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친정에는 집밥이 없었다

집밥이 그립게 하고 싶다

"엄마, 나 배고파."

"그래 어서 가자."

엄마는 서둘러 차를 몰았다. 아빠에게 내 존재가 최고의 약점이라면 엄마에게는 밥이 약점이다.

날 야단치다가도 내가 약간 힘없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엄마 근데 나 배고파"하면 그걸로 만사는 스톱이었다.


-'즐거운 나의 집' 본문 中




밥에는 대책이 없다.  한두 끼 먹어서 되는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죽는 날까지 때가 되면 반드시 밥을 먹어야 한다. 외로움에 목이 메어 집밥이 그리운 이유는 한두 번의 기억 때문이 아니다.


친정엄마는 집밥에 애정이 없으셨다. 집밥보다 그 집밥을 유지하기 위한 밥벌이에 더 애착이 강하셨다. 그것만이 험난한 삶을 유지하는 동아줄로 믿고 계셨다. 모든 현실을 돈과 결부하여 해석하셨다. 그렇게 악착같이 모은 돈의 위력으로 어느 집보다 빨리 집도 장만했고 당시 최고의 자랑거리였던 문 달린 텔레비전도 장만했다. 우리 집으로 오글오글 모여 김일선수 레슬링을 보며 동네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를 때 엄마는 행복해하셨다. 당시 엄마의 자부심은 바로 돈이었다.


엄마에게 돈은 많았지만 엄마가 해준 집밥에 대한 기억은 내게 별로 없다. 엄마에게 목표설정이 집밥이 아니었기에 집밥은 부수적인 사치였다.  


우리 집 반찬은 마감시간이 촉박해 시장에서 떨이로 넘기는 각종 채소와 생선류로 채워졌다. 그 때문에 배탈이 자주 났었지만 그것이 엄마를 개선시키는 이유가 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가족들 모두 문제시하지 않았다.


왕십리에 사는 친구집에 하루 잔 적이 있었다. 자주 아픈 친구였다. 어쩌다 그 친구집에서 자게 되었는지 이유는 생각나지 않지만 지금도 생생히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친구네서 먹었던 밥이다.


처음 먹어보는 청국장이었다. 동그란 밥상 가운데 주인공 청국장은 별스러운 재료는 없었지만 푸짐해 보였다. 친구네 가족이 된 양 나도 수저 한가득 퍼서 맛있게 먹었다.  입안 가득 풍부하게 터지던 콩의 질감과 구수한 맛에 눈물이 찔끔 고였다.


처음 먹어본다고 고백했을 때 의아해하시던 친구의 어머니 표정이 지금도 떠오른다.  엄마를 모욕한 기분이 들어 잠시 혼란스러웠다.  당시 18살이었다.


지금은 내손으로 언제든 만들어 식탁에 올리는 청국장을 먹을때면 친구집에서 먹었던 담백한 기억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 기억이 친정엄마의 집밥이 아니란 사실이 나는 속상할 뿐이다.


아픈 친구는 다음 날 학교에 나왔다. 그 친구와는 지금도 여전히 연락하며 친하게 지낸다.  가끔 나는 친구어머니의 청국장얘기를 꺼내는데 기억에 없단다.  사랑 가득한 집밥을 먹으며 자란 친구는 늘 아팠지만 아프지 않은 아이였다.


결혼하고 나는 집밥이 그리운 집을 만들고 싶었다.  그것이 내 목표가 되어야 했다. 아이들이 독립하고 내 곁을 떠나 살다가 문득 집밥이 그리워 찾아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기억은 사소하지만 치밀한 관찰로부터 시작된다. 우리가 집밥이 그리운 이유는 단지 맛있게 먹었던 기억 때문이 아니다. 따뜻하고 비리한 향기의 밥과 함께한 평화로운 시간들이기 때문이다. 삶의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자극적이지 않은 쾌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