었다.



아내가 떠나고 '식스텐'이 입양되고 둘도 없는 친구인 '투레'까지 세상을 떠난다. 그에게 남은 결정은 멍하니 누워 보호자들이 원하는 안전한 선택뿐이다.



삶의 끝자락에서 '보'는 혼재되는 기억 안에서 자신과 아내와 아들 '한스'와 '투레'와의 관계를 하나씩 되짚는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자식이 싫어하는 말만 하는 자신의 행동에서 기억 속 똬리를 틀고 원망했던 오래전 '노인'의 마음도 읽게 된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은 부모에 대해 양가감정을 가지고 있다. 특히 엄한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일수록 불공정한 부모와 윤리적 태도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자식들은 부모의 권력을 거스르지 않는다. 한스는 아버지와 화해하려 노력했고 식스텐을 임종에 함께하도록 데려온다. '보'는 드디어 사랑의 표현을 완벽히 전달하는 데 성공하며 이 소설은 끝난다.



인간의 노후는 당시의 시대상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나이가 많다는 것은 어찌 보면 잘 늙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아쉬움 없이 헤어지려는 마음은 헤아려주지 않은 섭섭함으로는 부족하다. 내가 싫어하는 말만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살펴보고 내려놔야 한다. 노여움을 풀고 그들의 시대상에 익숙하지 않은 나 자신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 먼저다.



개인적으로 식스텐보다 '보'의 임종이 먼저여서 다행이었다. 노령견으로 추측되는데 '보'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면 너무 슬펐을 것 같다. 만성질환이 있기도 했지만 '보'의 질환이 악화된 계기는 절친이었던 '투레' 사망 이후였다. 노년의 정신적 충격은 건강할 때와 분명히 다르다고 한다.



소설의 말미에 '보'가 남쪽으로 날아가기 위해 두루미들이 모여드는 소리를 들었다는 대목이 있다. 여름에도 장작을 때며 추워하던 '보'가 따뜻한 세상에서 행복했으면 좋겠다. 여러 감정이 오가던 소설이었다.




< 새들이 남쪽으로 가는 날 / 리사 리드 센 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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