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적 안도감에는 빵이 최고지
빵 냄새로 가득 찬 집은 평소와 다르다. 차가운 공기만 가득했던 부엌과 거실은 오븐의 온기로 가득 찼다. 숙소이기만 했던 이곳이 진짜 '집'이 된 것 같은 순간이었다. 룸메이트들을 위해 쿠키와 바나나 브레드를 식탁에 남겨 놓았다. 다정한 쪽지와 함께.
- 우울해서 빵을 구웠어 / 송민경 (미소빵)
9명의 브런치 작가분들이 '빵'이라는 주제를 담아 출간한 앤솔러지(Anthology) 산문집이다. 담백한 맛부터 쫄깃하고 부드러운 맛까지 다양한 고객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빵집의 진열대처럼 빵에 관련된 다양한 감성들이 책 한 권에 완성도 있는 글로 진열되어 있다.
빵과 관련된 추억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이제는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우리의 일상을 자리하고 함께하는 것이 빵이다. 작가분들의 빵 이야기들을 읽으며 나 역시 지난 시간들 속에 빵과 함께했던 순간들이 클로즈업되는 기분을 느꼈다. 나와 유사한 경험을 읽을 때는 놀라며 작가의 이름을 되새기며 한 번 더 찾아 읽기도 했다.
우리는 여러 건강도서를 읽고 학습하며 빵이 단순히 탄수화물이 아니란 사실을 상식처럼 알고 있다. 밀가루 외에도 버터, 마가린, 쇼트닝이 필수적으로 들어가기 때문인데, 이 재료들은 고지방 성분으로, 혈중 콜레스테롤을 높이고 혈관 건강을 악화시키는 주범이다.
책에서도 빵을 신나게 먹고 어김없이 찾아왔던 소화불량, 위통 등으로 힘들었던 경험과 건강검진 후 정밀진단을 요하는 채점을 받은 작가의 고백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빵의 골격을 이루는 단백질인 글루텐은 과다 섭취 시 장 내 영양분 흡수를 저해해서 알레르기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적당량 먹는 것이 좋을 것이고, 굳이 먹고 싶다면 가급적 통곡물이 들어간 건강빵을 먹는 것으로 의사들은 양보하고 있다.
향기도 좋고 입에도 착착 붙는 맛있는 빵이 건강에 해롭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슬픔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적당한 타협이 필요할 것이다. 삶의 질만 찾다가 삶의 낙을 잃고 산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는 우울할 때 귀갓길에 빵을 사 올 수 있다. 그때의 빵은 나를 위로하고 따스하게 안아주는 연인 그 이상의 존재기 때문이다. 빵을 가운데 놓고서 커피와 함께 이야기를 나눌 때 우리는 상대의 이야기에 너그러워진다.
책 속에 빵이야기 중에 너무 재미있어서 한참을 웃었던 글이 있다. 이지연 작가님(단단 빵)이 쓴 '펀치 다운 Punch Down'이야기다. 사춘기 아이를 상대해야 하는 엄마의 불만이야기였는데,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럽게 읽었다. '펀치 다운'은 빵맛을 결정짓는 핵심과정으로 잘 때리고 눌러 탄산가스를 빼내는 과정을 의미한다. 작가는 아이가 닫은 사춘기라는 문이 카스텔라처럼 부드럽게 열리길 기다리며 삶의 조각들을 어른의 모습으로 견디고 계셨다. 베이킹클래스 과정을 배울 때 아름다운 미래의 모습만 상상하셨을 텐데 현실은 아닌 것에 대한 분노랄까? 실감 나게 웃었던 글이다. 우리 아이들은 다행히 사춘기 없이 지나갔는데, 내가 무뎌서 몰랐나 싶기도 하다.
또 개인적으로 나와 너무 닮아 슬프게 읽었던 이야기는 신미경 작가님(잼빵)의 '빵 세다 잠들던 소녀'이야기다.
아빠는 잘생겼고, 유쾌했고, 잘 놀아줬고, 모기도 잡아주고, 이불도 털어주고, 분리수거도 잘했다. 좋은 게 좋은 거라, 나는 여전히 낮의 아빠를 나의 아빠로 기억해 낸다.
작가의 아버님은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술 취한 아빠와 엄마의 부부싸움을 이불속에서 무서움에 떨며 잠으로 피신하던 모습이 담겨있다. 학교로 가던 길 신라명과 진열장에 있던 빵들을 떠올리며 자장가처럼 세던 소녀의 모습이 가슴 아프게 그려진다. 나는 아직 친정아버지가 살아계시지만 치매의 강에 계신다. 평생 술로 사셨던 대가를 치르고 계신 셈이다. 나도 그녀처럼 낮의 아빠만 기억하며 산다.
술 취해 귀가하는 아버지가 끔찍이도 싫어했던 나였지만 한 가지 좋았던 것은 아버지 손에 들려있던 초코파이 상자였다. 엄마는 아버지의 빈 봉투에서 초코파이 가격을 뺀 금액을 술값으로 계산하셨고 빈 액수의 분노만큼 싸움으로 밤을 새우셨다. 싸움을 말리며 함께 울었던 나의 너무나 고통스러운 기억이지만 다음날 아침 먹을 수 있는 초코파이의 달콤함의 유혹은 전쟁 같은 싸움 뒤에 얻을 수 있는 보상이기도 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고들 한다. 빵 이야기들을 한바탕 읽고 덮으니 더욱 확신처럼 다가온다. '아는 맛'에 군침이 돌듯이 '아는 행복'은 다시 한번 느끼고 살고 싶다는 힘을 준다. 빵집에서 빵을 신중히 고르는 사람들의 눈빛에는 그 맛을 함께할 상대와의 교감과 행복을 나누고 싶은 따뜻한 욕망이 있는 것이다. 이런 착한 욕망의 매개인 빵은 삶의 낙이라는 입장에서 우세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